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 앞에서 유턴입니다
어쩐지. 올해의 타로카드(사주로 올해 운세를 보듯 타로카드로도 가능하다)가 <THE TOWER>더라니. 카드의 의미처럼 지금까지의 세상이 무너졌다. 막연하게, 혹은 구체적으로 그리던 모든 미래를 싹 다 갈아엎어야 한다.
임신을 했다. 뒷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임신테스트기에 빨간 줄이 두 개였다. 겁부터 덜컥 났다. 인공수정, 시험관, 두 번의 자연임신까지 내 자궁은 수정란을 사람으로 키워내지 못했다. 어느 날 후둑후둑 피가 쏟아지면 사실상 그걸로 끝이었다. 이후에는 어떤 간절함으로도 끝내 아기를 살릴 수 없었다. 쏟아지고 남은 부분을 자궁 안에서 깨끗하게 긁어내는 수술이 필요한 핏덩어리가 될 뿐이었다. 누구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으나 나는 내 몸이 원망스러웠다.
다시 시험관을 시도해 볼까도 했지만, 매일 내가 내 배에 호르몬 주사를 놓으며 몸서리칠 날들이 미리 지겨웠다. 이대로 영영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비자발적 딩크로 재미있게 살아보자. 아이 없이도 행복할 내일을 열심히 그려 놓았다. 그랬었는데.
남편에게 두 줄 선명한 테스트기를 보이고 당장 산부인과에 갔다. 출산율이 줄었다는데, 산부인과는 북적였다. 한참을 기다려 들어간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자마자 대기가 길었던 이유를 납득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다 물어보세요, 어머니. 매사 불안한 예비 엄마들이 얼마나 질문할 게 많았을까.
진료실 옆 커튼으로 가려진 공간에 들어갔다. 왼쪽에 또 다른 커튼으로 가려진 간이탈의실이 보였다. 커튼 뒤에서 속옷을 벗고 나와 ‘굴욕 의자’에 앉았다. 치과 의자처럼 생겼는데 팔이 아니라 다리 받침대가 있는 의자다. 치마를 허리까지 걷어 올린 채로 의자에 누워 다리를 쩍 벌려 받침대에 얹는다. 옛날식 통닭 튀김 같은 자세로 잠깐 참회한다. 내가 오늘 구석구석 잘 씻었던가. 냄새나면 어떡하지.
“힘 빼세요. 조금 불편합니다.”
질 속으로 차가운 초음파 기기가 들어온다. 초음파 기기를 이리저리 옮기며 자궁에서 근종의 위치를 확인하고 아기집의 상태를 점검한다. 모니터 가득한 흑백 무늬를 잠시 지켜본다. 커튼 밖의 남편도 바깥 모니터로 같은 화면을 보고 있다.
“여기 보이는 게 아기집이고요, 위치 괜찮고...”
종합적으로 무난한 상태라는 소견. 산부인과에서 평범하고 이상 없다는 말을 듣는 게 처음이다. 숨이 쉬어진다.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풀썩 앉았다. 머릿속이 하얗다. 이제부터 뭘 해야 하나. 그동안은 항상 ‘안정이 필요한’ 임산부여서 내내 누워만 있었는데. 일단 소파 손잡이를 베개 삼아 누웠다. 그것밖에 해본 게 없어서.
한참 후에 다시 일어나고도 익숙했던 일상의 장면들 하나하나가 낯설게 보여 삐걱거렸다. 이를테면, 쪼그려 앉는 자세와 앞으로 숙이는 자세가 죄다 안 좋다는데 대체 바닥에 있는 물건은 어떻게 집어야 하나, 아랫배에 힘을 주면 안 된다던데 변을 볼 때는 어느 정도까지 힘을 줘도 되는 걸까, 같은 문제들을, 일일이. 오늘부터 일상이 나아가던 각도가 매일 조금씩 틀어지겠구나. 환영한다, <THE T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