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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Dec 01. 2023

고심하는 것, 더하는 것

일 하면서 우아하게 숨 쉬는 법

  나에게는 나무가 있어요. 일 하면서 틈이 나면 나무를 봐요. 나무는 내가 고개를 창가로 돌리면 볼 수 있는 자리에 있어요. 창가는 멀리 있지 않아요. 아주 조용히, 아주 조용히 있으면, 거실에 있는 시곗바늘 소리 사이로 나무가 숨 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그 순간은 찰나예요. 왜냐하면, 창 밖에 자동차 소리, 버스 소리, 바람 소리, 낙엽이 바닥을 긁는 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들이 들리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내 타자 소리만 들리는 그 순간. 나무는 또 숨을 쉬어요. 나무는 그렇게 숨을 쉬어요.


  숨 쉬는 저 나무에게 크리스마스트리로 금띠 장식을 하려 했어요. 분명 그럴 생각으로 나무를 들였어요. 하지만 고민이 많았어요. 최근 읽은 책에서 나무에게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나무가 싫어할 거라고 했어요. 그는 나무에 장식을 하지 않고, 온전히 바라볼 것이라고 했어요. 그 글을 읽어서 인지 나무에게 장식을 두루는 것을 주저했어요. 정말 나무가 싫어할까요. 나무가 좋아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나무에게 좋은지 나쁜지의 의견을 물을 수 없죠. 나무는 말을 하지 못하니까요. 아마 싫어도 싫다고 말하지 못할 거예요. 분명 이쁘게 꾸며준다면, 보기에는 좋아 보일 거예요. 때문에, 나무도 좋아할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나무는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싫어할 거예요. 분명히.


  고민 끝에, 지식인에 물었어요. '나무에 트리 장식을 달면 나무가 아픈가요?' 올리자마자 답글이 달렸어요. '겨울에는 생장이 거의 멈추어 있는 상태기 때문에. 너무 무거운 걸 달아서 가지가 찢어진다거나 그러지만 않으면 괜찮아요. 대신에, 크리스마스 끝나고 전깃줄이나 철사로 둘둘 감아 놓은 것들을 제대로 다 벗겨내주지 않으면 내년에 자라는데 큰 방해가 됩니다.' 나무가 아프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마도 아프지 않을 거예요. 아프지 않으면, 나무도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윽고, 좋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는 다른 고민을 했어요.


  내 나무는 나무 두 그루가 서로를 지탱하며 자라 있어요. 두 나무 사이 지지대와 트위스트 타이(빵끈)로 고정이 되어 있어요. 나무에게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줄 때, 두 나무 중 한 나무에게 장식이 과중되면 다른 한 나무가 질투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면, 장식이 너무 무거워 가지가 쳐지는 것에 있어 속상해하는 걸 다른 한 나무에게 말하면 어떡하지 등 저 두 나무가 서로 소통하는 것이 걱정이 되었어요.


  그래서 또, 지식인에 물었어요. '식물들끼리도 대화를 할 수 있나요?' 역시 올리자마자 답글이 달렸어요. 아마 기다리고 있던 것이 분명해요. 내공 100을 건 저 녀석이 나무가 아픈지 물었으니, 대화할 수 있는지도 궁금하겠지? 하는 심정으로요. 답글은 꼭 ChatGPT가 대답해 준 것 같았어요. '식물들은 우리가 대화하는 방식으로는 의사 소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식물들 간에는 서로의 존재와 주변 환경에 대한 신호를 주고받고 상호작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1. 화학물질 통신 2. 근접 통신 3. 화학 또는 음향 신호. 전반적으로, 식물들 간의 의사소통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화 형식은 아니지만, 그들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생존에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반응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내가 우려했던 것처럼 나무는 나무끼리 대화가 가능했어요. 그래서 장식을 안 하기로 했어요. 장식을 한다고 하면, 화분 위에 살포시 두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했어요. 그럼 그 누구도 질투를 안 할 거예요. 아프지도 않을 거고.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문뜩 나무에게 미안했어요. 자연에서 더 깊고 크게 자랄 수 있겠지만, 방구석에서 내 옆을 지키고 있는 것에 미안했어요. 또, 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을 수 있는데 억지로 둘이 묶여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도 사이좋게 가지를 교차하며 자라는 것을 보니 둘 사이는 좋을 거예요. 상생이란 그런 거겠죠. 그런 모습이 기특해서, 선물을 주고 싶었어요. 꾸밈보다는 쓸모에 더하는 걸 생각했어요. 지긋이 두 나무를 바라보다 제법 그럴 듯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둘 사이를 고정해 주는 트위스트 타이에 리본 장식을 달았어요. 지지대에 조금 더 힘을 실어 두 나무를 잡아 주었어요. 이전에도 충분히 멋진 트리였지만, 12월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여요.


  고심 끝에 장식한 리본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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