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양현 Jun 07. 2024

5권 : 비아냥

인간어류학 연구를 위한 살롱수족관 관찰

게르망트 쪽의 초반부는 마르셀이 흠모하는 게르망트 공작부인에게 접근하기 위한 욕망을 차곡차곡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묘사한다.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미행하거나 훔쳐보기도 하는 등 지금의 기준에서는 스토킹과 다름없는 짓을 하기도 하고, 게르망트 공작부인과 친척지간인 친구 생루의 근무지를 찾아가 그녀를 소개해달라며 조르기도 한다. 게르망트 공작부인에 대한 집착은 마치 스완이 한 때 오데트에게 빠져 허우적대던 상황과도 닮아 보인다.     


마르셀의 눈물겨운 노력은 총 3단계의 방향으로 진행된다. 1단계는 실패한다. 게르망트 공작부인을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생루가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르셀은 하릴없이 생루의 병영이 있는 동시에르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당시의 신문물인 우체국 전화를 이용해 할머니와 전화통화를 시도한다.      


나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그날에야 비로소 처음 들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전부인 채로, 다른 얼굴 모습은 동반하지 않은 채 이처럼 홀로 다가오는 순간, 목소리 비율도 변한 듯 보였으므로, 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이토록 부드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지 모른다.                                                                    

217p     


프루스트는 부잣집의 아들이자 당대의 유행을 좇는 일종의 댄디이기 때문에 최신문물, 과학기술이 낳은 산물들에도 밝았을 것이다. 실제로 소설에는 마르셀이 다양한 신문물을 경험하고 그것들이 사회와 개인에게 미치는 효과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보인다.      


전화로 듣게 된 할머니의 목소리. 그것은 진짜일까? 가짜일까? 그녀의 목소리는 전기신호로 바뀌고, 수화기를 통해 다시 음성으로 한 번 더 재구성된 것이다. 먼 거리에 있는 누군가의 음성을 전화를 통해 듣는 것은 피아니스트가 손가락으로 건반을 눌러 음을 만들어내는 뱅퇴유 소나타의 소리와는 분명 다른 차이가 있다. 악보 안에만 기술된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음을 연기가 피어오르듯 탄생시키는 음악과 달리 전화라는 기계를 통해 재구성, 조합, 변형으로 인해 낯설게 느껴지는 할머니의 목소리. 그것도 할머니의 목소리일까? 그것은 할머니의 본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할머니, 할머니!”하고 외쳤으며 할머니에게 키스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옆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쩌면 나를 방문하러 다시 올지도 모르는, 그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인 목소리밖에 없었다. “말씀하세요!”라고 부르짖었지만, 할머니의 목소리는 나를 더욱 혼자 내버려 두더니 갑자기 들리지 않았다.         

218p     


할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소리가 잘 안 들리면서 불통이 되는 상황도 묘사된다. 전화불통의 순간은 암흑과도 같은 공간으로 환유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할머니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블랙박스와도 같은 그곳에서 마르셀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할머니를 찾는다. 하지만 ㄷ당연히 할머니의 신체는 보이지 않고 이따금 목소리 만이 희미하게 들릴 뿐이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엇갈리며 길을 잃는다. 실체가 보이지 않는 허깨비. 죽은 망령들 사이를 헤매는 듯 한 마르셀의 모습. 이 상황은 마치 할머니의 죽음을 예고하고 마르셀의 인식이 불연 듯 알아채버린 불안과도 같아 보인다.     


마르셀이 동시에르에서 파리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엔 육신이 붙은 살아있는 외할머니를 기대했지만 되레 정반대의 낯선 사람을 발견한다. 살갗이 끈기와 탄력을 잃어버린 거죽처럼 변해버린 늙고 병든 한 노인. 그녀가 외할머니였다.     


친숙한 경험과 주관의 인식 세계에서 빠져나와 느닷없이 불숙 타자가 되어 낯선 세계와 그 세계에 놓인 할머니를 바라보는 마르셀. 3인칭 관찰자의 시점. 그것은 마치 다큐멘터리 감독이 객관적인 시선에서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마르셀은 지금 물질적인 카메라 렌즈를 통해 사물을 보는 사진사. 혹은 영화감독의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본 것이다. 본인과 동일시되었던 숭고한 육체의 존재가 아니었다. 사랑 같은 비상한 열정에 눈이 멀어버려 피아가 분간이 되지 않는 상태로 본 헛것도 아니었다. 그는 객관이라는 성능을 장착한 렌즈를 통해 개안을 했고 이를 통해 늙고 병든 낯선 한 노인을 처음 목격한 것이다.     


