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8/2023
예전에 수능을 보러 가던 아침을 상상했는데, SAT는 역시 수능과 다르긴 하다. 모든 학생이 한꺼번에 같은 날,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그간의 노력을 평가받는 것인 수능과 매월 있는 시험을 원하는 날을 골라 시도해 보고 싶은 만큼 횟수 제한 없이 치를 수 있는 SAT는 다른 시험이긴 하다. 물론 그런 편의에는 매번 치르는 시험에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말이다.
내년부터 온라인 형태로 테스트가 바뀐다며 몇 달 전에 아이가 SAT를 신청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한국으로 생각하면 언어영역과 수리영역만 포함된 테스트처럼 보인다. 1600점 만점이라던데, 공부를 제법 하는 아이들은 1500점 이상을 목표로 하는 모양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시험을 치러 아이와 함께 바로 옆 도시로 이동했다. 도시 간 이동이라 하나 이 동네는 워낙 도시 규모가 작다 보니 오래 걸리는 거리는 아니다. 차로 15-20분 남짓. 낯선 학교에 도착해 주차장에서 아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차분하게 보라고, 다음에 또 보면 되니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아이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긴장감은 그리 높지 않다.
기회가 또 있다는 게,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준다는 게, 어쩌면 이미 한국과 미국은 어릴 때부터 조금은 다른 사회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패가 허용되는 사회. 단 한 번의 시행과 결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해볼 수 있게 충분한 기회를 주는. 미국에서의 성장기를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나 옆에서 아이의 학교 생활을 보며 많은 차이를 느낀다.
고등학생인 아이의 성적표에서 지금까지 자라며 단 한 번도 석차를 본 적이 없다.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모든 수업이 진행되고 학기 중의 과제와 중간중간 치르는 퀴즈나 테스트가 모두 성적에 반영된다. 항상 꾸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한 번 실수를 하더라도 만회가 가능한 구조다. 거기에 학기 말에는 그간 치렀던 테스트 중에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을 골라 다시 테스트를 볼 수 있는 기회도 준다. 평가를 통한 등수를 매기는 것이 목표가 아닌 거다. 물론 그럼 어떻게 우수한 아이들을 찾아낼 수 있나, 변별력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기기도 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지금도 물론 모두 이해한 것은 아니나 조금은 알 수 있을 거 같다. 절대 평가를 기준으로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는 아이들 중에 각 대학의 기준에 따라 학생을 선발하는 게 미국의 입시인 듯하다. 그러다 보니 어떤 면에서는 한국에 비해 수월해 보일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나도 아이를 통해 처음 경험하는 시스템이라 충분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스트레스/경쟁이 한국에 비해 조금은 덜 한 것은 맞는 듯하다. 물론 상위권 대학-흔한 말로 아이비리그 같은-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은 여기서도 힘들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많은 것들을 준비해 스펙을 만들어야 하지만 말이다.
아이를 내려주고 오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날들이 어떨지,… 나와 다른 아이의 경험들이 어떤 것들을 아이에게 주고 있는지,…
그저 아이의 살아갈 세상이 조금은 편안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