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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의 잽 14화

#14. 짱구의 습격

by 파라미터

복싱 후 긍정적인 변화는 단연코 건강의 호전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관심 두는 것은 ‘체중 변화’다. 복싱하면 살이 많이 빠진다던데, 정말 그러냐는 호기심. ‘개인에 따라 조건에 따라 다르다’라고 하면 너무 허무한가. 각자의 체질, 운동량 그리고 먹는 것 등 모든 요건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야 체중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복싱하면서 체중 감량을 기대했었다. 운동량은 증가했고 먹는 양은 감소했으니 당연히 살이 빠질 것이라고 말이다. 게다가 가끔 10시간~12시간 정도의 긴 공복 시간이 유지되기도 했으니, 느낌만으로도 몸이 너무 가벼워졌다. 복싱 때문이었다.


복싱으로 에너지를 소모하고 나면 너무 힘들어서인지 속이 메슥거렸다. 그래서 뭔가를 먹어야겠다는 의지 자체가 없었고 어떤 음식의 형상도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물도 마시기 싫었다. 그래서 이른 아침과 저녁 사이 자연스레 공복 시간이 길어졌다.


그래서, 결론이 뭐냐? 살이 빠지기는 빠졌는데……. 복싱과 복싱 후 의도치 않게 하게 된 유사 간헐적 단식으로 인해 '체중이 많이 감소됐다'라고 얘기해 주고 싶지만, 그냥 ‘살이 아주 쬐-끔, 티도 안 나게’ 빠졌다. 허한 공복 상태가 유지되는 긴 시간은 복싱 적응 기간이 끝나자 사라져 버렸고, 본래의 식사량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팔뚝 살은 눈에 띄게 줄었고, 쬐-끔 감량된 몸무게도 꾸준히 유지됐다. 아침마다 체중계에 올라서면 매번 똑같은 숫자가 변함없이 찍혔다. 매일 같은 몸무게라서 체중계 고장을 의심하기도 했다. 운동 후에는 살이 조금 빠졌다가 음식 섭취 후에는 살이 조금 불었다가 숫자가 움직이기는 했지만, 그 오차는 미미했고 아침 몸무게는 변함없었다. 복싱을 시작한 이래로 체중은 내가 좋아하는 숫자에서 멈춘 채 잘 유지되고 있었다. 내가 봐도 너무 신기할 정도로.


사실, 나는 살을 빼는 것보다 근육과 기초대사량을 늘리는 것이 더 중요하기는 했다. 근력운동을 병행하던 어느 날인가, 관장님이 궁금한 듯 내게 물었다.

“단백질은 잘 섭취하고 계십니까?”

“네. 매일 달걀 먹어요.”

“하루에 몇 개요?”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하나요.”

“네? 그건 그냥 생존용입니다~! 고기도 드시고 하세요.”

“관장님은 자주 드세요?”

“없어서 못 먹습니다!”


특별히 식단을 바꾸지 않고 단지 단백질 섭취를 평소보다 조금 늘렸다. 그러면서 운동을 병행했다.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일지는 몰라도 확실히 힘이 더 붙는 것 같았다. 간이로 한 체성분 분석에서 골격근량은 증가하고 체지방량은 감소하는 수치의 변화가 보였다. 이렇게 수치의 변화를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역시 운동과 함께 섭취하는 음식도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먹는 것과 운동을 병행하며 꾸준하게 체력과 체중을 유지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올해 어느 날 갑자기, 내 입속으로 ‘짱구’가 들어오고 말았다. 개인 사정으로 운동을 잠시 쉬던 주간에 마트에서 산 한 묶음의 ‘짱구’. 옛날처럼 달지 않아도 달기는 달았다. 그래서 그 달달하고 바삭하고 추억도 돋는 '짱구'의 맛에 꽂혀서 매일 저녁 식사 후에 짱구 한 봉지를 거뜬히 비워버리고 말았다. 낮에도 아닌 늦은 저녁에.


갑자기 꽂혀버린 1일 1짱구로 살이 찔까? 묻는다면, 정답은 ‘예스’.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아침 공복 체중의 변화가 일어나고 말았다. 그렇게 꽤 오래 유지하던 공복 체중이 복싱 쉬는 틈을 타 찾아온 ‘짱구’에게 무참히 깨져 버렸다. 바로 ‘짱구’를 끊었다. (사실 끊었다기보다는 그냥 다 먹어 버렸다.)


체중 증가가 아무리 미미하다고 하나 운동할 때, 몸의 둔화가 확연히 느껴졌다. 무겁다. 한번 붙은 살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쉽게 빠질 나이도 아니다). 그래도 다시 땀나는 복싱으로 조금 감량하면서 유지 중이다.


평소보다 미트 연습을 조금 더한 다음 날, 관장님이 걱정하며 물었다.

“힘들지 않았습니까?”

“힘들긴 했는데, 배가 안 나와서 좋았습니다.”

“배가 조금 나와야 인간적입니다.”

흠, 난 너무 인간적이다. 그래서 가끔은 (뱃살로) 인간적이고 싶지 않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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