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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Oct 27. 2024

[늦은 아침 생각] 신해철의 일곱 노래

10주기에 기억하는

지난날 적어 두었던 그에 대한 이야기를 10주기에 꺼내어 나누어 봅니다.

https://brunch.co.kr/@parkchulwoo/862


난 그의 머릿결 사이에 숨어든 뱀 문신이 좋았다. 짧은 키에 엉성한 가창력, 그리고 재능 가득한 천재가 아닌 노력으로 만든 둔재의 음악은 내게는 음악이 아니었다. 청춘의 동반자가 <공일오비-015B>였다면, 그는 중년까지 걸어온 거리석 같은 존재였다. 혈기 왕성했을 때 광기에 달하는 저항의 분노를 내뿜었고, 나인가 들면서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자신의 심지를 고추 세웠다. 그의 "Here I stand for you"라는 샤우팅은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주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마왕' 신해철에 대해서다.


(중략)


신해철은 지금 내 나이보다 어린 마흔여섯에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내게 어른으로 다가온다. 내게 이야기를 건네며 위로하고 다그치기도 한다. 흐린 창문 사이로 하얗게 별이 뜨던 그 교실에 내 소년 시절의 파랗던 꿈이 떠오른다. 그러나 세상이 변해가듯 같이 닮아가는 내 모습에 때론 실망하며 때로는 변명도 해 본다. 산다는 게 그런 것이라며 합리화한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 않는다.


"우린 그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대답을 찾기 위해 홀로 걸어왔던 것일까.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을까. 지나간 세월에 후회 없었다고 말이다. 그 대답을 위해 지금 살아 내야 하는 오늘이다. 그래서 신해철은 아직도 유효하다. 오늘은 그의 곡 중 고르고 골라 일곱 곡을 올린다.


1.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고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회 없노라고


신해철의 "유지" 같은 일성이다. 시간이 흘러 변해 버린 모습에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는 자신에게 "후회 없니?"라고 묻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그의 스물한두 살이었던 "무한궤도 1집"의 수록곡이다. 그 어리고 젊은 날에 먼 미래의 닳고 닳은 자신에게 보내는 타임캡슐이 되었는지, 그도 원형 그대로 리메이크로 그의 수많은 디스코 그래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https://youtu.be/tQFbMlYoN2o



2. 날아라 병아리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신해철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유소년 기를 보냈다. 유독 병아리 장사들이 많았던 단지에 병아리  마리 키운  없는 아이들이 드물었다.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리거나, 이내 벼슬이 나고 무서운 존재가 되기까지 애지 중지하곤 하였다. 그때의 기억을 담은 "생애  죽음 목격" 대한 노래다. 하지만 동기는 동심을 깬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나오는 노래가 이승환의 <프랜다스의 >였는데, 무슨 개로 노래를 만드냐는 생각 끝에 자신도 동물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가 있던 패스트푸드점이 "KFC"였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마왕을 보내는 "송별가". 하늘에서   노래하는 그의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겠지.


https://youtu.be/-X41UVzR1qI


3. 아버지와  Part 1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 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처음 이곡을 듣고 잠시 정신을 놓았었다. 015B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연애에 대한 무겁지 않은 세태 풍자라면, 이 곡은 묵직한 진혼곡 같았다. 아버지를 참 많이 미워했다 내 나이 열아홉에 쓰러져 고스란히 가장의 무게를 준 그가 미웠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듣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난 아버지를 오해하고 있었다. 모친에게 들은 푸념의 필터로 전해 들은 그의 사랑이 퇴색되었다. 건강 이유로 일찍 돌아 선 유학 귀국길에 아파트 입구에서 보이는 2층의 베란다에는 울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날 보고 첫 눈물을 보이신 아버지는 결국 영어의 몸이 된 나를 요양병원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세상에 복귀하고 찾아뵌 다음날 소천하셨다. 난 아직도 아버지를 이해한다고 감히 말하지 못한다. Part 1은 피아노 반주에 내레이션이 그리고 이어지는 Part 2에는 가슴을 후벼 파는 기타 솔로가 하늘의 아버지의 영혼을 달래 준다. 참고로 기타 솔로는 "정기송 버전"을 추천해 본다.(아래)