할머니가 여전히 나 자신이며 언제나 내 영혼 속, 늘 과거 같은 지점에서 겹쳐지는 인접한 추억의 투명함을 통해서만 할머니를 보아 왔던 나는, 이제 갑자기 우리 집 거실에서 새로운 세게, ‘시간’의 세계, “그 사람 잘 늙었네.”라고 말하는 낯선 이들이 사는 세계의 일부가 되었으며, 그리하여 난생처음으로, 하지만 짧은 순간에 거기 등잔불 아래 긴 의자에 앉은 붉고 무겁고 천박하고 병든 여자가, 내가 모르는 쪼그라든 늙은 여자가 꿈꾸듯 멍한 시선을 책 위로 이리저리 던지는 모습을 보았다.             

227p          




마르셀이 동시에르에서 수행한 게르망트 공작부인 친해지기 1단계 작전은 실패했지만, 파리에서는 다음 단계가 성큼 성공에 가까워진다.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남편인 공작의 고모였던 빌파리지 후작부인의 살롱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마르셀은 빌파리지 후박부인의 살롱에서 마침내 고대하던 게르망트 공작부인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마르셀에게 귀족들이 득실한 살롱은 인간들의 속물근성을 전시하는 표본과도 같은 이었다. 여기서 프루스트 특유의 인간어류학 관찰이 빛을 뿜는다. 귀족 종 혹은 부르주아 종에 속하는 인간어류들이 빌파리지 부인의 살롱이라는 수족관에서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며 헤엄친다. 빌파리지 후작 부인, 게르망트 공작부인, 게르망트 공작, 샤를뤼스, 르그랑댕, 캉브르메르 후작 부인, 블로크 라는 이름의 물고기들이 수족관에서 각자의 종 혹은 다른 종과 이합집산한다. 살롱이라는 수족관에 갇힌 인간어류들이 선보이는 허영과 욕망의 스펙트럼을 프루스트라는 어류학자가 수족관의 유리벽 너머에서 성능 좋은 돋보기를 들고 세밀하게 관찰하며 그 연구논문을 비아냥을 보태어 발표한다.      


살롱 초대손님들의 사교를 하기 위한 핵심수단은 언어 즉 말이다. 그런데 말이라는 것은 말을 부르고 그 안에는 당연히 서로 간의 오해가 불쑥불쑥 치솟아 오른다. 그리고 콸콸콸 오해를 쏟아내는 분수는 다시 오해라는 다른 작은 분수를 가지치기한다. 살롱 안에서 수많은 말들, 공허한 말들이 오고 가고 그 안에서 말들은 진의를 상실하고 굴절되거나 왜곡된다.      


말의 어떤 형태가 일그러진 동심원을 그리다가 끝나는 지점에서는 항상 한 인간을 바보로 만들거나 시기 질투의 대상으로 바꾸어버린다. 말의 시작에선 누구나 본받을 만하거나 뛰어난 이로 고평가되지만, 말의 끝에서는 형편없는 사람이거나 상대 못할 족속으로 하향평준화된다. 사교모임이란 그런 곳이다. 모두 만난 상대에게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침을 뱉는 곳. 하긴 얄팍한 인간관계의 본질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어젯밤 나와 함께 웃고 떠들던 이. 하지만 하룻밤이 지나고 미몽에서 깨어나면 그는 더이상 엮이지 않고 싶은 타인으로 바뀌어 있다.    


우리가 말한 적도 없는 말이 다른 별자리에서는 웃음을 야기하며, 또 우리 행동과 태도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이미지도 마치 그림에 먹지를 대고 복사하지만 실패하는, 검정 선 있는 곳에는 빈 공간이, 하얀 부분에는 뭐라고 설명할 수도 없는 윤곽이 나타나는 그림만큼이나 자신에 대한 우리 이미지와 닮지 않았다

191p     


살롱에서 가장 코미디언 같은 인물은 블로크다. 블로크는 유대인이자 귀족보다 한 수 아래 취급을 받는 부르주아이며 드레퓌스 파로 그의 신분과 처지 상 살롱에서 가장 천대받을 수 밖에 없는 족속처럼 보인다. 당시 드레퓌스사건은 유대인 대위 드레퓌스를 무리하게 간첩혐의로 기소한 희대의 스캔들로 프랑스 사회에 격렬한 논란을 일으켰다. 프랑스인 대부분은 그가 유죄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는 유죄여야만 했다. 그의 핏줄과 근본은 남에게 거짓말을 잘하고 사기를 치는 족속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이 덧씌워진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드레퓌스의 무죄를 지지하는 유대인 블로크는 귀족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하지만 그의 존재 자체가 귀족에게 경멸을 살뿐이다. 하지만 그는 눈치가 없다. 낄낄빠빠를 못한다. 주제파악을 못하는 그는 측은해 보이기까지 한다.     


