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4주 차. 이석증의 역습

다시 도올고오 돌고 돌고 돌고

by 시애

평범할 뻔했던 목요일 오후, 거실에 누워 있으니 내 옆으로 오는 강아지 발톱 소리가 들렸다. 웃어주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뿔싸. 당했다.



잊고 있었다. 참, 나는 임신 전에도 편히 자는 게 힘들었지. 이석증이 ‘있다’. ‘있다’라고 표현하는 까닭은 가까스로 나아졌다가도 자주 재발하는 병이기 때문이다. 목요일 오후, 거실에서처럼.






이석증은 귓속에 있는 반고리관에 ‘이석’이 잘못 들어가서 어지러운 병이다. 반고리관과 이석은 둘 다 우리 몸의 평형감각에 관여하는 기관인데, 둘이 만나면 평형감각을 희한하게 자극하는 모양이다. 고개를 홱 돌리면 코끼리 코를 스무 바퀴 돌고 난 후처럼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고개를 숙여도, 젖혀도 눈앞이 돌아간다.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이석증의 존재를 잊고 고개를 홱홱 돌리다가는 속으로 ‘아이고, 잘못했습니다.’를 외치며 어지러운 시간을 잠시 견뎌야 한다.



자는 동안에도 옆으로 확 돌아눕지 않도록 조심했다. 천장만 보고 정자세로 누워 자다 보면 허리가 아팠다. 허리가 아파 하룻밤에도 두세 번씩 잠에서 깼다. 잠결에 옆으로 누우려는 나에게 놀라 잠에서 깨기도 했다.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기어코 자다가 고개를 잘못 돌려 재발했을 때의 절망감이란.



임산부에게는 이석증이 흔하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다. 이석이 제자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여러 원인 중 하나가 칼슘 부족이다. 아기가 엄마 몸속 칼슘을 살뜰히 빼가서 제 골격을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흥부의 부인은 열 명 넘게 낳으면서 이석증이나 골다공증 안 걸리고 뼈가 성했으려나. 아이를 한 명 낳을 때마다 엄마 뼈에서 한 사람 분량의 칼슘을 내주는 건 어마어마한 일인데.



옆으로 누워 자는 습관도 이석증의 원인 중 하나다. 이석이 반고리관으로 잘못 들어갈 가능성을 높이는 자세인가 보다. 어쩌나. 8주 차부터인가 배가 땅겨서 바로 누워서는 잠들기가 힘들다. 지금은 힘든 정도이지만, 나중에 아기가 더 커지면 바로 누워 자면 안 된다. 아기와 양수 덩어리가 위에서 같이 내리누르면 나도 무겁고 아기에게 산소 공금도 제대로 안 된단다. 옆으로 누워 잘 수밖에 없는 임산부는 오늘 밤에도 이석이 무사태평하기를 칼슘과 비타민D(칼슘 흡수율을 높인다)의 신에게 기도해야 하는 것인가.






이전에 다니던 이비인후과는 약물 처방 없이 이석 치환술 만으로 이석증을 치료해 주는 곳이었다. ‘이석 치환술’은 자세를 이리저리 바꾸고 때로는 귀 가까운 곳을 툭툭 두드리면서 잘못 들어간 이석이 반고리관에서 빠지도록 유도하는 치료법이다. 빠진 이석은 어디로 갈까. 어딘가에서 방황하다 어느 날 반고리관에 다시 쏙 빠져버리는 걸까. 그래서 자꾸 재발하는 걸까. 의사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고개를 돌리면서 혼자 생각했었다.



어차피 약물은 먹지 않는 곳이지만, 그래도 치료받는 게 망설여졌다. 이석 치환술 받는 동안에 엎드렸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데, 엎드리는 자세가 임산부에게 좋지 않다기에. 어쩔 수 없다. 당장의 내 어지러움보다 본 적도 없는 아기가 더 걱정이다. 일단은 천천히 움직이면서 버텨볼까. 인터넷에서 보니 두 주쯤 견디면 절로 낫기도 한다던데.


그리하여 겁 많은 엄마는 지금 버티는 중이다. 고개를 빳빳하게 든 채로, 최대한 느릿느릿 움직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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