https://youtu.be/16bLe-aYsSE


4. Friends


오늘 하루는 그 모든 근심들을 버리자
추억의 향기로 취하기 전에
그 술잔을 들어라


"비트겐슈타인"은 넥스트 해체 휴지기에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체류 중 만든 그룹이다. 알바를 뛰던 기타리스트 데빈 리의 기타를 발견하고, 그를 트레이닝시킨 후 키보디스트 임형빈과 드러머 남궁연을 미국에 불러들여 앨범을 내었다. 이 당시의 음악적 정수가 <일상으로의 초대>에 고스란히 앉아 있다. 서로가 조응하는 형제 같은 곡이다. 임형빈과 함께 부른 이 노래는 "오버하지 않는 우정찬가"다. 영원한 친구란 없겠지만, 지금 가장 소중한 친구는 있기 마련이다. 떠나간 친구든 지금 절친이든 그들을 위해 잔을 들어라.


https://youtu.be/FRdyMXc3TMI


5. 일상으로의 초대


해가 저물면 둘이 나란히
지친 몸을 서로에 기대며
그날의 일과 주변일들을 얘기하다
조용히 잠들고 싶어


1998 발표된 <Crom's Techno Works> 수록곡  가장  알려진 노래다. 일렉트로니카 테크노 장르인데도 가사가 주는 영향력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는 일상을 떠나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소중한 일상으로 너를 초대해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사랑해" 한마디 없지만 진솔한 사랑 고백이 아닐  없다.  고백이 "" 수도 있지만, 아직 내면에 잠자고 있는 "자아" 대한 호출일 수도 있다. 일상주의자로서의 주제가.


https://youtu.be/QTkLBhd-hQ8


6. 민물장어의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신해철이 장례식장에서 틀어 달라고 주문한  곡이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 노제에서 부른 노래다. 가사는 신해철  정신의 덩어리가 그대로 녹아 있다. 자신을 작게 깎아 내어 작은 문으로 들어가야 성숙된 자아가 된다는 성찰이다. 민물장어가  강물이 모여드는  성난 파도 아래  번만이라도 다다르는 꿈을 버리지 않고 마지막 숨까지 다하겠다는 다짐의 노래다. <거위의 >, < 수염 고래>, <거꾸로... 연어들처럼> 상호 텍스트하는 노랫말이 가슴에 남는다. "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라는 마지막 구절의 질문에 신해철은 하늘에서 어떤 답을 하고 있을까.


https://youtu.be/zzPP-FDPuk4


7. Here I stand for you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어
그저 지쳐서 필요로 만나고
생활을 위해 살기는 싫어
하지만 익숙해진 이 고독과
똑같은 일상도 한 해
또 한 해 지날수록 더욱 힘들어
등불을 들고 여기 서 있을께
먼 곳에서라도 나를 찾아와
인파 속에 날 지나칠 때
단 한 번만 내 눈을 바라봐
난 너를 알아볼 수 있어 단 한순간에
Cause Here, I stand for you
난 나를 지켜가겠어 언젠간 만날 너를 위해
세상과 싸워 나가며 너의 자릴 마련하겠어
하지만 기다림에 늙고 지쳐 쓰러지지 않게
어서 나타나줘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
영원히...


신해철의 장례식에서는 <민물장어의 꿈>이 아니라 실제 이곡이 내내 울렸다. 유족의 뜻이었다. 앞선 곡이 신해철이 우리에게 남기는 마지막 당부라면, 이 노래는 우리가 다짐하는 노래이다. 당신의 음악과 정신을 잊지 않고 당신 옆에 서겠노라는. 웅장한 심포닉 메탈의 대곡은 자랑스러움까지 주었다. 언젠가 무대에 다시 서면 꼭 마지막 엔딩 레퍼토리에 넣고 싶은 노래.


https://youtu.be/5LQcFIRfX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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