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으로 건너가는 연습
“친정엄마가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갑자기 너무 무서운 거야.”
오래전에 들었던 직장 선배의 말을 복기하며, 아직 오지 않은 상황을 그려본다. 조리원을 퇴소한 후, 집에 아기를 데리고 온다. 딸이 걱정된 엄마가 집에 같이 와서 이것저것 챙겨주고 다시 친정으로 가신다. 걱정 마시라 한껏 웃으며 엄마를 보내지만, 철문이 철컥 닫히는 순간, 내 뒤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신생아. 이제 집에는 나와 아기밖에 없다. 내가 잘못해서 이 조그만 생명체를 죽이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이 밀려온다. 당장이라도 엄마를 다시 부르고 싶다. 아기가 숨을 쉬는지 걱정되어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는 선배의 경험담이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생생하게 무서웠다.
평생 일만 하신 엄마를 고생시키지 않으리라 누차 결심했었으나 막상 겁이 나니 엄마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횡단보도 두 개만 건너면 친정에 뛰어갈 수 있는 아파트로 서식지를 옮겼다. 거주 이전의 자유를 실현하고 나자 미리 안심이 되었다. 죽어가던 식물도, 앓던 강아지도, 아픈 식구들도 엄마 손을 거치면 다 생생해지니까, 나와 아기도 괜찮을 것이다. 엄마 옆에 있으면.
마음의 평온과는 별개로 몸은 서식지 대이동에 긴장했던 모양이다. 그러잖아도 철분제를 먹기 시작한 후로 매번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같은 대변을 보고 있는데, 이사를 앞두고는 이틀 동안 아랫배만 아프고 변을 볼 수가 없었다. 이사한 집에 물건을 대강 쑤셔 넣고 어영부영 청소까지 하고 나서 자리에 누웠다. 홀가분했다. 동시에 배가 아팠다. 거사를 치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었다. 드디어.
아직 익숙지 않은 화장실로 갔다. 변기에 앉아 힘을 주었다. 나오지 않는다. 아랫배에 어디까지 힘을 줘도 되나 고민하면서 힘을 더 주었다. 자궁 확장으로 배가 아픈 걸 변의로 착각하는 걸까. 조금만 더 해보자. 끄응.
순간, 액체가 주르륵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녹즙 같은 짙푸른 연두색이다. 뭔가 잘못됐다. 머리가 지잉지잉 울렸다.
화장실을 나와 다다다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녹색 변의 원인은 다양했다. 녹색 채소 과다 섭취? 이건 아닌 것 같고. 담즙? 이건가. 장염? 이건 큰일인데. 철분제? 아, 이쪽이겠다. 어설픈 자가 진단을 끝내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철분제 때문이겠지. 전부터 계속 먹었는데 왜 하필 오늘만 이런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철분제 탓이겠지. 다행히 이튿날 아침에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다시 영접할 수 있었다. 임산부는 똥으로도 색과 질감을 표현하며 예술을 한다.
포장 이사라 해도 집주인 손으로 다시 정리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 이틀 동안 캐비닛 두 개를 비웠다가 다시 채우고, 제일 작은 방 하나를 비웠다. 재채기를 시작했다. 머리 어깨 허리 종아리가 쿡쿡 쑤셨다. 콧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흐르지 못하게 훌쩍거리고 있으니, 뭘 먹을 때마다 숨이 막혔다. 양치할 때도 숨쉬기가 힘들어 헉헉댔다. 그리운 비강 호흡의 날들이여.
사흘을 버티다가 이비인후과에 갔다. 벌린 입안에서 부어오른 목을 목격한 의사 선생님이 진단키트를 꺼내셨다. A형 독감이라고 했다. 임신 중이라 더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35,000원을 지불하고 ‘A형 독감에 걸린 임산부’라는 타이틀만 얻은 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알약과 주사 대신 횡단보도 두 개를 건너온 죽으로 가래를 삭였다. 이사 후유증 한번 그악하게 앓네.
당분간은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될 테지. 그러나 몇 달 후면 같은 집에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 터다. 그때도 아기가 있는 삶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겠지만, 아마 또 아프고 울고 헤매겠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결국은 뭐, 어떻게 잘,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