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의 기나긴 역사와 은행 열매에 대해
주저하다 보니 가을이 다 가네? 갔다.
매일 가을을 살면서도, 단풍 구경 한번 하자며 주고받은 말들만 낙엽처럼 쌓였다.
휴일 아침, 동네 골목이 황금빛이 됐다.
수북한 은행 잎 가운데 사람들이 다녀서 한 줄 작은 길이 났다.
그래도 낙엽을 한번 밟고 싶어, 그 위에 새길을 낸다.
'낙엽 밟는 소리'가 들리네.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한 이런 생각을 하다 문득
'은행 떨어진 게 안 보이네'
다행인지 수나무들이다.
암나무들은 도로변에서 냄새를 풀풀 날리고 있다.
강하고 오래됐지만 야생에는 존재하지 않는 나무
이처럼 흔해서 누구나 다 아는 은행나무가 참 길고 긴 역사를 가진 것이 놀랍다. 1억 년도 더 넘은 중생대에 생겨나 빙하기를 견뎌낸 대단한 나무다. 그러다 보니 사고무친 친척 종류가 없이 오롯이 단일종으로만 살아남았다. 튼튼하고 강한 생명력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도시의 오염은 물론이고 병충해에도 강하다. 어디를 가나 가로수로 많은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산에는 살지 못하는 슬픈 아이러니도 있다. 강한 성분 때문인지 약으로도 이용됐다. 특히 잎 속의 성분은 혈액순환과 관련해서 좋은 약이다. 이순재가 모델이었던 광고로 유명한 '징코민' 찾아보니, 알약, 캡슐, 물약까지 다양하다. Ginkgo. 은행나무속을 말하는 이 단어는 원래 일본어로 '긴교' 은빛 나는 살구란 뜻. 한문으로 행은 살구다. 일본 사람이 발견했단 소리.
지팡이가 1천 년 자란, 용문사 은행나무 이야기
생물학적인 연대가 아니라 역사 속 은행나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고목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오래된 것에는 뭐든 이야기를 만든다.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그게 바로 그 유명한 용문사 은행나무라는. 신라 최후의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생
누가 심었던지 용문사 은행나무는 그 자리에 서 있다. 1천 년 이상 산 것으로 추정되고, 높이 60m, 아래쪽 줄기 둘래가 14m라고 하니 몇 아름이나 될까. 한번 재보고 싶지만 천연기념물 30호로서 마치 군사시설처럼 경호받고 있다. 암나무인 이 은행나무가 생산하는 은행이 가을마다 몇 가마니씩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냄새가 싫다면, 사람이 피해 다니면 돼지
아마 냄새도 엄청날 것인데, 열매가 떨어지는 때 가보지 못했으니 모를 일이다. 도심의 은행나무는 암수처럼 지탄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냄새가 싫어서 가로수로서의 자격을 문제 삼는 사람도 있다. 암나무는 심지 말고 수나무만 심고 기르자는 대안은 오래전에 나왔다. 하지만 자연은 오묘해서 열매가 열리기 전에는 암수를 맞히기가 그리도 어려운 거라. 근데 우리 산림 기술의 발달도 대단해서, 이제 DNA를 이용해 묘목 단계에서 암수를 가릴 수 있게 됐다. 아마 지금 새로 심는 은행나무 가로수는 다 수나무가 아닐까.
냄새 정도는 그냥 '아름다운 금빛의 대가라고 생각해도 좋을 텐데' 하는 색각도 든다. 하지만 세상에는 도저히 참지 못하는 냄새도 있을 테고, 그것도 사람마다 다를 테니까. 그렇다면 사람이 피해 다니면 돼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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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자주 갔던 맥주집이 있었는데, 그 집 대표 안주가 '아무거나'였다. 그것은 정말 아무거나들의 집합이었는데, 쟁반 가운데 은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살살 소금을 뿌려 짭짤하게 구워낸 게 맛이 좋았다. "독 성분이 있어서 많이 먹으면 안 된다"라고 하면서도, "여기요, 은행 좀 더 주세요" 그러면 은행을 가져왔다. 갈 때마다 녹음기를 튼 것처럼 그랬다. 정말 통큰 사람들이 은행을 주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