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피 Feb 03. 2021

05. 우울은 죽음을 대신하는 증상이다

/ 죽음의 우울

죽고 싶게 만드는 하늘이다. 파랑이 회색에 옅어지면 저리도 잔인한 색으로 변하던가? 내 기분 탓일까...타인의 시간 안에 나를 밀어 넣은 듯 하루하루가 의도치 않은 삶이 된다. 어느 것 하나 내 것이 없는 세상, 홀로 된 적막감이 감싸 온다. 순간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은 잊혀지고 주변은 두꺼운 콘크리트에 갇힌 독방이 되어버리고 만다. 우울이 고개 들면 똑같은 일상에도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만다.

소란한 세상 안으로 내 고요는 묻히고 곧 그 위로 시체와 같은 낙엽만 덮이듯 시절의 화려했음은 그렇게 잔인한 순간을 맞아 여분의 희망마저 버려지고 사라진다. 남루한 일상은  흐름에 따라 헐벗은 한숨 안으로 기생하고 그 누구의 벗도 되지 못한 나는 불안의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초저녁부터 부들부들 비가 내렸다. 날은 더 어두워졌고 흐림에 가린 시간의 틈으로 흐물거리며 우울이 새어 나온다. 지옥 아래 잠자던 죽음의 신이 멱살을 끌어당기는 것 같다. 낯선 시간 안으로 밀려 내 것은 소멸되고 타인의 말들에 영혼은 짓눌리고 만다.

우울은 늘 안으로만 접어들어 간다. 내 기억이 밖으로 새어나갈까 두려워한다. 오랜 기간 외로움과 상생하였고 목적 없는 기다림에 끊임없이 밤을 지새워왔다. 살아간다는 것이 먹고 자고 숨 쉬는 것 외에 아무 의미 없는 굴레와 같은 지 오래되었다. 끝을 내기 위한 선택은 죽음밖에 없다. 철저히 고립된 일상에서 난 무력하며 하찮은 존재에 그치고 만다. 영혼은 피와 살을 감싼 가죽 안에 죽은 듯 감금되어버렸다.


타인의 시선 아래 벌겨 벗겨진 채 던져진 것 같다. 밤새 아카시 꽃이 시들어 그 향기마저 고갈되고 나의 봄마저 사라진 지금 무엇이 자존감을 버텨내게 할 것인가? 그림자 안에 숨고 싶다. 탁한 어둠 안에 감추고 싶다. 보이지 않도록 가려지고 싶다. 죽은 듯 가만히 살아가고 싶다. 나는 죽을 용기마저 잃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정녕 살고 싶은 것인가.

숨고 감추고 피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일지 모른다. 어쨌든 살아보려는 의도치 않은 본능일지도 모른다.


우울은 죽음을 대신하는 증상이다. 살아있는 육체에 죽어가는 영혼처럼 심장에 공생하는 미련이라는 감정처럼 말이다.

바람이 어둠을 막아선 시간이 되어서야 해는 그 게으른 백색 낯짝을 드러냈다. 소주 냄새 푹푹 나는 쪽방 귀퉁이에 앉아 거친 손등을 비비는 비굴함으로 노란 불빛을 마주한다. 천정을 본다. 사각의 틀을 벗어날 수 없는 시선들, 90도의 각도로 꺾인 네 귀퉁이 꼭짓점을 응시하다 다시 사각 안으로 갇히고 만다. 삶을 둘러친 주변의 것도 이와 같다. 정리해도 다시 어지러워지고 버려도 또 쌓이고 마는 것이다.


누군가에나 있을 법한 청춘의 공터에 둘러앉아 내 허무는 그렇게 불안과 동거한다. 비는 어깨를 주무른다. 해는 어깨 위 빗물을 말소시킨다. 척박한 공기는 폐부를 찌르고 역겨운 새벽빛에 나는 질식되어간다.

숨이 저려온다. 인내에 잠들던 슬픔과 분노는 다시 일상에 틀어 앉아 버렸다. 나만 없으면 완전할 것 같은 내 인생은 의미 없이 사라지고 있다. 내 감정에 나는 지쳐만 간다. 가난이 냄새를 풍기듯 죽음 또한 서서히 오감을 자극해 온다.


하지만 여전히 쿵쾅거리는 궁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어찌 살 것인가? 나는 다시 행복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만으로도 일상의 재생은 가능할 것인가...


모든 것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쓰레기 같은 내 삶에도 몇몇의 화려함은 있었으니 말이다. 바람이 부는 것은 외롭기 때문이다. 불다 부대끼며 무리 속에 나를 넣는 것과 같이 고통에 비열한 나를 버리낯선 것과의 공존도 다소 쉬워진다.

하나 둘 줄을 맞춰  기억을 불러 모아야겠다. 머지않아 햇빛을 맞이하기 위하여 이 긴 밤 동안 기억의 조각 줄 세워야 한다. 아무도 닿지 않았을 새벽 공기에 키스하며 열정도 불러야 한다. 가시처럼 날카로운 세상 안에 내 몸 던져야 할 때이다. 더 늦기 전에. 후회는 지난밤에 버려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04 힘들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