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8주 차. Just don't do it!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by 시애

“진짜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임산부가 밤중에 갑자기 먹고 싶은 게 생각나고 남편이 헐레벌떡 그걸 구하러 가는 클리셰는 대체 언제부터 생긴 걸까. 매번 먹고 싶은 음식이 없다는 나를 보며 식구들은 혀를 찼다. 먹고 싶은 걸 먹어야 애가 눈이 커진다는데 왜 말을 안 하노, 쯧쯧. 말만 하믄 다 사준다니까, 쯧쯧.



사실은 먹지 않을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한걸요. 나는 입덧을 겪지 않는다는 20%의 임산부에 속하지 못했고, 어느 날부터는 음식 먹는 영상만 봐도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게다가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에는’ 정말로 먹고 싶은 게 없었다. 속이 좀 가라앉고 나면 얄궂게도 임산부 자격으로는 먹을 수 없는 음식들만 잔뜩 생각났다. 쫄깃하고 고소한 회가 먹고 싶다. 녹진한 생연어도 좋다. 갑자기 어릴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식혜도 생각나고, 안 마시던 콜라도 탐난다. 수제 맥줏집 가서 바이젠이랑 스타우트 한 잔 마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커피에 초콜릿, 녹차, 홍차, 밀크티까지 카페인 들어간 음료는 뭐 그리 많은지. 붕어빵은 자고로 ‘팥붕’이 근본인데, 왜 먹지를 못하니. 날음식과 알코올 말고는 어마어마한 양을 장복하지 않으면 걱정 없다고는 해도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음식뿐만 아니라 각종 약들도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면역력이 떨어져 감기에 걸려도, 커져 버린 자궁이 위를 압박해 소화가 안 되어도 그냥 견뎌야 한다. 임산부가 먹어도 되는 약을 열심히 검색하다 완전히 안전한 약은 거의 없다는 사실만 매번 깨닫고, 내일은 생강차나 매실청을 주문해야겠다는 결심을 반복했다(그러나 생강도 많이 먹으면 자궁수축을 유발한단다). 혈액 순환 저하와 호르몬 문제로 어깨, 허리, 종아리에다 손가락 관절까지 아파도 파스 성분이 들어간 건 죄다 피해야 한다.



어깨와 허리가 너무 아픈 날에는 욕조에 뜨듯한 물이라도 받아 몸을 풀고 싶지만,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건 샤워 물줄기를 맞으며 근육을 조금 주무르는 것 정도. 그나마 샤워조차 체온이 올라가지 않게 너무 뜨겁지 않은 물에서 짧게 해야 한다. 근육을 풀기는커녕 사용하던 바디워시와 샴푸를 계속 써도 되는지, 화장품도 바꿔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다 나온다.



샤워를 마치고 갈아입을 속옷도 줄었다. 분비물 색깔이 어떤지, 혹시 피가 섞여 나오지는 않는지 매일 살펴야 하므로 팬티는 밝은 색으로만 입어야 한다. 황당할 정도로 젖가슴이 쑥쑥 부푸는 중이라 브래지어는 이미 맞는 게 거의 없다. 배를 압박하는 하의도 입을 수가 없어서 자루 같은 원피스를 몇 개나 새로 샀다. 굽 높은 신발은 포기한 지 오래다.



옷을 차려입어도 갈 수 있는 곳에 한계가 있다. 전처럼 두 시간 가까이 씩씩하게 걸어 다니기에는 마음이 쓰인다. 덜컹대는 진동이 좋지 않다고 하여 차를 오래 타기도 뭣하다. 계단도 처-언천히 오르내려야 한다. 짐을 무겁게 들고 다니는 것도, 사람이 너무 많은 곳도 조심스럽다.






이거, 아무래도 망한 것 같아. 애가 배 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고 하도 들어서 진짜 편한 줄 알았지. 앞으로는 어쩌나. 엄마 노릇은 퇴근도 못 하는데.



지금 투덜거리는 글을 쓰면서도 모니터 앞에서 전자파를 과하게 쐬고 있는 게 아닌지 신경 쓰인다. 어쩔 수 없다. 엄마니까. 아기만 건강할 수 있으면 이까짓 거 다 견딜 수 있지. 문득 귓가에서 목숨 걸고 앵앵대는 모기가 안쓰럽다. 너도 엄마라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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