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변기를 만나러 갑니다
길을 걷다 난데없이 좀 전에 먹은 방울토마토를 토해버렸다. 편의점에서 급히 사 온 물티슈로 토사물 얼룩진 아스팔트를 닦고 또 닦았다. 입덧이 시작되었다.
사춘기 같은 두 달을 보냈다. 감정과 욕지기가 파도처럼 부지런히 밀려왔다. 드라마에서야 앞치마 차려입은 며느리가 입을 손으로 예쁘게 가린 채 헛구역질 한 번 하고 말지만, 현실에서는 구역질과 동시에 변기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 BGM은 울리지 않는다.
하, 끝나지 않는 입덧. 절대 깨지 않는 술을 잔뜩 마시고 두 달째 조각배 위에서 멀미인지 숙취인지에 당하고 있는 기분이다. 파도가 심한 날엔 배 위에서 망연자실했다. 육지를 딛는 감각이 기억나지 않는다.
입덧이 시작된 후로는 늘 먹던 음식과도 서먹하다. 이걸 먹어도 될까. 토하지 않을까. 익숙하던 음식들의 식감과 향이 문득 격하게 새롭다. 음식 말고도 세상은 냄새로 가득 차 있다. 거슬리는 냄새를 만나면, 아니, 별 이유 없이도 갑자기 토악질을 한다.
사람마다 입덧의 이유도 다양해서 인터넷 임산부 커뮤니티에서는 입덧을 다채롭게 분류한다. 먹덧(끊임없이 뭔가 먹지 않으면 울렁거림), 체덧(체한 것 같이 더부룩하고 울렁거림), 양치덧(양치하면 울렁거림), 냄새덧(특정 냄새를 맡으면 울렁거림), 물덧(물을 마시면 울렁거림), 침덧(침을 삼키면 울렁거림) 등. 침덧을 제외한 모든 증상을 조금씩 다 맛봤다. 죽을 맛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기를 붙잡고 ‘분수토(네, 그겁니다)’를 했다. 몸 안에서 홍수가 난 것 같았다. 육개장을 먹고 두 번 뿜은 날은 목도 매운 데다 피까지 같이 토해서 식겁을 했다. 토하고 나서 입을 물로 헹구려고 하면 물비린내에 또 울렁거렸고, 양치까지 하고 있으면 다시 토할 것 같았다.
‘입덧’을 영어로는 ‘morning sickness’라고 한다. ‘모닝’이요? 저는 해가 지면 훨씬 심한데요? 나 같은 ‘황혼덧’도 있지만, 대체로 위장이 비면 증상이 심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아침에 더 힘든 분이 많단다. 그래서 입덧약도 편안한 아침을 위해 자기 전에 먹는 것이 기본이다. 섭취 후 여섯 시간이 지나야 약효를 기대할 수 있는 비효율의 극치인 약이거든요. 자궁에서 아기를 키우기 위한 융모 호르몬(hCG)이 구토 중추를 자극하는 것이 입덧의 원인이라던데, 입덧약이 출동해서 그 둘을 중재하는 데 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모양이다. 비타민 B6와 진정(=수면 유도)제가 주성분이며, 아기에게도 안전하다. 다만 먹고 나면 졸리는 것이 부작용이라고 한다. 자기 전 두 알을 먹는 게 기본, 하루에 네 알까지 먹을 수 있다.
비효율적이어도 효과가 좋으니 다들 먹겠지, 라며 희망에 부풀었으나 내 몸에는 약이 듣지 않았다. 이럴 수가. 섭취 여섯 시간 후에도 몸속 둑이 무너진 듯 콸콸 토하는 건 여전했고, 잠이라도 들고 싶은데 심지어 졸리지도 않았다. 우릉우릉 화를 내며 입덧약을 끊어 버렸다.
대신 시고 단 것들을 먹었다. 과일 그림 그려진 사탕과 진짜 과일. 오렌지나 귤은 향만 맡아도 메슥거림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바나나나 키위도 화장실 뛰어가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차 안에서는 과즙 뿜으며 귤을 깔 수 없어서 얌전히 과일 맛 사탕을 입에 넣었다.
입덧이라니, 아무래도 진화의 방향이 잘못된 게 아닐까. 임신을 했으면 더 잘 먹어야 하는데, 왜 못 먹게 하는 건가. 검색해 보니 아기에게 위험할 수 있는 음식을 섭취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고, ‘아기’ 자체가 엄마의 몸에는 외부 물질(아빠 유전자가 절반이니까)이라 생기는 면역 반응이라는 설도 있단다.
에잇, 이유야 무슨 상관이랴. 이 파도에서 이제 그만 내리고 싶다. 우웁. 제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