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에 그 어떤 힘든 일도 종괴보단 버틸 수 있는 것들이었죠
한 달 만의 정기검진일이었다. 2차 기형아 검사일이기도 했다. 주먹 쥐고 피를 뽑은 후, 초음파를 보러 갔다. 아랫배에 젤을 바르고 초음파 기기로 태아를 살폈다. 키도 재고, 심장 소리도 체크하고, 손가락 개수도 헤아렸다. 꼼꼼하게 초음파 모니터를 살피던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태아 복부에 낭종이 있는 것 같아요. 장이 있어야 할 위치에 흰색 덩어리가 보인단다. 아기 자세가 바뀌면 초음파상으로 다르게 보일지 모르니, 다음 주에 한 번 더 와서 확인하자 하셨다.
장 대신 낭종이라니요. 내가 엽산을 꼼꼼히 챙겨 먹지 않아서 세포 분열이 잘못 일어난 건가. 소장과 대장이 없으면 영양 흡수도 안 되고 노폐물 처리도 안 될 텐데, 태어날 때부터 이 아이는 얼마나 큰 짐을 지게 되는 건가. 내장이 없는 사람의 일생을 생각하자, 아득했다. 그것보다 태어날 수는 있을까. 검진 결과를 묻는 부모님들께 낭종 얘기를 했더니, 두 분 모두 이틀 꼬박 몸살을 앓으셨다.
다음 검진일, 다시 초음파 검진 침대에 누웠다. 종교도 없으면서 손목에는 염주까지 찼다. 아랫배에 기기의 감촉을 느끼며 속으로 열심히 빌었다. 부디, 부디 우리 아기 아무 일 없이 태어나게 해주세요. 그러나 아기 배 안에 커다랗게 자리한 흰색 덩어리들은 여전했고, 의사 선생님께서 이번에는 거기에 '종괴'라는 이름을 붙이셨다. 대학병원에 가지고 갈 의뢰서를 써주신다고 했다.
병원 밖으로 나오니, 가을볕이 서럽게 눈부셨다. 오가는 사람들과 차들로 거리가 시끄럽다. 세상에는 건강한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데, 무탈한 아기를 낳는다는 흔한 일이 내게는 왜 이리 어려울까.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어 태아 정밀 초음파 검사 예약을 잡았다.
나와 신랑이 그날 대학병원 산부인과의 첫 손님이었다. 먹먹한 마음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흑백만 가득한 초음파 모니터 화면은 아무리 봐도 전복 껍데기 같기만 했다. 한참을 살피던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장입니다.”
다른 장기와 색깔이 조금 다르지만, ‘장’이라고 하셨다. 영양 공급이 제대로 안 되면 장이 흰색을 띨 수 있다고 한다. 소장과 대장이 제자리에 있구나. 낭종이나 종괴가 아니라.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배 안에 창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게 기특한 때가 있었다는 걸, 태어날 아기는 모르겠지.
“다운증후군이면 안 낳나? 어차피 낳을 거 아닌가.”
2차 기형아 검사를 하던 날, 남편에게 물었다.
“그러게.”
“그런데 기형아 검사는 자꾸 왜 하는 거지?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거야?”
“그런가.”
아기가 어떤 모습이어도, 우리는 낳을 것이다. 제멋대로 아기에게 삶을 줄 것이다. 아기의 의사와 관계없이. 그 점은 미안하다. 그러나 우리 욕심이었으니 온 힘을 다해 아이가 제 앞에 주어진 삶을 버틸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엄마가 하시던 말씀을 이제야 이해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평생 갚을 빚을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