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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gonna be another day.

오늘 할 일: 예쁜 오답 만들기

by 박애주





그땐 3년만 더 참으면 다 잘될 것 같았다. 그래서 참았다. 딱히 잘 참는 성격이었던 건 아니고, 할 줄 아는 것이 공부랑 팬레터 쓰는 것밖에 없었다. 너무 평소 실력을 발휘한 성적표를 받았다. 하나도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쁘다기보단 하나의 작은 행운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 슬펐던 것 같다. 그래도 결국 글을 써서 대학에 입학했다. 달콤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년을 참아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을까. 어릴 적 그려본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은 좋은 대학교를 나와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 딱 거기까지였다. 엄마 아빠 할머니도 선생님도 새로 만난 친구들도 교수님도 충분히 시간을 들여 고민하라고 했다. 역시 이런 문제는 하루아침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할 수 있는 걸 했다.



최애가 다녀온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거기에서 최애가 광고한 소주 마시기. 최애에게 선물 받은 책을 읽고 그 안에서 멋진 문장 만나기. 절판된 최애의 앨범을 찾기 위해 중고 서점 들락날락거리기. 그러다가 진짜 발견하기.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 저녁 여섯 시 이후론 금식. 분명 재밌었지만 아직 정답은 아니었다.



졸업을 앞두고도 나는 여전히 겁쟁이였고, 최애는 여전히 근사했다. 직장인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다시 학생이 되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자기소개서에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보는 질문이 나오면 항상 같은 이름을 적었다.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두 개나 되는 전공과 빼곡히 채운 자격증을 제치고 면접관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가장 빛나는 것에 대해 물어봤다. 이 문제는 언제라도 막힘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엄마 아빠 할머니한테 용돈을 드리고 나니 제법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감히 세상을 더 알게 되었다고 맨날 하던 거만 하는 것이 드디어 심심하게 느껴졌다. 나에게도 이런 권태가 찾아오는 것을 대비하고 있었지만, 내 답안이 정답일지 매력적인 오답일지 확인할 자신이 없었다. 또다시 뻔뻔하게 최애에게 적당한 답을 빌렸다.



귀여운 캐릭터가 들어간 최애의 사인을 보고 그림을 배우고, 디저트를 즐겨 먹는 최애의 입맛을 따라 베이킹 동호회도 가입하고, 최애가 운동을 시작했다는 인터뷰를 보고 나도 운동을 등록했다. 좋아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는데 시작하고 나니 좋았다. 역시 우리가 이렇게 통하는 것이 많다^^



그리고 이번엔 노랫말을 직접 작사하는 최애를 따라 최애가 아닌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되었다. 맨날 글을 쓰고 싶을 정도로 재밌는 건 아니어도, 맨날 글만 써야 할 정도로 재미가 없지는 않았다. 주말이라 조금 쉬고 싶지만, 나는 오늘도 좀 이따 정답을 찾으러 나갈 거다. 여전히 오답의 연속에 실수투성이지만, 덕질이란 이 사랑이, 그리고 그대가 나를 아름답게 한다.




Sweet Dream - 장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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