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이야기
부자가 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적게 쓰며 만족하는 것 역시 그렇게 쉽지만은 일은 아니다. 어찌 보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잡는 것보단 놓는 게 쉽다. 가지는 것보단 가지지 않는 것이 쉽다. 애쓰는 것보단 애쓰지 않는 것이 쉽다. 무엇보다 자본에는 한계가 있지만 만족에는 한계가 없다. 모두가 부자가 되는 건 불가능 하지만 모두가 만족하는 건 가능한 일이다.
적게 쓰고 만족한다는 것이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아니 충분히 그러리라 본다. 물가는 점점 높아지고 소득은 제자린데 어떻게 지금보다 적게 쓸 수 있으며 어떻게 더 줄일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매사에 만족만 하며 살 수 있단 말인가? 하나를 더 가지려 아등바등해도 살까 말까 한 이 세상에서.
그렇다면 적게 쓰기에 대해 좀 더 현실성 있는 얘기를 해보자.
현실적으로 적게 쓰는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모든 수입과 지출에 대해 빠짐없이 기록하고 그것을 토대로 예산을 편성한다.
2. 줄일 수 있는 항목과 줄일 수 없는 항목을 나누고 줄일 수 있는 항목은 철저한 절약을 실행한다.
3. 편성한 예산 내에서 지출을 계획하고 철저히 이행한다.
4. 절약한 금액은 얼마가 되었든 무조건 저축을 한다.
5. 투자를 할 경우 리스크가 가장 적은 방법으로 한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아끼고 저축하자"는 말이며, 남는 금액은 리스크도 적고 고정적 이윤도 가져다주는 저축 같은 상품에 우선하자는 말이다.
'투자'를 할 때 의외로 간과하는 게 '리스크'다. 투자에 리스크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성공에 대한 희망은 종종 그것을 간과하게 만든다. 당첨되지 않을게 뻔한 복권을 매주 사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주 당첨자가 '내'가 아닐 것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지만 혹시나 하는 희망이 그 분명함을 간과하게 한다. 복권 당첨자는 매주 틀림없이 배출된다. 하지만 당신은 아니다. '만(10,000)에 하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이 주목해야 할 건 '만(10,000)에 하나'에서 '하나'가 아니라 '만(10,000)'이다. 당신은 틀림없이 1이 아니라 10,000에 속해 있다.
복권당첨과 투자를 비교하는 게 적절하진 않지만 희망이 눈을 가린다는 점은 동일하다. 사람들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에서 'High retuun'만 눈여겨볼 뿐 'High risk'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란 말은 성공 확률은 아주 낮지만 실패 확률은 아주 높다는 말이다.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도 'High risk High return'보단 'High risk High failure'가 더 낫지 않을까? 너무 부정적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것은 확실하다. 확률로 보았을 때 투자보다는 저축이 훨씬 더 이윤을 볼 확률이 높다. 적어도 손실은 보지 않는다. 수많은 투자 방법이 횡횡하고 그만큼 수많은 실패도 난무하는 요즘 세상에서 손실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이라 할 수 있다.
투자에 대해 말하는 이들 대개는 '보수적 사고'를 하라고 말한다.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기대치를 최대한 낮추어 보라는 뜻일 것이다. 그 말을 개인의 일상적 경제 활동 전반에 걸쳐 적용한다면 결론이 '저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끼고 저축하는 삶. 그런 삶은 불편할 것이다. 쓸 것을 참아가며 소액에 기대어 사는 건 불편할 뿐 아니라 때론 불쾌하기도 할 것이다. 투자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주변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뒤처진 느낌도 들고 불안한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런데 가진 게 얼마든 사람들은 누구나 불편하고 불쾌하게 산다. 뒤처진 느낌을 갖고 불안하게 산다. 1억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의 불편을, 10억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의 불편을, 100억을 가진 사람 역시 그만큼의 불편을 가지고 있다. 자신보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이 느끼는 불편과 불안은 다른 많은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재산이 많을수록 육체적 불편은 분명 덜 할 것이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은 좀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큰 차이일까?
불편은 다소 번거로울 뿐이다. 조금 더 걸어야 할 뿐이고, 조금 덜 가져야 할 뿐이고, 조금 더 몸을 써야 할 뿐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큰 차이일까?
나는 '편리'가 그리 대단한 건 아니라 생각한다. 또한 좋은 것만도 아니라 생각한다. 편리가 정말 대단하고 좋은 것이라면 이 세상은 이미 행복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수렵 시대 이후 펼쳐진 농경 시대는 훨씬 더 태평했어야 했다. 산업 혁명 이후 펼쳐진 세상은 천국으로 변했어야 했다. 눈부신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진 지금의 세상은 이미 행복으로 가득 찬 낙원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세상은 열 개의 편리가 생겨나면 열한 개의 불편함이 생겨난다. 불편과 불만은 편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