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의 문제
‘정신만 차리면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산다’라는 흔한 말로 ‘정신력’을 강조하는 일은 다반사다. 특히 동양 문화권에서 정신력이라는 말을 흔한 주문처럼 사용한다. 정신력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풀이한다면 정신적 활동의 힘이다. 다시 풀어서 설명하자면, 정신적 활동에 의한 영향력을 총체적으로 이르는 말로 흔히 근성이나 인내심과 동의어 취급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정신력’이라는 말의 기저에는 근성, 인내심, 의지, 판단력, 사고력, 사기, 용기 등을 모두 아우르는 종합선물 세트 같은 뜻이 포괄되어 있다.
특히 스포츠 경기에서 경기력이나 결과가 기대만큼 미치지 못할 때 흔히 찾는 핑계가 ‘정신력’이기도 하다. 최근의 국제스포츠 국가대항전에서 참혹한 성적을 내게 되었더니 여기에 대한 여러 방안과 진단에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정신력’이었다. 실력과 기본이 되는 펀더멘털 인프라는 뒤로 하고 먼저 구성원들의 정신력이 모자란다는 이야기를 쉽게 한다. 이는 스포츠가 고대 전쟁과 전투에서 유래했다는 점에서 ‘필승 정신’과 유사하게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정신력은 ‘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화’의 영역
군사이론에서는 ‘정신전력’이라는 무형의 전투력이라고 표현한다. 정신전력은 전투 장면에서 장병들의 행동 양식을 결정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전쟁에서의 전투원, 즉 군인은 타인들을 죽이거나 최소한 상해를 입혀 인간 보편의 공포를 유발하는 의도로 전장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다. 그런 연유로 전투에 참여하는 인원에게 강한 훈련이 필요하고 그 요원들은 전투에 임해서 유능한 전사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받는다. 그러나 정작 전투에 임하는 군인들은 접전, 특히 근접전일수록 상대를 죽이는 행동을 주저하게 되어 있다. 이는 본능적인 인간의 행동 양식이고 많은 사례에서 증명된 바가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의 통념인 군인은 적을 만나면 용감하게 싸울 것이라는 생각은 어쩌면 신화에 가까울 수 있다. 전투원 대부분은 살아 숨 쉬는 적과 마주하면 동종 살해에 대한 거부감이 선천적으로 들고 말기 때문이다. 실제 군인들은 첫 전투에서 허공을 향해 총을 쏘곤 하는데, 이 현상을 ‘의도적 오조준’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더 나아가 거부하는 현상까지 벌어진다. 동종 살해에 대한 거부감을 밀쳐 내고 근접전투에서 적군을 죽이게 되면 그는 영원히 죄책감이라는 짐을 짊어져야 한다.
반대로 죽이지 않기로 하더라도 죽은 동료에 대한 죄책감과 책무, 국가 및 대의에 대한 수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죽여도 죽이지 않아도 발생하는 죄책감은 정신적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서 적을 죽여야 한다는 의무와 그 결과 치르게 되는 죄책감 간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는 정신적 사상자를 초래하는 중대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이런 것으로 인하여 ‘군사론’에서는 ‘정신전력’이 중요하게 강조되고 맞춤 훈련을 시행한다.
현대 사회심리 연구자들은 '군인이나 대결하는 스포츠 선수들이란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추상적 인식이나 요구, 집합적으로 공유된 국가관, 엄격한 훈련 결과로 형성된 사회화 과정, 소속 집단과 직업 대한 헌신 등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수행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소그룹 내에 존재하는 관계와 유대감, 동료를 존중하고, 지휘체계를 존경해야 하며, 자기가 소속된 집단의 임무 수행에 공헌해야 한다는 요구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이에 따라 동료나 상관이 행위자 자신에 대해 가지게 될 평판 등에 대한 염려 등이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볼 때 정신력은 기본적으로 사회과학에서 오랜 시간 논의해 온 집합적 의식, 집합적 행동, 집합적 열광과 같은 개념에 기반한다. 따라서 조직문화, 정신건강, 심리적 요인, 조직문화, 사회적 이미지 등등이 정신력에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정신력에 관한 이러한 구성주의적(constructivism) 관점은 정신력을 다차원적 내용으로 재구성하고 정신력 강화 활동 추진 시 그 효과성을 담보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 조직 내 인간 행동을 유발하는 요인은 사회과학 분야에서 초미의 관심사이며 이에 관한 연구는 수없이 진행해 왔다.
