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새벽시장에 엄마의 삶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대부분 일에 지쳐 잠든 모습이었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잠들어 있었다. 엄마는 나를 낳기 전부터, 정확히 이야기하면 결혼하기 전부터 동대문 새벽시장에서 #의류도매업 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왜 그 일을 시작했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내가 결혼하기 1년 전쯤 일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두었다. 그러니까 약 30년 정도 밤낮이 바뀐 생활을 했다. 엄마는 20대 중반부터 50대 중반까지 동대문 새벽시장에서 의류도매업, 옷장사를 했다.
1980년대에는 동대문 새벽시장에서 의류 도매를 업을 삼을 사람들 중 돈을 번 사람들이 꽤 많았다. 지금처럼 인터넷 쇼핑몰이 없어 현장에서 모든 거래사 이루어졌고, 동대문이 의류 사업의 중심지였다. 엄마 친구들 중 현금 부자가 꽤 많았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셈에 밝은 장사꾼은 아니었다. 당신의 성격하고 맞는 일은 아니었던 듯 싶다.
그리고 바로 잠에 들지 않고 오후 1~2시까지 집안일을 대충 했고, (엄마는 요리를 잘 안했다.) 옷 공장과 관련된 뒤처리를 했다. 오후 2~3시쯤 잠이 들었고, 다시 깜깜한 밤이 되면 아빠와 함께 가게에 다시 나갔다. 아빠는 엄마가 하지 않는 일들을 했다. 예를 들어, 아빠는 초-중학생 시절의 도시락을 쌌고, 학부모 회의에 엄마들 가운데 유일한 아빠로서 참석했다. 엄마는 행동대장이었고, 아빠는 육아를 담당하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일이 있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 대략 6살 정도였고 그날은 동생과 나만 그 집에 있었다. 엄마 아빠가 모두 일을 나간 깊은 밤이었고, 동생이 조금 아팠던 것 같다. 나는 밤이 무서워서 집에 있는 모든 등을 다 켜기 시작했다. 화장실 등, 베란다, 다용도실 등 그리고 가스레인지 위에 후드등까지 모두 켰다. 밤새 집안을 환하게 밝히고 살았던 그날 밤이 지나 새벽이 왔다. 베란다 창살에 얼굴을 들이 밀고 엄마를 기다렸다. 8시쯤, 엄마가 보이자 나는 엄마를 울면서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는 집에 오자마자 내 엉덩이를 때리며 혼을 냈다. 아주 많이. 네가 아픈 게 아닌데 그렇게 울면 안 된다고.
밤낮이 바뀐 고되고 힘든 일. 나는 엄마의 그 생활이 언제부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엄마니까. 우리가 학교를 가야 하고 학원을 가야 하고. 책도 사야 하니까. 엄마가 다른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엄마들은 모두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엄마를 따라 저녁 9시에 가게를 따라 간 적이 있었다. 엄마가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 하는 모습. 혼자 가게를 지키며 다방 커피를 연거푸 두잔 마시는 모습. 엄마가 장사꾼처럼 호객을 하는 모습. 옷을 사러 온 손님하고 능숙하게 흥정을 하는 모습. 그리고 잘못 만든 옷 때문에 공장 사람들과 전화로 말싸움을 하며 욕을 하는 모습을 봤다. 장사꾼인 엄마는 참 낯설었다. 그날 잠을 자지 않고 엄마 옆을 지켜보려고 버텼지만, 새벽 두 시쯤. 좁은 두 평짜리 옷가게에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나는 엄마 아빠의 희생 덕분에 남들이 다니는 학원도 모두 다녔고, 사립 학교도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신장병이라는 지병을 얻어 병원에 입원을 했다.
아이를 낳고 그 사진을 다시 보니 엄마의 인생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울하고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유치원 생인 나의 마음도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 엄마를 기다리는 유치원생. 그리고 그런 유치원생의 마음을 알지만 갈 수 없었던 엄마. 20여 년 전, 엄마와 나에게 위로를 건네본다.
엄마는 50대에 들어가면서 "1년만 더 장사하고 그만둬야지..1년만 더해야지" 하더니 꼬박 5년을 더 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본인의 의지 반, 타의 반으로 떠밀리듯이 장사를 그만두었다. 2년쯤 지났을 때 엄마한테 물었다.
“ 어떻게 장사를 30년 동안 할 수 있었어? “
엄마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 응? 조금도 재미있지 않았어? “
엄마는 나의 이 질문에 희미한 웃음을 지으면서 “전~혀 재미있지 않았어”
".... 돈을 버는 재미도 없었어?"
"그건 잠깐이었지 일이 재미있지는 않았어."
나는 자아를 찾는답시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해 헤맨 시간들이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로 무미건조하고 단호한 대답이었다. 엄마는 먹고 살기 위해 일을 시작했고 계속 한 것 뿐,, 내 질문이 무안해졌다.
하지만 30년 동안 똑같은 일을 재미도 없이, 죽지 못해서, 살기 위해서 했다니.... 나는 다짐했다.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