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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의 잽 13화

#13. 건강한 복서

by 파라미터

코치님과 미트 연습은 관장님과 연습할 때보다 조금 더 힘들게 느껴진다. 내가 주로 연습하는 시간대에 코치님과 마주할 일은 거의 없어 익숙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더 힘이 느껴져서이기도 하다. 가끔이지만, 힘들어도 코치님과 연습하고 나면 기분이 좋다. 땀을 진하게 빼고 가뿐해지는 느낌이다.


운동 초기에 코치님과 미트 연습을 끝내고 샌드백 연습을 하고 있을 때, 코치님도 내 뒤에서 묵직한 검은 샌드백으로 맹연습 중이었다. 내가 치는 샌드백 소리는 힘없고 둔탁하기만 해서 소리만으로도 기분이 푹푹 꺼졌는데, 코치님의 샌드백 소리는 ‘불꽃놀이’의 하이라이트 불꽃이 팡팡 터지는 것처럼, 빠르고 힘찼고 리드미컬했다.


굳이 뒤를 돌아 코치님의 모습을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그저 귀로 듣고만 있는데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수줍은 미소를 짓고, 목소리도 야리야리한 모습과 달리 샌드백 치는 소리만으로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한 마디로 멋짐 폭발! 감탄하는 내게, 관장님의 깨알 같은 한마디.

“제가 가르쳤습니다!”


잘난 척이 아니라 제자를 잘 키워냈다는 선생님으로서 자부심과 자신감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 내가 복싱을 지속한다고 해도 코치님처럼 되기는 힘들어 보였지만, 그래도 복싱을 멋지게 하고 싶다는 참 이루기 어려운 바람이 생길 정도였다. 코치님을 부러워하며 관장님에게 물었다.

"저도 어릴 때 배웠으면, 가능했을까요?"

"물론입니다! 선수했을지 모릅니다."

"농담도 참, 비현실적이시네."

관장님은 씩 웃더니 내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그래도 앞으로 10년 이상은 더 하실 수 있으십니다.”


10년이라. 선뜻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을 때, 모범이 될 만한 분이 보였다. 처음 뵀을 때부터 ‘멋지다’ 감탄했던 분. 실력도 대단하신데 늘 최선을 다하시는 60대 회원님. 어느 날부터 남편분까지 함께 나와 열심히 연습하신다. 노년에 같은 취미를 가지고 그렇게 체육관에서 각자 또 열심히 땀 흘리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다.


복싱 외 다른 모습으로도 멋짐을 보이는 분들도 많다. 자신만의 스타일(깍듯하게, 밝고 씩씩하게, 수줍은 듯 조용히 등)로 인사하는 회원님, 어질러진 슬리퍼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회원님, 가끔 자리 잊은 운동기구나 주인 잊은 물건을 정돈하는 회원님 등 자연스레 나온 작은 행동에서도 멋짐이 묻어 나온다.


당연히 굵은 땀을 뚝뚝 흘리며 운동에 몰입하는 모두가 멋있다. 그리고 이런 소소하면서도 기분 좋은 행동을 절로 실천하는 분들도 눈에 쏙쏙 들어온다. 그분들의 평소 모습을 보면서 진짜 ‘멋짐’은 애써 꾸며서 드러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임을 새삼 느낀다. 이런 멋진 모습을 보고 배우고 실천하면서 진짜 "건강한 복서"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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