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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Dec 08. 2023

일 하면서 우아하게 숨 쉬는 법

일 하면서 우아하게 숨 쉬는 법

  먼저, 의자에 앉아 올바른 자세를 취해요. 허리 등받이에 밀착하여 등과 허리를 펴고. 의자 안쪽까지 깊숙이 몸을 넣어 앉아요. 구부린 무릎의 각도는 90도를 유지하도록 하고 무릎 높이는 엉덩이보다 약간 높게 해야 해요. 하지만, 의자 높이를 제일 아래로 내렸음에도 양 무릎 높이는 엉덩이 높이보다 높지 못해요. 아마도 다리가 짧은 탓이겠죠. 발바닥은 바닥 전체가 완전히 바닥에 닿도록 앉는 것이 의자에 앉을 때 올바른 자세라고 해요. 그렇게 올바르게 앉은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자세가 불편해요. 올바른 자세는 불편함을 수반하는 것 같아요. 바른 건 불편한 걸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딴짓을 하나 봐요.)


  오늘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겨울 공기는 은은한 찬 공기예요. 바람 한 점 없이 정말 은은하게 흘러들어와요. 은은한 이라는 단어가 너무 좋아요. 은은한, 은은한. 지난밤 내 방을 지키던 공기들도 은은한 겨울 공기가 좋은지 어수선하지 않아요. 고요해요. 형광등이 아닌 조명을 켜 두었어요. 조명은 주광등이에요. 주황색인줄 알고 시킨 주광등은 백색이었고, 방안 가득 겨울 빛이에요. 빛의 밝기를 따지자면 역시 은은해요. 은은한 분위기 덕분에 밖과 다름없는 겨울이에요. 나는 지금 겨울 한가운데, 바르게 앉아 있어요.


  겨울 한가운데 바르게 앉아 귤을 까먹어요. 귤은 반으로 나누어 까먹어요. 귤은 사람마다 까먹는 방법이 달라요. 반으로 나누어 까먹기 시작한 때는 얼마 안 되었어요. 지난겨울 제주도로 놀러 갔을 때, 귤을 노나 먹던 친구가 반으로 나누어 준 뒤로 그렇게 까먹기 시작했어요. 제법 나누기도 좋고, 귤을 까먹는 것에 있어 스킬이 있어 보였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아해 보여요! 귤을 까먹는 것이 우아할 것까지 있을까 싶지만, 분명 반으로 쪼갠 귤껍질 사이에 귤을 한 알씩 꺼내 먹는 것은 꼭 보석 상자에서 보석들을 하나씩 꺼내어 입으로 가져가는 것 만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 보석은 주황색이에요. 순간 낡은 복주머니에서 알사탕을 꺼내어 먹는다는 수학 지문이 생각나긴 했지만, 분명 다른 느낌이에요.


  그렇게 귤 하나를 다 까먹고, 의자에 왼쪽 무릎을 걸쳐 앉아요. 우아한 의식은 금방 지나갔어요. 귤을 까먹은 그 시간만큼은 분명 우아했어요. 자세를 바르게 했고, 은은한 공기. 겨울을 온전히 느꼈어요. 들이킨 숨에는 우아함이 녹아 있었고, 일을 하는 순간이지만. 해방감 마저 주었어요.


  아직 퇴근 시간을 멀었고, 베란다의 귤은 나를 부르고 있어요. 한 번 더 숨을 크게 들이쉬어봐요. 은은한 향이 온몸을 고취시켜요. 그리고 다시, 바른 자세를 취해요. 나에게는 충분한 시간과 귤이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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