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7주 차. 얼룩무늬 인간

그게 바로 저예요

by 시애

피부가 흰 사람과 검은 사람이 결혼하면 얼룩무늬 인간도 태어날 수 있는 걸까? 속살이 새하얀 아빠와 검은 편에 속하는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달마시안 같은 얼룩무늬 인간으로 태어나 세간의 주목을 받... 지는 않았으나 양쪽 다리의 색깔이 서로 다르다. 왼쪽 다리는 아빠 닮아 하얗고, 오른쪽 다리는 엄마처럼 좀 검다. 털 색깔마저 서로 달라서 왼쪽 다리의 털은 거의 보이지도 않는데, 오른쪽 다리의 털은 역시나 좀 검다. 때 색깔도 양쪽이 서로 다르다. 왼쪽 다리만 햇빛에 태워보려고도 했으나 새빨갛게 되었다가 다시 하얘졌다. 왼쪽만 색칠할 수도 없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자세히 보면 다리를 제외한 온몸에 멜라닌 색소가 깔끔하게 안착하지 못하고 좀 얼룩덜룩하게 하얗고 검다. 해상도가 낮아서 하얀 픽셀과 갈색 픽셀이 구분되어 보이는 상태 같달까. 흰색과 갈색의 점묘화 같기도 하다. 발끝까지 점점이 분포하지 못하고 끝내 좌우 정렬한 게 양쪽 다리이고. 다리만은 똑 떨어지게 왼쪽은 밝은 색이고 오른쪽은 어두운 색이다. 끝까지 뚝심 있게 섞여 있지 그랬니. 흰색 픽셀과 갈색 픽셀이 뒤섞인 면들은 멀리서 보면 대강 정상처럼 보이는데. 그러다 섬뜩한 생각도 한다. 뚝심이 잘못 발현되어 발끝에서 이마 끝까지 좌우 정렬했으면 큰일 날 뻔했지. 아수라 남작 실사판이 될 뻔했어.






너의 정자와 나의 난자가 콜라보한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 작고 마른 체구에 얼굴은 긴 편인 나. 상체가 굵고 둥근 얼굴을 가진 너. 글과 그림과 노래를 좋아하는 나. 숫자를 좋아해 온갖 경제지표와 통계를 줄줄 외고 다니는 너. 새콤한 과일과 달콤한 빵을 즐기는 나. 기름진 고기와 세상의 쓴맛들을 탐닉하는 너. 어느 날은 너와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악의 유전자 조합을 상상했다가 다음 날은 최상의 조합을, 또 다른 날은 그럭저럭 괜찮은 조합을 상상해 본다. 아무리 상상력을 최대치로 발휘해도 차은우 같은 아들이나 장원영 같은 딸은 나오지 않지만.



“예쁜 것만 보고 있나?”

<스위트홈>의 욕망덩어리 괴물들을 보고 있다가 마침 엄마 전화를 받았다. 웃으며 얼버무렸다. 응. 송강 보고 있어. 송강을 보든 근육 괴물을 보든 결국 내가 만날 아이는 남편과 나의 유전자가 얼룩덜룩 뒤섞인 아이겠지. 거기에 우리 두 사람의 생활 습관과 가치관이 덕지덕지 묻은 채로 자라날 것이다. 당연히. 혹시나 송강과 똑같이 생긴 아기가 태어나면 상당히 문제가 되지 않을까. 아기가 바뀐 건지 백 번 고민해야 해.






1997년에 나온 <가타카>라는 영화가 있다. 유전자의 우열로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를 그린다. 유전자조작을 통해 나쁜 인자가 제거된 우수한 아이를 낳는 것이 대세인 세상에서 자연적으로 잉태된 아이인 빈센트가 주인공이다. 빈센트의 꿈은 우주비행사이지만, 항공 우주 회사 ‘가타카’에서는 열성유전자를 가진 그를 비행사로 뽑아주지 않는다. 우성유전자 증명 브로커를 통해 제롬을 만나 그의 소변, 피, 머리카락을 공급받고 나서야 빈센트는 비로소 자신의 꿈에 다가갈 수 있게 된다. 학창 시절에 본 <가타카>는 충격적이었다. 유전 형질로 인생이 결정된다니. 별자리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과 뭐가 다른 거야.



유전자를 조작해 모든 면에서 우수한 ‘나’를 그려보기도 했다. 손재주와 요리 솜씨와 매끄러운 피부를 타고난 엄마와 사교적이고 다정하며 구기 종목 운동선수까지 했던 아빠의 좋은 점만 골라 빚었다면 내 삶은 달라졌을까.



그러나 그중 어떤 것도 가지지 못한, 이토록 엉망진창인 나를 부모님은 아껴주셨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엉망진창이며 해괴하다. 세상에는 양쪽 다리의 색깔이 서로 다른 사람도 있는걸. 해괴한 사람들이 만나 모자란 서로를 아낀다는 사실만큼 낭만적인 게 있을까. 나 또한 아기의 얼룩무늬까지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완벽하게 우수하지 않아도, 얼룩덜룩한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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