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 스테파노 Oct 28. 2024

[늦은 아침 생각] 만추(晩秋)

웅이가 여니에게

새는 뒤돌아 보지 않는다며
끝도 없을 것 같이 먼 하늘을 날아가는

저 언덕 너머 서고 나면
그 날아 넘은 고개 어디엔가
내 봄날은 힘을 잃어 멈춰 선 듯하고
이 땅에 거센 비가 내린 후
다시 자라난 여름이라는 희망도
어느새 어제가 되고

여름을 벗어던져
붉고 노란 익숙한 무르익어 가는 날이 오면
내 희망은 다시 자라날 봄을 꿈꾸며
겨울을 맞서겠지

그렇게 오늘을 살아
그렇게 살아내고 보면 다시 봄을 만나겠지
그래서 오늘을 또 살아

- 2023.10.28 만추 -
만추


가을이 온 듯싶더니 갈 준비를 하는 듯합니다. 계절이란 맺고 끝낸다는 의미가 있었지만, 요즘의 계절은 느끼는 순간 과거지사가 되고 맙니다. 단풍과 은행들도 놀라 물들기 전에 잎을 떨굴지도 모른다 하고, 정신없는 목련이 갑자기 피는 일도 제법이라고 하더군요. 이렇듯 가을은 점점 아쉬운 시간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음력 9월, 가을의 마지막 달을 보통 만추(晩秋)라고 합니다. 계추, 모추 등의 말도 있지만 1960년대 유명한 영화가 2011년 리메이크되면서 신세대들에게 낯설지 않은 말이 되었습니다. 만추의 만晩자는 보통 '늦은'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대기만성'에 쓰이는 그 만자입니다. 그래서 만추는 '늦가을'이라 읽힙니다.


그러나, 만晩자의 다른 뜻으로는 '저물다', '쇠약해지다'같은 뜻도 있습니다. 다른 계절이 보통, 맹-중-계의 세 단계 계절을 이루는 말이 있지만 만晩자는 가을에 잘 어울려 유독 가을에 많이 쓰는 말이 되었습니다. 저물다는 말은 기력이 쇠약해진다는 말도 있지만, 바쁨이 지나 한가로워진다는 중의도 있습니다. 가득 채운 가을날 끝에 쇠약해져 시들해진 모습이 아니라 힘차게 살아온 봄, 여름, 가을을 정리하는 여유의 날들이 만추의 날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저는 만추의 시간을 살아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간이 지난 여름날의 정리 시간이 되던지, 아니면 다시 올 봄날의 마중 시간이 될는지 아직 알 길 없지만, 이 저무는 가을을 잘 살아 내고 싶습니다.


- 곰탱이 남편의 어여쁜 아내와 나누는 아침 생각 -



이전 12화 [늦은 아침 생각] 신해철의 일곱 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