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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별 Jul 01. 2021

인생을 움직이는 건 나였다.

"어떻게 싱가포르에 오시게 됐어요?"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대화는 항상 이렇게 시작됐다.


과테말라를 떠난 소녀는 그녀의 나이 서른에 싱가포르에서 미국 변호사로서 일을 시작했다.

.

.

.


어떻게 된 거냐고?


과테말라를 떠난 소녀는 여러 사정으로 미국 대학의 진학이 좌절되었고, 뒤늦게 한국에서 수능 시험을 보고, 편입을 거쳐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는 열다섯 살의 기도대로 미국 로스쿨에 진학하여 마침내 미국 변호사가 되었다.


그녀는 국제 분쟁을 전문으로 하고 싶었고, 그중 국제 중재를 선택했으며, 당시 아시아에서 국제 중재가 가장 발달한 싱가포르에서 일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국의 영향을 받은 싱가포르에는 영국 로펌들이 꽤 있었는데, 그중 한 로펌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소녀의 인생은 끊임없이 움직여

미국도 한국도 과테말라도 아닌

싱가포르에 도달했다.



후덥지근한 싱가포르 강바람이 묵직하게 목덜미를 스친다. 마리나 베이를 마주하고 강가에 서서 사방이 화려하게 반짝이는 싱가포르의 야경을 보면, 가로등조차 없었던 깜깜한 과테말라 그 동네가 생각이 난다.


인생이 나를 이리저리 굴리고 휘두른다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며 원망했지만. 그것은 아직 나의 자아정체성을 몰랐던 순수한 시절의 오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모든 시간의 주어는 '나'였다.

내가 인생을 움직이고 있었다.


마흔을 지나고 있다.

이제 나는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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