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근현대사 속 한 가족의 숨겨진 진실

류, by 히가시야마 아키리

by 눈보라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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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 편하게 읽을 만한 추리소설을 찾고 있었다.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천했다는 사실에 눈길이 갔다.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라는 설명, 미스터리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이 소설은 오히려 성장소설에 가깝다. 일본 이름의 작가가 대만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다는 자체도 색다르고, 소설의 문체나 느낌도 지금까지 읽었던 일본 소설과는 차이가 있었다. 오히려 예전에 읽었던 하진의 [기다림]이란 중국 소설과 닮아있는 느낌이었다.


중국 본토에서 국민당을 따라 이주한 중국인-외성인이라 불린다-인 예준린은 이 소설의 화자인 예치우성의 할아버지이다. 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받던 예치우성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 할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밝히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중심 스토리는 할아버지의 죽음과 그 미스터리의 해결이지만, 긴 시간의 흐름을 예치우성이 성장해 가며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들과 주변인들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할아버지가 살해당하고 한동안 이 부분에 대한 언급 없이 예치우성의 성장소설처럼 전개되어 초반의 긴장감과 흥미를 잃게 되었다. 하지만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라는 생각을 버리고 읽다 보니 작가의 뛰어난 표현력과 문장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밑줄을 그으며 읽게 된 단락들도 상당수다.

2차 세계대전의 항일 전쟁 후에 파벌이 나뉘어 내전을 한 나라가 한국만은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 했다. 장제스가 이끈 국민당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전쟁이란 혼란 속에 죽고 죽이고 원한 관계가 되었던 국민들. 사실 국민들은 어떤 편도 아니었다. 그저 살기 위해 싸웠던 것뿐.


세계 어디나 어른들이 흘리는 눈물에는 다분히 정치성이 있다.
할아버지의 말에는 마른 흙 위에 무한히 펼쳐진 보리밭을 연상시키는 강한 산둥 사투리가 평생 있었다.
고통과 원한은 언제나 말을 키우는 법이다.
“슬픔만은 안갯속에서 뻗어오는 등대 불빛처럼 늘 거기에 있으면서 우리가 좌절하지 않도록 이끌어주지.”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지, 모르는 일은 모르는 법이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지. 그래도 꾹 참으면 그 사건은 언젠가 우리 안에서 통증을 날리고 복구할 수 없는 상태로 묻히게 된다. 그리고 우리를 지키는 비취 같은 보석이 된다.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것 대부분은 다른 이의 시계로 측정되는 것이라 아무래도 이런 오해가 생긴다.
사람에게는 성장해야 하는 부분과 성장할 수 없는 부분과 성장해선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혼합된 비율이 인격이고, 우리 가족에 관해 말하자면 마지막 부분을 존중하는 피가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문학은 때로 비겁하기 그지없고, 때로는 용감무쌍하다. 그런 문학이 현실을 대하는 태도는 싸움과 흡사했다.
모든 남녀 관계가 그렇듯 파도와 바람이 일지 않을 때는 자기혐오조차 대충 넘길 수 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둘의 관계가 더는 돌이킬 수 없을 데까지 뒤틀렸을 때야, 모든 균열이 시작된 시점으로서 비로소 아련하게 떠올리는 것이다.
걱정은 걱정으로, 기만은 기만으로 미뤄둘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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