정체성 및 자기 범주화, 응집력, 효능감 및 자신감 등의 요인을 통해 개개인에게 내면화, 동일시, 유대감, 신뢰, 소속감, 몰입, 애착, 동기부여 등을 유발한다. 또한, 조직문화는 행동의 조직 내 및 사회적 정당성을 제공하고 조직 시민 행동을 유발한다. 이러한 요인들은 정신력을 구성하는 임무 수행 의지, 임무 수행 자신감, 직업 정신 등에 영향을 미쳐 전체적으로 정신력 영향을 미친다. 그뿐만 아니라 정신력은 기술력과 운용 능력으로부터도 영향을 받는다. 개개인은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능력을 지니고 있을 때 강한 의지와 자신감을 발휘한다. 운용력 역시 정신력 영향을 미치는데 조직의 능력에 대한 신뢰 등은 강한 신뢰를 형성시켜 주기 때문이다.
정신력이라는 것이 마치 ‘심리’의 요인으로만 국한되어 소비되는 이유는 잘못된 언어활동에 기인한다. 바로 콩글리시에 가까운 ‘멘탈’이라는 표현이다. 정신력을 영어로 표현하면 어떤 단어일까? 보통 willpower, mental strength(power), mental toughness 등으로 통번역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단어 중에 앞선 수식어인 ‘멘탈’만 떼어 놓아 정신력이라는 것이 심리적인 작용의 결과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초월하는 초능력을 요구하는 것으로 오용되곤 한다. 문제가 여기에서 발생한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라는 말은 엄격한 집안의 가훈처럼 무겁지만 흔한 말이다. 이 말은 중국 남송(南宋) 시대에 편찬된 <주자어류(朱子語類)>라는 책에 나온다. <주자어류> 제8권 71번째 조목을 보면, ‘陽氣發處(양기발처) 金石亦透(금석이척) 精神一到 何事不成’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양기가 발하는 곳이면 쇠와 돌도 또한 뚫어진다.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라는 뜻이다. 여러 설이 있는데 전한의 이광이냐, 송대 정호의 이야기냐의 다툼부터 여러 비슷한 표현들이 파생한다
전한(前漢)의 이광은 궁술과 기마술이 뛰어난 용장이었다. 그는 황제를 호위하여 사냥을 나갔다가 혼자서 큰 호랑이를 때려잡아 천하에 용명을 떨치기도 했을 정도였다. 어느 날, 그는 황혼 녘에 초원을 지나다가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를 발견하고 신념으로 활을 당겼다. 화살이 빗나가면 자신이 호랑이 밥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화살은 명중했다. 그러나 호랑이가 꿈쩍도 하지 않길래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호랑이가 아니라 큰 바위였다.
제자리로 돌아와 몇 번을 다시 활을 당겨 쏘았으나 화살은 다 튕겨 나가고 말았다. 이유는 그 대상이 호랑이라는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러하였다. 많은 사람은 후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은 결과’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정황을 따져 본다면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다. 단지 적을 물리치고 대상을 제거해야겠다는 생각, 그저 명중을 위한 목표 달성의 집중이 아니었다. 빗나가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긴박감, 내가 죽지 않더라도 주위의 민가나 사람들이 다칠 것이라는 사명감, 그리고 사회적 지위와 명궁이라는 평판에 걸맞은 책임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주자가 말하는 ‘양기’라는 것은 손가락으로 눌러도 터져버리는 약한 씨앗이 얼어붙어 단단한 땅을 뚫고 싹을 틔우는 힘이다. 바람이 세게 불면 꺼질 불씨도 바람을 잘 맞으면 큰 불이 되어 돌도 태우고 쇠도 녹이게 되는 것이 양기다. 이 양기는 그저 타고난 기운이 아니라 잠시라도 쉬지 않는 한결같은 정성에 의해 단련되는 힘이다. 그것을 일러 정신(精神)이라 한다. 정신이란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성과 속된 것이 전혀 없는 초인의 모습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신은 그저 ‘멘탈’로 표현될 수 없다. 굳이 영어로 표현한다면 정신은 ‘마인드’다.
