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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eto principle Mar 10. 2024

군대에서 상급자랑 한판 붙었다.

상사의 모든 지시에 헌신해야 성장하는걸까?

나는 사무직으로 들어왔는데 제설 일손이 모자라 나도 동원시킨다. 인사팀인데 다른 팀 잡무에도 동원시킨다. “계약에 없잖아요 안 해요.” 라고 불쾌해하고 퇴사해야 할까?


일은 정량적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 나에게 도움 되는 일과 아닌 일이 다발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한창 바쁠 때 시급을 따져보면 3만 원이었다가도 한가할 때 계산하면 5만 원이 된다.


그럼 딱 안 바쁜 시즌만 일하고 퇴사를 하면 스마트한 사람일까?


나도 한때는 그걸 쫓았다. 눈에 보이는 일만 하고 힘든 일은 교묘하게 피해 가기 위해 머리를 썼다.


군대에서 운전병들은 운행을 나가지 않으면 본부에 남아 고된 일을 해야 했다. 5톤 트럭 타이어 교체, 체인의 녹을 경유로 닦는 일, 트럭 하부 세차, 세차장 하수구 진흙 퍼나르기 등 더럽고 힘쓰는 일들이 주어졌다. 피하기 위해서는 운행을 나가 본부에서 멀어져야 동원되지 않는다.


지휘관 운전병은 서류를 떼오고 자기 차만 세차했다. 모래먼지 마시며 혈압 올릴 일이 거의 없었다.


군대에선 그것을 꿀보직이라 불렀다.


운이 좋게도 마침 선발 테스트가 있었고 나는 그 보직을 쟁취하게 된다.


군에 온 지 5개월 차 일병이었다. 아직 군대를 다 알기도 전에 중책이 주어졌다.


지휘관과의 첫 대면, 첫 대화는 이랬다. 차 안이었다.


“자네 어느대학나왔나?”


“OO대 다닙니다”


“거기 돈만 주면 가는데 아니냐?”


“...”


나는 상하관계에 익숙하지 않았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왔다. 그 사상에서 청소부와 판사는 맡은 역할이 다를 뿐 같은 소중한 사람이어야 했다. 감독과 선수의 관계가 아닌 공격수와 골키퍼의 관계처럼.


보직을 맡은 후로 점점 상하관계가 무엇인지 배워갔다.


병사와 간담회를 한다. 병사의 고충을 듣기 위해? 사고가 있을 시에 나는 간담회도 하고 책임을 다했다는 면피을 위한 자리였다. 순진하게 우리 소대는 여러 개선책을 정리해 대대장님에게 보고했고 사람 좋은 얼굴로 그 개선책을 들어주었다. 앞에선 모두 사람 좋은 행동을 했다. 그 후 어떤 지시가 있었던 것인지 최선임자인 나와 동기 1명은 행정보급관실에 끌려가 온갖 불평과 고함을 들었다. 간담회는 부대가 잘 운영된다는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휴가를 보내려면 대체 운전병이 필요한데 편성 보다 부족한 상황이었다. 수송대 문제가 없냐는 지휘관의 말에 나는 우리를 위해 상부에서 인력을 가져와 줄 것이라는 기대로 답했다. 문제를 발견하고 상부에 보고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운영을 못한 무능으로 여겨지는 것인지 그 의견은 거꾸로 소대로 내려왔다. 차량반장의 보직 운영 실패로 여겨졌고, 그 문제를 보고한 나는 참 난감한 상황에 처했었다.


교육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사고를 막기 위해서보단 나는 조치를 취했다고 “면피”를 위해 모든 일이 기획되고 진행되었다. 교육을 통해 일에 대한 책임은 점점 하급자에게로 내려 간다. 적당한 꼬리자르기 선까지. 나는 교육까지 마쳤다는 논리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제야 하급자는 나의 업적을 위한 부품이 되어 빛나는 장면을 연출해주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훈장을 받을때 큰 관중앞에서 받으면 위엄이 서는 것 처럼 상하관계를 위한 엑스트라관중 연기를 해야 했다.


