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11주 차. 너의 태명은

아직 만난 적 없는 너를, 부르고 있어

by 시애

# 1. 옥 시리즈



뱃속 아기에게 가장 먼저 붙여주는 애칭, 태명. 제일 처음 떠올랐던 태명은 ‘K[케이]’였다. 국제적이고 좋지 않은가. 마침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과 축구 대표팀이 우승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K’는 자랑스러운 대한의 이니셜이지. 그래, 좋았어. K다!



남편이 K 이야기를 듣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안 내켜? 그렇다면, 황상제는? 타비아누스는? 체? 수수는 어때? 남편은 ‘옥’씨다. 옥황상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신인데, 좋지 않아? 옥타비아누스도 대단한 황제였는데? 옥체도 엄청 귀한 거야. 잘 보존해야 하는 거. 옥수수는 인류에게 진짜 중요한 작물이야.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렸겠어? 그런데 다시 생각해도 K가 제일 멋진 것 같아. ‘옥K’ 하면 다 괜찮을 것 같잖아. 우리 아기는 완전 O.K.야.



가만 듣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손뼉을 짝 치더니 말했다.

“박수 어때? 박수!”

나는 ‘박’씨다. 계속하다가는 유머 배틀로 변질될 것 같아 일단 옥신각신을 그만두기로 했다. 아, 아쉽네. K가 딱 좋은데.






# 2. 쌍자음 시리즈



남편이 즐겨보던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 2>에 아기 태명을 짓는 장면이 나왔다. 태명을 된소리로 지으면 아기가 건강하다며 ‘뽀물이’라는 태명을 붙이는 장면이다.



인터넷에 ‘태명’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니 태아에게 말을 걸 때 거센소리와 된소리를 태아가 더 잘 들을 수 있다는 글이 나온다. 태아도 5개월쯤부터는 청각이 발달하여 외부의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신랑이 된소리 태명을 잔뜩 짓기 시작했다.

“짱짱이 어때? 빵빵이? 뽕뽕이? 뿡뿡이? 쑝쑝이?”

무슨 의미냐 물으니 그냥 귀여워서,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드라마 보고 된소리로 지은 거지?”

“응!”

“드라마에서 엄마랑 아기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기억나니.”

“……”

“……”

임신한 아내가 억울하게 죽어서 악귀가 되어버린 남편의 복수극이었다.






# 3. 그래, 바로 그거야.



근황을 묻는 이들에게 슬금슬금 임신 소식을 알렸더니 저마다 아기의 태명을 물어왔다. 시간차 질문 공세에 대응하는 와중에 된소리 태명을 지어주는 데 실패한 남편마저도 거듭 물었다.

“우리 아기 태명은 뭐야?”

“응. 바로 그거야.”



“뭐라고?”

“맞아. ‘뭐’라고 짓자. 다른 사람들이 태명이 ‘뭐’냐고 물으면 바로 그거라고 답하면 돼.”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흠. 이건 아닌가.






# 4.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



'뭐'보다는 나은 태명을 생각해 내야 한다. 몸속 포도당을 그러모아 좌뇌, 우뇌로 골고루 보내보자. 아이가 어떤 삶을 살길 바라니.



수많은 아름다운 말 중에서 '기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삶의 곳곳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기쁨을 하나씩 만들어 모으다 보면 제법 단단하게 행복한 하루들도 있겠지. 덧붙여 너는 우리의 기쁨이기도 하단다.



"아기 태명, '기쁨' 어때?"

뒤이어 신랑에게 들릴락 말락한 볼륨으로 중얼거렸다. '기쁨'이니까, '喜(기쁠 희)'지. 옥희. 오키. 좋지 않아? 나는 아직 O.K.를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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