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7주 차. 밤이면 밤마다

단독보도 : 수면 실종 사건

by 시애

자다 보면 허리 뒤쪽과 엉덩이가 후끈후끈 뜨거웠다. 누운 자리에서 컴퍼스처럼 엉덩이를 옆으로, 옆으로 옮겨봐도 곧 뜨거워지기는 매한가지였다. 종내에는 포기하고 일어나 거실로 갔다. 아직 체온으로 달궈지지 않은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소파마저 데워지는 새벽녘에는 이제 충분히 식었을 침대로 다시 향했다. 올해 여름밤의 루틴. 깨지 않고 통잠 자보는 게 한 계절 내내 소원이었다.



‘사실은 임신이었답니다!’라는 판정을 받고서야 왜 부뚜막에 앉은 송아지마냥 엉덩이가 뜨거워서 잠을 설쳤는지 이해했다. 임신 때문에 기초체온이 올라가서였구나. 이해했다고 내성이 생기는 건 아니어서 뜨거운 밤은 계속되었다. 지구도 온난화 때문에 매일 자다가 깰까.



방의 온도를 낮춰 보았으나 에어컨과 선풍기를 튼 새벽에는 추워서 깨어났다. 깨지 않는 밤은 다른 은하 같은 무엇이었다. 어딘가 존재한다고는 하는데 도무지 실감할 수 없는.






계절이 바뀌고 나서야 핫한 불면의 밤이 막을 내렸다. 비로소 다른 은하의 존재를 마음속 깊이 믿게 되고 푹 자고 일어나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는 결말, 같은 건 있을 리 없지. 여름이 끝나가면서부터는 다리를 뻗고 누울 수가 없었다. 다리를 쭉 편 채로 누우면 배가 땅겼다. 오우분시 형벌을 받은 걸리버가 된 기분. 손가락만 한 소에 내 뱃살을 묶어 사방팔방에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하여 의사 선생님께 여쭸더니 정상이라고 하셨다. 어쩌겠는가. 정상이라는데.



배가 덜 땅기는 자세를 요리조리 찾다가 무릎을 세우고 누웠다. 훨씬 낫군. 대신 우뚝 솟은 다리가 불편해서 잠이 들지 않았다. 가물가물 잠에 빠져들다가도 세운 무릎이 옆으로 휘청 꺾이면 소스라치며 정신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조심스럽게 왼쪽으로 돌아누웠다. 나의 이석이 허락하지 않아 오른쪽으로는 누울 수 없다. 누운 상태에서 머리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질라치면 세상이 뱅글뱅글 돈다. 매번 “아이고”를 읊조리며 급히 왼쪽으로 고개를 기울여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오래오래 행복한 밤을 보낼 수 있었느냐 하면, 이번에는 밤새 눌린 왼쪽 귀가 뻐근해서 깨기 시작했다. 야간 독박 근무에 시달리는 가엾은 왼쪽 귀.



베개를 바꿨다. 귀를 덜 짓누를, 푹신푹신하다 못해 출렁대는 것으로. 내친김에 옆으로 누울 때 다리를 척 얹을 수 있는 임산부용 바디필로우도 샀다. 나중에 배가 더 나오면 바디필로우 위에 뱃살을 척 얹어 놓고 자면 된다고 한다(응?).



장비도 갖췄으니 이제는 제발 푹 좀 자보자 싶지만, 그새 자궁이 더 커져 방광을 누르게 되었다. 이번에는 화장실인가. 새벽에 저장 용량 줄어든 방광을 비우고 돌아와 다시 누우면 어쩐지 잠들기 전보다 자세가 불편했다. 갑자기 귀도 좀 아프고, 괜히 목도 말랐다. 물을 몇 모금 마시고 귀를 쉬다 보면 어김없이 잠이 깨버렸다. 컵을 든 채로 소파에 앉아 희끄무레한 어둠을 자주 바라보았다. 억지로 다시 침대로 가면 그때부터 신랑이 코 고는 소리가 불법 개조 스포츠카만큼 쩌렁쩌렁했다. 크왕 크와앙 컥! 푸-. 거참. 잘 자네.






소파에서 흐릿한 새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것은 훈련 상황인가. 아기를 낳으면 어차피 오래 잘 수 없을 게 뻔하니 뻔질나게 깨는 걸 연습하라 이건가. 한 번 잠들면 초인종 소리도, 전화 소리도, 문 두드리는 소리도 못 듣고 자던 나인데, 이제는 밤중에 빗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창문을 닫는다. 나중에 아기 울음소리에도 벌떡 일어나 문제를 해결하라는 거겠지. 엄마의 몸이 되어가고 있다. 나의 평안은 잠시 제쳐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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