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퍼서 눈부실, 서툴러서 찬란할
제1회 독립출판 북페어의 테마는 ‘우리들의 첫 책’이었다. 책이 가득한 곳, 게다가 독립출판물이라니! 가고 싶다. 지금도 조심해야 하긴 하지만, 아기가 나오고 나면 언제 또 갈 수 있을지 모르잖아? 너무 오래 걷지 말고 아주 잠깐 구경한 후에, 가만히 앉아서 강의 듣는 거 정도는 괜찮을 거야. 혼자 실컷 정당화를 한 후에 히힛거리며 강의를 신청했다.
여유 있게 도착하면 예쁜 책과 더 예쁜 굿즈 사이를 한없이 누빌 나를 알고 있었다. 부러 강의 시간에 임박하게 도착하여 자꾸 멈추는 눈길과 발길을 억지로 떠밀어가며 강의실로 향했다. 자그맣게 헉헉대며 강의실 뒤쪽 소파에 풀썩 앉았더니, 심장 박동과 태동이 동시에 몸을 울렸다.
강의 주제는 ‘쓰기 시작한 사람’. 쓰면서 지쳤다 해도 쓰고 난 뒤의 나는 이미 그 전과는 달라진 사람이에요. 필력이란 다른 사람이 글을 쓰고 싶게 하는 힘이에요. 태동으로 뽀글거리는 아랫배에 한쪽 손을 얹은 채 강의를 듣고 있으니, 제멋대로 다르게 들렸다. 힘들고 지친다 해도 아이를 낳은 후의 나는 그 전과는 달라진 사람이 되겠구나. 좋은 부모란 다른 사람도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게 하는 사람이겠구나.
‘나의 첫 책’을 떠올렸다. 어쩌다 보니 글을 몇 편 쓰고 묶어 에세이를 한 권 냈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면 문득 황당하다. 내가 쓴 책이라니. 자부심과 민망함과 놀라움과 감사함과 그 모든 것의 이유가 되었던 책. 책을 인쇄했던 그 가을의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경험한 적 없는 강도의 감정이 휘몰아쳤다. 몇 군데의 독립서점에 입고를 하고, 중쇄를 했다. 인터넷에 내 책을 낭독하는 유튜브 영상과 서평이 올라왔다. 처음 뵙는 분들 앞에서 ‘북토크’라는 것을 해봤다. 지역 도서관에 내 책이 전시되었다.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늘어졌다. 모든 순간이 부끄럽고도 찬란했다.
‘처음’들은 그랬다. 책도, 연애도, 교생 실습도, 직장 생활도. 하늘 끝까지 나는 것 같았고, 땅끝까지 숨고 싶었다. 엄마가 되기 시작한 지금도 그러하다. 임신이 처음이라. 내 아이가 처음이라.
꼬꼬마 대학생이었던 시절에 한참 위의 선배와 그보다 더 위의 선배와 아예 까마득하게 위인 선배가 나누시던 대화를 옆에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선배님, 영어 유치원에 보내야 할까요?”
개중 가장 어린 선배의 질문에 연배가 있으신 선배가 답하셨다.
“애 크고 나면 영어 유치원이든 일반 유치원이든 똑같아.”
이어서 나이 지긋하신 선배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유치원, 그거 보내나 안 보내나 별 상관없다.”
‘상관없다’에 닿기까지 선배님에게도 무수한 ‘처음’의 시간이 있으셨을 것이다. 이걸까 저걸까 고민하고, 다 똑같다고 말할 수 있게 되고, 결국은 뭐든 상관없다고 웃을 수 있는 데에 이르는 과정이 세월과 함께 내 몸도 통과해 갈 것이다. 어설퍼서 눈부실, 그 모든 것의 처음. 고민과 분투와 애씀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후의 나는 전과는 달라진 사람이겠지. 다 괜찮다며 웃을 수 있는 날도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