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영 Sep 03. 2024

사람을 살리는 교육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지켜야 할 세계>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변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지키고 싶은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소설 <지켜야 할 세계>는 가볍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었다. 


<지켜야 할 세계>는 현직 교사가 7년에 걸쳐 쓴, 그래서 간접적이지만 오늘의 학교 현실과 교사들의 생각을 조금은 더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혼불문학상 수상작답게 탄탄한 서사와 감동적이고 울림이 있는 대목들로 인해 읽는 재미가 있었다. 더불어 다루고 있는 주제가 주는 무게 때문인지,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있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출처: 다산콘텐츠그룹>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주인공 정윤옥의 장례식을 그리며 그녀의 삶을 회상하듯 되돌린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 초년 교사 시절, 그리고 정년을 앞둔 현재 시점에 이르는 삶을 굵직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보여준다.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뇌병변 중증 장애를 가진 동생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의식과 연민이 윤옥의 삶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야학을 통해 깨닫게 된 참교육의 신념이 삶의 다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윤옥의 가정사는 파란만장했다. 하지만 교육 철학과 신념에 따른 교육을 실천하는 것은 말로만이 아니라 온갖 탄압과 방해, 동료의 배신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그 길을 걷는 것이어야 한다고 윤옥은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윤옥은 정년을 앞둔 지금까지 어려운 형편이거나 장애로 인해 힘들게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을 돌보는데 앞장서고 교육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데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학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다양한 모습과 에피소드를 통해 윤옥이 추구하는 교육적 신념과 학교의 현실이 충돌하기도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느끼는 윤옥의 고립감은 학생들과의 관계를 통해 해소되고 해결됨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학교교육의 모순과 문제점도 결국 학생들과의 관계 속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날이 서 있는 삶과 다르게 윤옥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허망하다. 환상에 빠져있다가 갑자기 현실로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작가는 무엇을 의도한 걸까. 한 사람의 열정적 삶만으로는 우리가 지키고 싶은 세계가 유지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우리도 현실로 돌아와 각자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무언의 항변을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학교를 지킬 수는 있지 않을까요?”


소설의 저자인 문경민 작가는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학교를 지킬 수는 있지 않을까요?”


작가는 <지켜야 할 세계>에 현직 초등학교 교사인 자신이 겪은 경험과 주변 교사들의 삶 속에서 벌어졌던, 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담았다. 무수히 많은 선생님들이 겪었을 구체적인 삶의 조각들을 때론 격정적으로 때론 담담하게 정리했다. 그래서 주인공 윤옥의 삶과 신념, 실천들은 작가의 삶과 학교교육에 대한 신념, 실천, 희망이다. 소설 속 윤옥이 지키고 싶었던 학교와 교사의 모습은 현실에서 작가가 지켜내고 싶은 학교와 교사의 모습이 아닐까.



“부디 사람을 살리는 소설이 되길 바란다”


<지켜야 할 세계>는 작가가 오랜 기간 준비해 세상에 내놓은 소설이지만 우연하게도 작년 서이초 교사 순직 사건 즈음에 출간되었다. 비록 가해자 처벌과 진상규명은 충분하게 이뤄지지 못했지만 서이초 선생님이 자신의 죽음과 그 이유를 잊지 말라고, 학교와 교사를 지켜달라고 소설을 통해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우연하게도 작가는 서이초 순직 교사 추모 집회에서 추도사를 하게 된다.


작가는 말한다. “부디 사람을 살리는 소설이 되길 바란다”라고.


한 주체의 권리를 빼앗아야만 다른 주체권리가 강화될 수 있다는 억지 주장을 넘어 교육주체 모두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으로, 그래서 작가의 소망대로 학생, 학부모도 살리고 교사도 살리는 교육이 되길 바란다.


<지켜야 할 세계>를 읽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또 그런 사람들이 연대하여 목소리를 낸다면 그것만으로도 누군가는 용기를 얻고 삶을 이어나갈 수도 있으리라.


작가가 서이초 순직 교사 추모집회에서 한 추도사 일부를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옮겨본다. 그리고 추도사를 통해 작가가 소설에서 지키고 싶어 했던 세계가, 그리고 앞으로 지키고 싶은 세계를 함께 상상해 본다.


괴롭혔던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힘들게 만들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 부옇게 흐린 모습으로 상상할 따름입니다. 희미한 상상 속의 그 모습은 내게 악의에 찬 말을 쏟아냈던 누군가와 겹쳐 듭니다. 그때의 기억과 함께 내가 겪은 우울감과 열패감이 떠오릅니다. 그렇게 우리는 당신의 고통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당신이 살지 못한 어제를 살았습니다. 오늘을 살고, 내일 또한 살아갈 것입니다. 당신이 살고 싶었을 서른과 마흔의 삶을, 그 이후의 삶 또한 살아갈 것입니다.

당신이 사랑했을 것들을 상상합니다. 당신이 좋아했던 음악을 상상하고 당신의 웃음을 상상하고, 당신이 감탄했을 노을 진 하늘과 하얀 백사장 너머 푸른 바다를 상상합니다. 우리가 어제오늘 느낀 시원한 가을바람을 생각합니다. 벅찬 마음으로 삶을 누렸던 순간이 당신에게도 있었을 겁니다. 당신의 짧은 삶이 잠시 담겼던 교실을 생각합니다. 교직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요즘처럼 많이 드는 때도 없었으나, 교실의 아이들은 저의 그런 마음과 상관없이 웃으며 다가오고, 그런 아이들의 순박한 웃음이 서럽고 미안해서 저는 죄책감을 느끼고 맙니다.

사랑하는 것으로 내 삶을 회복하고,

상냥하고 노련한 모습으로 당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며,

곁에 있는 동료와 함께 이 시대의 물결을 헤쳐가겠습니다.

너무 늦어서 미안합니다. 우리를 용서하지 마십시오.


[출처]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집회 중 서이초 선생님 추도사 (문경민, 2023.9.2)

작가의 이전글 교사가 바라보는 학부모, 학부모가 바라보는 학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