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5주 차. 언젠가는 할 예정

미래의 나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by 시애

일렁이는 입덧 파도에 제법 적응했다. 15주를 넘어서면 자궁 속 태반이 거의 완성되어 입덧의 원인이었던 융모성선 호르몬이 줄어든다고 한다. 줄어들었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방심하는 순간 “힝! 속았지?” 하며 꽥꽥 구역질을 해댔다. 나의 경우에는 입덧 중상 중 먹덧(끝없이 먹어야 토하지 않음)과 물덧(물비린내에 토함)이 끝의 끝까지 남았다.



하지만 내게도 입덧 전장의 한복판에서 두 달 넘게 살아남은 노하우가 있지. 타는 목마름을 조금 견디며 신생아처럼 두 시간마다 뭔가 입에 넣어 주면 토하지 않을 수 있다. 토하지 않는 하루라니! 우루과이까지 날아갈 것 같았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 랄랄라랄랄랄랄라. 먹고 먹고 먹다 보니 배가 나왔다. 아직 아기는 손바닥 크기보다도 작다던데, 이건 아무래도 내 뱃살이야.






당장의 메슥거림이 줄어들자, 미래의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인간 아기는 대체 어떻게 키우는 걸까... 캥거루나 코알라처럼 주머니에 집어넣을 수도 없고, 기린처럼 낳기만 하면 알아서 걷는 것도 아니고. 다큐멘터리에서 동물들이 분만하거나 새끼를 기르는 장면을 오래 본 적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실제로 아기를 어떻게 낳아서 키우는지는 오히려 미스터리다. 가까이에서 크던 조카도 없었고, 어릴 때 실시간으로 지켜봤을 게 분명한 동생의 성장 과정은 하나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가끔 친구들 집에 놀러 갔을 때 본 아기들은 그냥 귀엽기만 했다.



중고 서점에서 옛날에 보던 백과사전 두께의 육아서를 샀다. 딱 임신 중기 몸의 변화 항목까지 읽고 나니 지쳐서 더 못 읽겠다. 너무 두꺼워.



일단 장비부터 질러보자. 책장을 후루룩 넘겨서 ‘육아용품’ 항목을 찾아냈다. 인터넷 맘카페에서 ‘필수템’을 검색해 추천 수 많은 게시글 몇 개를 캡처했다. 컴퓨터를 켜서 육아서와 게시글에 나와 있던 아이템을 정리했다.


중고 물품부터 천천히 사볼까. 동네 중고 거래 앱을 깔았다. ‘육아용품’ 카테고리가 아예 따로 있었다. 아기들은 금방 크니까 사용 기간이 짧아서 그렇겠지. 온갖 물건들이 다 있었다. 목록을 내려보다 젖병소독기와 분유 제조기를 샀다. 젖병소독기는 간단한데, 분유 제조기는 설명서를 봐도 구조가 복잡하다. 나중에 날 잡아서 한 번 연구해야지. 나머지 중고 육아용품들도 틈틈이 찾아봐야겠다. 지금 말고, 나중에.






이것저것 검색하고 있으니 팝업 광고창과 동영상 알고리즘도 내가 임산부라는 걸 알아챘다. 각종 임신 관련 영상과 육아 브이로그가 추천 영상 목록에 올라온다. 매우 유익하며, 별로 재미가 없다. 알아야 하는데, 배워야 하는데. 이 영상들도 나중에 꼭 찾아보고 공부해야지. 지금은 아무래도 때가 아니고, 나중에.



마음속으로 발만 동동 구르고 다른 영상을 보다 죄책감에 곧 꺼버린다. 덕분에 휴대전화 사용 시간이 줄어들었다. 뭐, 아무튼 건강해지겠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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