부자 이야기
부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돌아온 사람들의 대답들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자식들을 위해서'
'부모님을 잘 모시고 싶어서'
'가족들을 잘 돌보기 위해서'
'노후를 위해서'
'부족함 없이 살고 싶어서'
'가난하게 살아와서'
'마음껏 살고 싶어서'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싶어서'
'편안하게 살고 싶어서'
'고되었던 지난 인생에 대한 보상으로'
'돈이 많으면 당연히 좋은 거니깐'
답변들은 의외로 평범했다.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거나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은 없었다. 왕이 되고 싶다거나 우주의 비밀을 밝히고 싶다는 답변도 없었다. 그런 답변이 하나 정도 나온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내가 질문을 던진 사람 중엔 그런 답변을 한 사람은 없었다.
그 외 부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답변도 있었다. 그들은 돈이 많아진다면 좋기야 하겠지만 현재 상황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고 자신은 부자가 될 그릇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그럴 기회가 온다면 부자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부자가 되는 건 포기했지만 부자가 아닌 것보다 부자가 더 좋다는 것엔 동의하였다.
내가 질문을 던진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질문해 보지 않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더욱 다양한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엔 선한 일을 하고 싶다거나 타인에게 도움 주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이타적 목적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생명의 비밀을 밝힌다거나 새로운 과학적 연구로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싶다는 학구적 목표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자가 되기까지의 계획과 되고 나서의 계획이 무엇인지 빈틈없이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유는 잠시 뒤로 하고 나는 내가 질문을 던진 사람들의 답변에서 몇 가지 공통적인 부분을 찾아보았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악의'를 가진 답변은 없었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많은 이유들 중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없었다. 개인의 욕심은 얼마간 있을지언정 누구도 악의를 가지고, 악의를 실행하기 위해 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부자가 되어 행하고 싶은 나쁜 짓은 기껏해야 '과시'정도였을 뿐 복수나 악의는 없었다.
둘째, 공존적이고 이타적인 바람이 있었다.
첫째 항목에서 말했듯 그들의 답변엔 얼마간의 개인적 욕심은 있었지만 대개의 이유는 혼자가 아닌 함께 잘 살아나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얼마간 있는 개인의 욕심에도 나와 타인이 모두 좋은 상황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어있었다. 쉽게 말해 나 혼자만 잘살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과 자신을 포함한 주위가 모두 잘 되길 바랐다.
셋째, 편해지고 싶어 했다.
그들은 부자가 됨으로써 몸과 마음이 편한 상태가 되고 싶어 했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의 상황이 그만큼 불편하다는 것이며 그 불편의 원인이 '돈의 부족'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부자가 되면 모든 상황이 해결되고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될 거라 믿었다.
넷째, 이기와 욕심이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좋은 의도만 가질 수 있겠는가. 이기심, 욕심, 과시욕들도 그들이 가진 공통점이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것은 상대를 조금도 배려치 않는 마음이라기보다 단지 해보지 않은 걸 해보고 싶은 짓궂은 호기심에 가까웠다. 물론 실제 그들이 부자가 된다면 또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질문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논외로 하자.
답변들을 되새겨보며 그들에게 있어 '부자의 의미'란 '부'를 이루는 그 자체보다 어렵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좀 더 편안한 상태가 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자신의 고민 대부분이 돈의 부족과 관련 있다 생각하였고 부자가 되는 것은 그 고민들을 가장 간단하고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겼다. 만일 그들의 고민을 해결할 가장 간단한 방법이 코끼리 흉내내기라고 한다면 그들은 부자보다 코끼리 흉내내기를 선택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부자'를 목적지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그들이 지향하고 있는 건 '편안한 상태', '행복한 상태', '만족스러운 상태'였다. 그리고 그 목적지에 가족과 절친한 주변 사람들, 좀 더 포괄적 의미로는 모든 인간이 함께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부자'란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목적지가 아니라 '수단'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행복으로 가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가 바로 '부자'인 것이다. 그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부자가 되려 했고 부자가 되려는 건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 적어도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느낀 바로는 그러했다.
그들의 답변에서 유추한 부자 의미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다면 바로 '행복의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