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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빵의 파수꾼

달콤한 거짓말은 괜찮아

by 박애주





뚜껑을 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일이 조금 더 생겼다. 설익은 반죽을 먹는 일. 그대로 오븐에 다시 넣었다가 온도 조절에 실패해 홀랑 태워먹는 일. 집안에 가득한 탄내를 내보내며 들어온 차가운 공기에 폭닥폭닥한 카디건을 껴입는 일. 그리고 엄청난 양의 설거지를 만나는 일. 아무래도 내가 만든 컵케이크는 케이크가 아니라 컵에 가까웠나 보다. 하- 진짜 뚜껑이 열린다.



최애는 빵이나 쿠키와 같은 디저트를 '달다구리'라고 불렀다. 매번 만날 때마다 달다구리를 선물 받았다. 어느 날의 마음은 유명 베이커리의 시그니처 케이크로, 또 어느 날의 마음은 동네 단골 빵집에서 사 온 레몬 맛 마들렌에, 또 다른 어느 날엔 직접 구운 쿠키 속에 담겨왔다. 이미 아는 것만 사 먹어도 충분히 많을 텐데, 최애는 왜 빵을 직접 만드는 걸까.











베이킹 동호회에 가입했다. 회사 근처에 있는 요리 학원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베이킹 클래스를 열었다. 수업은 한 달에 한 번, 매번 끝나는 시간은 달랐지만 보통 두세 시간 정도 진행했다. 실습 주제는 수강생들의 수준과 월별 이벤트를 고려하여 선생님과 함께 골랐다.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에는 달콤한 디저트를, 연말에는 케이크를 만들었다.



제과와 제빵의 차이를 처음 알았다. 제과는 쿠키, 마카롱, 타르트와 같은 디저트류를 만드는 것이고, 제빵은 효모를 이용해 반죽을 발효하여 식빵, 호밀빵, 바게트 등의 빵을 만드는 것이다. 제과제빵은 사용하는 밀가루의 종류로도 구분할 수 있다. 제과는 반죽의 뭉침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글루텐이 적은 박력분을 쓰고, 재료와 반죽의 결합이 중요한 제빵은 강력분을 쓴다.







발효 과정이 따로 없는 제과 수업은 다른 날보다 집에 일찍 갈 수 있었지만, 제빵을 하는 날엔 반죽 휴지 시간이 필요해 수업이 길어졌다. 1차 발효를 끝낸 반죽에 재료를 더 넣고 2차 발효를 해야 할 때도 있었다. 냉장고와 오븐팬 앞을 서성이는 게 지루해지면, 조원들을 꼬셔서 간식을 먹으러 갔다. 편의점에서 파는 달다구리에서는 그냥 내가 알던 맛이 났다.



제과 실습 때 만드는 달다구리한 디저트를 더 좋아했다. 그렇지만 제과는 수강생의 센스에 따라 결과의 차이가 크고, 무엇보다 머랭을 만드는 것이 힘들다. 머랭은 온도에 민감해서 빠른 시간 안에 강하게 치는 것이 중요했다. 선생님이 올 때마다 초보자 티를 팍팍 냈는데, 선생님은 손으로 머랭 치는 것이 베이킹의 기본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만약 머랭을 다 치고도 팔에 힘이 남는다면, 나는 행주를 백기 삼아 머리 위로 흔들 테다.




쌤 왜요? 제가 아직도 화난 것처럼 보이세요?








1년 정도 배웠더니 슬슬 내가 만든 빵은 멀리서 봐도 제법 태가 났다. 요령이 생겼고, 정성을 다하기도 했으며, 정말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는데 수업에서 만든 빵은 늘 1인분이어서 모두에게 나눠주기에 애매했다. 하지만, 회식이 잡힐 때마다 매번 달콤한 핑계를 댔다면, 언젠가는 주변-눈치 없는 우리 부장님을 포함-에서 덕후에게 덕질 말고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는 걸 알아채기 시작한다.







베이킹이 그 주의 KPI가 됐다. 혼자서는 베이킹을 해 본 적 없고, 당연히 우리 집엔 근사한 오븐도 없는 데다 주말의 직장인은 내가 처음으로 만든 머랭과 같이 힘이 없었다. 퇴근길에 만난 저 머랭 쿠키 모양 구름에선 왠지 짠내가 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풀어야 할지 잘 모르는 문제를 만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는 걸 나는 이제 아주 잘 알고 있다.








정확한 계산과 계량이 필요하고, 정해진 프로세스를 준수해야 하는 것을 보면, 베이킹과 코딩은 비슷한 것이 참 많다. 오래전에 회사 친구들과 포켓몬센터에서 산 피카츄 쿠키 키트가 생각났다. 새로운 취미에 재미를 막 붙이면서 부푼 마음에 구매한 것이었다. 일본어로 된 레시피를 따라 열심히 구웠다.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도 코딩과 똑같았지만, 쿠키를 구울 때는 제대로 된 쿠키를 만나는 것 말고 다른 소원은 다 사라진다.







포장지를 사서 그 어느 날 받은 선물처럼 예쁘게 담았다. 내가 보기에도 꽤나 그럴듯했다. 히트를 쳤다. 머릿수를 계산해서 만들었는데, 선배님네 아이가 둘이면 그 집에는 피카츄가 두 마리 필요하다는 건 수업 시간에 서 배운 적이 없었다. 가정 평화의 파수꾼이 되기 위해 한 번 더 쿠키를 굽기로 했다. 주말을 다시 통으로 태웠지만, 이번에도 역시 정답이었다.



짧은 피카츄 소동이 끝난 후, 집에 조카가 놀러 왔다. 한창 포켓몬스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예쁜 것만 골라 미리 몇 개 빼놨었다. 단 거 많이 먹으면 이따 밥 못 먹는다는 잔소리 때문에 또 몇 개가 그대로 남았다. 남은 쿠키는 내 입엔 너무 달아서 먹지 못할 거 같다. 언제라도 품에 안겨 오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네 입에, 한 개도 안 달다며 엄마 몰래 하나라도 더 넣어줄걸.



아, 이런 마음이었구나.




사랑하기 좋은 날 - 장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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