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선 나무의 존재를 새삼 실감한다. 산 생명이란 걸.
아무것도 없는 싸늘한 숲 속에 싱그러운 연둣빛 잎이 피어날 때
연약한 연둣빛 잎들이 점점 초록으로 자라나며 커갈 때
초록의 잎들이 강한 줄기와 함께 진초록 무성한 숲이 될 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열심히 일하고, 길고 짧은 휴가를 보내기도 하고.
깊이 공감하고 서로 사랑하고, 술자리 논쟁을 벌이고,
축하하고, 함께 슬퍼하고, 미래를 생각하고.
길다면 길었을, 짧다면 짧았을
그 시간들이 모여 단풍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울긋불긋, 생각지도 못했던 단풍이 되었다고.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단풍이 되었다고.
설악산 대청봉이나 굽이치는 한계령이 아니라도
우리 동네 몇 그루 선 곳도 다 단풍이 물들었다.
가까이서 본다면, 그렇게 예쁘기만 한 건 아니다.
예쁘지만 한편으론 사라지는 존재란 것을 알 수 있다.
저기 선 나무의 존재를 새삼 실감한다.
저건 살아있는 생명이란 걸.
그래서 말을 걸어 본다.
나는 어떤 단풍일까 생각해 보기도 하고.
나뭇잎은 초록색. 우리 눈에 엽록소의 빛만 보이기 때문이다. 엽록소가 존재하는 이유는 당연히 광합성을 위해. 물을 가져와 햇빛, 이산화탄소와 버무려 에너지를 만드는 게 광합성. 추워지면 그만한다. 광합성을 하지 않으니, 엽록소는 사라지고 그 아래 숨었던 안토시안, 카로티노이드가 드러난다. 붉고 노란빛이다. 왜 춥다고 광합성을 멈출까. 월동준비. 일조량이 줄고, 기온이 떨어져 얼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 얼지 않기 위해서 잎을 버린다. 방법은 잎과 줄기 사이에 떨켜를 만드는 것이다. 떨켜는 뿌리의 수분과 영양이 잎으로 가지 못하게 막는다. 그때 엽록소 클로로필은 사라지고 울긋불긋한 색소들이 보란 듯 빛낸다. 나무는 결국 잎을 다 떨어뜨리고, 온몸의 물기를 말려 얼지 않도록 단단히 준비한다. 영하 20도 이하의 날씨에도 죽은 듯 참아낼 수 있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활활 타오르는 단풍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