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열심히 살지는 않겠다는 다짐
뱃속에서 태아가 성장하는 모습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뱃속의 태아를 키우는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축하와 환대와 명품 가방 선물에 둘러싸이는 이가 있고, 낙태를 고민하며 한숨을 내쉬는 이도 있다. 입덧과 부종과 어지러움에 시달리면서도 막달까지 직장에 나가야 하는 이도 있으며 만삭의 몸으로 내내 식구를 보살펴야 하는 이도 있다. 당장 생존이 시급해 동동거리는 이와 비싼 산후조리원(2024년 기준, 특실 2주 3,800만 원 선)을 미리 예약하고 젠더리빌 파티를 계획하며 만삭 사진 촬영에 입을 드레스를 진지하게 고를 수 있는 이의 간극이란.
나는 다행히 당분간 직장을 쉬어도 생계에는 지장이 없는 쪽이다. 노산의 유일한 장점이랄까. 넉넉하지는 않지만, 임신과 출산과 육아 비용 때문에 끼니를 굶지 않을 만큼의 돈은 모아 놓았다. 열여섯 해 하고도 반년을 빈틈없이 일했으니까요. 지금은 스물셋에 일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생긴 빈틈이다.
말하자면, 지금은 브레이크타임. 엄마로 살기 위해 잠시 셔터를 내린 시간. 연장 근무하다 지친 여름이 근무 시간을 눈에 띄게 줄일 때쯤 임신임을 알았으니까, 철컹대며 셔터를 내린 건 지난가을부터였다. 학생으로, 교사로 내내 학교에 다니다 서른 해 만에 학교에 가지 않은 가을이었다. 입덧과 멱살잡이하는 동안 누가 쏟아놓은 커피처럼 날마다 소파에 눌어붙어서 간혹 학교를 그리워했다. 아이들과 가기로 했던 수학여행, 못 가겠네. 졸업선물 뭐 해줄지도 고르고 있었는데. 이 시간이면 다들 등교했겠네. 급식을 먹겠네. 마칠 시간이네. 그러나 출근하는 쪽을 고른다고 몸이 갑자기 나아질 게 아니므로 조용히 소파 쿠션인 척하기를 택했다.
이걸 먹어도 안 토하고 괜찮을까, 를 몇 달 심각하게 고민하다 보니 나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토악질보다는 좀 더 그럴싸해 보이는 신념을 위해 일한다고 여기던 날도 있었는데.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단어로 토론하며 두꺼운 책에 밑줄을 치고 학교와 교육청과 교육연구원에서 별의별 행사도 했었는데. 오래전의 일이다.
요즘 나의 관심은 밤낮으로 내 아랫배에서 꿈틀거리는 작고 작은 존재다. 거대한 가치를 말하기에는 준비된 체력과 호기심이 바닥났다. 내가 좋은 교사가 되어 담임 역할을 잘하려고 열심히 일할수록 우리 반 아이들이 해내야 할 일도 점점 늘어난다는 비례식이 체력을 바닥내면서 겨우 얻어낸 교훈이다.
그러니 육아 휴직이 끝나고 다시 셔터를 올린다 해도 혹여나 교육계의 횃불이 되고자 애쓰지 말아야지. 그렇잖아도 바쁜 아이들을 힘들게 하지 말아야지. 감히 우아하고 완벽한 슈퍼 워킹맘이 되려고 하지도 말아야지. 어떻게 세상 모두가 세상 모든 일에 정면 돌파를 할 수 있나. 나는 되도록 측면을 보면서 걷다가 나도 모르는 새 통과해 버리고 싶다. 뱃속의 태아를 키우는 모습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부모의 자세도 각자 다를 것이다. 우리 반 아이에게도, 내 아이에게도 너무 미안하지는 않으려 분투하는 정도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몫이다.
그조차 쉽지 않을 걸 알고 있다. 나는 초보 워킹맘이 될 것이고, 아무튼 초보란 잘하고 싶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게 마련이며, 그런 채로 삐걱거려도 잘 안 되는 게 초보니까. ‘당연히 최선을 다하겠지만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하지는 않*’는 만큼만 해봐야지. 힘내, 그날의 나.
* 에세이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에서 김혼비 작가님이 말씀하신 태도. 이 장의 제목도 거기에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