블로크는 부인에 대한 찬미를 몸짓으로 표현하려 했으나, 그만 팔꿈치로 꽃가지가 꽂힌 병을 엎는 바람에 물이 온통 양탄자 위로 쏟아졌다.

350p     


스노비즘을 옴팡 뒤집어쓴 귀족들 가운데 그나마 인간의 온기를 가진 이는 생루다. 생루는 게르망트 가 친인척들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드레퓌스 사건을 자신만의 방식을 사고하며 이해하며 꿋꿋이 자신의 소신을 지키려 한다.


“진정한 영향은 지적인 환경의 영향이야. 인간은 자신이 가진 사상에 따라 규정되잖아.”                                                                     
191p     


생루의 대답은 작가 프루스트가 생루를 빌려 우회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로 보인다. 유태인이라는 혈통으로 인해 누명을 쓴 드레퓌스 사건, 모두가 진실을 외면하고 마녀사냥 같은 광풍에 휘감긴 프랑스 전국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혈통과 태어난 환경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무엇을 배우고 자랐는지, 그가 후천적으로 습득한 것은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프루스트의 인간어류 관찰기에서 가장 압권은 게르망트 공작이다. 말과 행동 모두가 오만방자한 게르망트에 대해 화자는 유달리 조소(嘲笑)로 조소(彫塑)한다. 프루스트가 스노비즘을 투사하기 위한 표적으로 낙점된 게르망트 공작은 작가의 의도에 걸려들면서 무례함과 상스러움을 온몸에 주렁주렁 단 인물로 형상화된다.     

부인 옆에는 오만한 올림푸스 신과도 같은 게르망트 씨가 육중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모든 팔다리에 편재하는 막대한 부의 관념이 그를 대단히 가치 있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마치 부가 도가니에 녹아서는 인간 금괴 단 하나로 주조된 듯, 그에게 특별히 강도 높은 밀도를 부여했다.

473p     


살롱이 무르익을 무렵 샤를뤼스 남작이 등장한다. 샤를뤼스 남작 역시 게르망트 가의 일원이다. 그는 사드백작처럼 뭔가 알 수 없는 사악하고도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동성애자답게 여성성과 남성성이 묘하게 공존하는 인물인 그는 속물적인 인물들로 가득찬 살롱 안에서 오로지 홀로 전형적인 궤적에서 탈주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악마적인 기운을 풍기며 나타난 샤를뤼스는 미래의 마르셀에게 위험하고도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할 인물 임을 예고한다.


내 팔짱을 낀 채로 걸어가면서 경멸이 깃들었지만 매우 다정한 말을 하면서, 샤를뤼스 씨는 때로 강렬한 눈초리로 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476p     


살롱이라는 카오스를 가까스로 빠져나온 마르셀은 집으로 돌아온다. 동시에르에서 파리의 집에 도착했을 때 처음 마주한 이가 외할머니였던 것처럼 그는 이번에도 외할머니와 조우한다. 병에 걸린 외할머니는 질병과 육체와 의식으로 3분할된다. 한 인간이 질병에 걸리면 의식은 육체를 더 이상 납득가능한 상태로 만들지 못한다. 의식은 더 이상 육체를 제 마음대로 다를 수 없다. 그리고 사이를 끼어드는 것은 육체를 무대로 활동하는 질병의 현상들이다. 질병... 육체... 의식... 서로 소통을 하지 못하는 셋을 통역해 줄 이를 찾기는 어렵다. 의사소통이 분절되거나 왜곡되는 순간 속에서 우리는 죽어간다. 인간이 질병으로 죽고 나서야 질병, 육체, 의식 간의 불협화음이 잦아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승리한 이는 오직 질병이다.

  

우리는 병에 걸려서야 비로소, 어떤 심연이 우리를 그 존재로부터 갈라놓아 그 존재는 우리를 알지 못하고, 우리도 그 존재에게 자신을 이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이 존재가 바로 우리 몸이다... 육체가 무대인 병의 현상들이 할머니의 생각엔 뭔가 막연하고 포착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있었다면, 그 현상과 동일한 물리적 세계에 속하며, 또 육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 정신이 마침내 문의하게 되는 사람들에게서, 마치 외국인이 하는 대답 앞에서 그 말을 통역해 줄 사람을 같은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찾는 것처럼, 그 현상은 분명하고 명료했다. 이 존재들은 우리 육체와 소통하며, 육체의 분노가 심각한지 아니면 곧 진정될지 말해 줄 수 있다.

496~497p     
이전 05화 4권 : 활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