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7주 차. 때가 이르매

아기는 아직, 카드값은 이미

by 시애

임신 27주. 쉽게 말해 7개월 산모. 5개월일 때의 ‘뽈록’과 6개월의 ‘볼록’을 넘어 이제 배가 제법 불룩 나왔다. 주위 사람들의 질문이 “얼마나 됐어?”에서 “준비는 다 했나?”로 슬그머니 바뀌었다. ‘언젠가는 아이 맞을 준비를 시작해야지’의 ‘언젠가’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출산과 육아를 위한 다종다양한 물품에 대해 알아보고 고르고 리스트를 정리하고 쇼핑하고 정리하고 사용법을 익히기까지의 육아 준비 대장정을 시작할 때가 오고야 말았다.






마침 출산 전에 갈 수 있을 만한 마지막 베이비페어 날짜가 임박했다. 가봐야지. 가서 직접 보고, 만져도 보면 이해가 빠르겠지. 광활한 육아용품의 세계에 한 발 내디딜 결심을 했다.



우선, 품고 있던 물품부터 정리하자. 보건소에서 임산부 등록을 하고 받거나 태아보험 상담 선물로 받거나 지인들에게 선물 받은 것들을 바닥에 펼쳐놓고 뭐에 쓰는 물건인지 연구했다.




다음으로 온라인 속성 과외를 시작했다. 아기를 키우는 와중에 콘텐츠를 기획하고 글을 쓰고 촬영과 편집과 업로드까지 해낸 대단하신 분들의 조언을 경청했다. 정말 부지런하시구나.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몇 달 후 맞을 예방접종 예약과 몇 년 후에 갈 어린이집 예약을 미리 해야 하는 나라에서 부모로 살다 보면 절로 부지런해지는 건가.



각종 육아용품의 명칭과 용도와 ‘국민템’ 브랜드를 대강 구분할 수 있게 되었을 때쯤 인터넷으로 ‘베이비페어에서 살 것’을 검색했다. 온라인쇼핑몰 배송비가 아까울 정도로 저렴한 제품들을 제외하면 결국 온라인이 싸다고 한다. 오프라인 박람회에서는 실물 정보를 얻는 정도면 되나 보다.






드디어, 베이비페어 디데이. 신랑과 함께 이틀에 걸쳐 행사장에 가기로 했다. 원래 쇼핑을 즐기지 않는 데다 북적이는 장소에서 한꺼번에 오래 걷기에는 내 체력이 걱정되어서. 정확히는 피곤해지면 배가 뭉칠까 걱정되어서.



우려와는 달리 진짜 문제는 신랑의 체력이었다. 나야 온라인으로 공부했던 것들을 직접 보는 기회였지만 신랑에게는 미지의 아이템으로 가득 찬 던전 탐험이었던 것이다.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느라 뇌에만 피가 몰리는지 퀭한 얼굴로 비척비척 나를 따라다녔다.



첫날은 브로슈어를 든 채 행사장을 한 바퀴 돌며 어떤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있는지 훑어보았다. 괜찮아 보이는 물건들의 설명을 듣고 사은품을 받기도 했다. 집에 와서 아까 봤던 물건의 후기와 온라인 최저가를 검색했다. 둘째 날은 어제 검색해 본 물건 중에서 오프라인으로 사도 괜찮겠다고 분류한 것들을 구매했다. 손수건들과 베개와 젖병만으로도 십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어휴. 아직 온라인에서도 사야 할 게 백만 스물한 가지 남았는데.






앞으로 더 사야 할 수많은 아이템을 꼽아보다 내가 어릴 적 자랐던 모습을 떠올렸다. 엄마는 나랑 내 동생 키울 때 일회용 기저귀 한 번 써본 적 없다고 했었지. 아기 욕조와 욕조 전용 세정제 없이 빨간 ‘다라이’에서 씻어도, 분유 포트와 분유 제조기와 배앓이 방지 젖병 없이 엄마 젖만으로도 문제없이 커서 어른이 되었다. 국민템이 다 뭐람. 전부 내 욕심이지. 이럴 땐 정말, 아는 것이 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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