보통의 MZ세대는 자아를 건드리면 참지 않는다. 직위에서 존경심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먼저 태어난 사람일 뿐, 엄청난 권위를 인정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교수건 선배건 그냥 한 사람일 뿐이다. 의례 높여줄 뿐 가슴에선 상하관계를 느끼지 않는다. 기술자도 마찬가지. 그들을 선배로 예우하기 보단 기술을 먼저 배운 사람일 뿐이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졌기 때문에 세대가 젊어질수록 학력이 더 좋아지고 배우면 내가 더 잘 할 것이란 생각을 하기 쉽다. 생업을 위한 기술을 배울때 처럼 필요한 상황 외에는 가치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나는 이런 상하관계를 거부한 탓에 담당 지휘관과 마찰이 있었다.


그리고 한 판 붙었다.


새벽 5:30분 순찰을 시작으로 새벽 1시까지 야간 시찰의 스케쥴중 내게 딱 저녁먹고 개인정비 2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에 운동을 같이 하자며 나를 불렀고 새벽엔 컵라면을 같이 먹자며 불렀다. 24시간 보좌역으로 존재했던 나는 3개월쯤 지나자 정신적으로 내몰려 갔다. 결국 터지고 말았다. 연병장을 혼자 앞질러 뛰어버리고는 막사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곤 일주일간 둘이 대화를 안 했다.


신경전은 계속됐다.


가정 형편을 묻고는 엄마는 주부인데 왜 일을 안 하냐는 것이었다. 주부는 직업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왜 능력 되시는데 주부를 못 시키시냐, 고생이 많으시다라며 선을 넘을 듯 말 듯한 말들로 맞섰다. 칭찬을 가장한 비아냥이 주류였다. 이런류의 전투가 계속 오가고 능청스러운 조소만 늘었다.


그 사이에서 승산을 찾으려 했다. 일병이랑 주임원사가 싸웠다는 소문은 상급자에게도 병사 하나 케어 못 한 망신이라는 점이 보였고 계속 싸웠다.


“야, 너네 차 뭐타냐? 제네시스? 너 돌봐줬으니 너희 아버지가 나한테 차 한대 뽑아 줘야되는거 아니냐?”


주말에 일을 맡기고 간 후


“야 주말에 잘 쉬었냐?”


당한걸로 끝나지 않는다. 복수의 복수를 위해 슬슬 심기를 건들여 왔고 난 상병이 되서야 ‘에이, 1년도 안 남았으니 한 번 져주지’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답했다.


“아이고 주임원사님이니까 vip로 에쿠스로 모시겠습니다~”


그 날 이후 마찰이 없어졌다. 내 마인드 변화는 관계를 우호적으로 바꿨다. 1월 전역 후에 4월에 주임원사님의 30년 근속 훈장을 사단에서 받는 식이 있었다. 내가 꽃다발을 들고 찾아가자 부대 간부들은 전역 후 찾아오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당시 GOP대대 간부들 사이에서 둘의 관계가 화젯거리가 되었다.


부당함에 맞서는 건 당연하다. 그걸 견디라고 하고 싶지 않다. 착취할수록 자기 이익이 늘어나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부당한 것도 참고 견뎌야 성장한다, 사회생활 잘한다라는 프레임으로 포장해 착취를 정당화하고 유도하겠지만 참지 않길 바란다. 과중한 업무분장을 참기만 하다 순직한 공무원, 회사원이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정면으로 맞서지도 않길 바란다. 난 상하관계를 거부한 탓에 큰 고생을 했다. 사이가 틀어진 후 운전병이 운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명목으로 법안에서 모든 차량 운행에 동원되었다. 자신이 퇴근을 해서 내가 일이 없어진다면 행정보급관에게 차량을 하루 빌려주는 방식으로 일을 만들었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 소나기를 뚫고 가는 것은 승리를 위한 불굴의 의지가 아니다. 잠시 비를 피하는 것이 패배가 아니란 말이다.


소나기를  잠시 피해가는 사람처럼 한 수 물러나 주는 것도 부당함을 빗겨내는 방법이다.


인생의 소나기가 왔다면 비바람을 뚫기보다 마음에 여유를 갖고 유연하게 반응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무엇보다 당신이 비에 젖지 않기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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