정신이 한 곳에 모인다는 의미는 곧 잠재의식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잠재의식 심연에는 누구나 무한지혜, 무한능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정신수양(精神修養)이란 ‘불굴의 의지’, ‘꺾이지 않는 마음’ 같이 단순한 다짐이 아니다. 정신을 한 곳에 모이게 하면 요란하지 않게 되고, 어리석지 않게 되며, 그르지 않게 되는 경지에 이른다고 주자는 이야기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신력이라는 것은 ‘멘탈’이라는 말, 일제의 잔재인 ‘근성’과 다른 이야기다. 평소에 꾸준하고 한결같은 수양과 연습으로 단련된 마음, 즉 ‘마인드’를 이야기한다.
‘정신’이 문제가 아니라 ‘의식’이 문제다
정신력 만능설의 시초는 일본이다. 일본에서는 정신력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단 만능주의가 역사 속에서 만연하였고, 이를 精神論(정신론) 혹은 根性論(근성론)이라고 지칭한다. 일본 제국 시절에는 군부가 침략전쟁의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신력 만능주의를 주장했다. 이것이 식민지였던 한반도에 전파되어 ‘안 되면 되게 하라’라는 ‘근성’이 모든 업무의 주요 지표이자 기준이 되었다. 이 당시 민생을 해결할 수 없고 민중들의 반동이 들끓게 되자 관심을 돌리고 세뇌하기 위한 것이 ‘정신력 강조’였다.
이는 비단 일본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후 세대에게 드러나는 특징이었다. 미국도 당시 ‘정신력과 애국심’이라는 이차함수만 강조하여 젊은이들의 거센 저항이 일어났다. 일본군에서 훈련받은 자원들이 대거 광복군으로 편입이 되고, 해방 이후 한국 국군의 지휘부를 형성하면서 한국 군대는 ‘정신력이 만사’라는 요체가 기본이 되었다. 물자와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 그저 ‘근성’으로 버티라는 강요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정신력 드립’은 지금의 젊은 세대의 부모들인 X세대까지 전염되어 왔다.
주자가 말한 정신 수양은 근성의 강조가 아니다. 어리석고 그르지 않으며 요란하지 않도록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학습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는 학습과 교육, 그리고 자신의 사유와 고찰에서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서 정신력은 추운 날 얼음을 깨고 인내하는 근성이 아니라, 시간만이 채워줄 지혜와 깨달음을 얻어 가는 지난한 수도의 행위로 함양된다. 정신력은 다짐의 무장이나 심리치료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시 스포츠, 그중 야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일본 야구와 비교하면서 많은 사람이 구속, 인프라, 나무 배트 같은 협소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제법 다수의 사람이 ‘정신력’의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대부분 동의한다. 다만 그 정신력이 ‘근성’이라면 수긍할 수 없다. 문제는 ‘마인드’다. 한국 야구 선수들의 마인드가 일본은 물론 호주와 체코의 선수들 마인드보다 모자란 결과다. 여기서 마인드라는 것은 여러 방면 요소의 집합이다. 전문가의 세계에서는 ‘직업의식’이 된다. 정신이라기보다 의식의 문제다.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를 평정한 일본의 야구 스타 오타니 쇼헤이의 팔방형 미래 계획이 유행처럼 떠돌았다. 이미 수 년 전에 나돌던 이야기가 새로운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안의 실체들을 얼마나 따져 보았는지 되묻고 싶다. 어려서부터의 확고한 방향의 설정과 그 달성을 위한 고된 노력의 시간은 그의 잘생긴 얼굴과 엄청난 체격에 가려지고 말았다. 그리고 시스템과 근본의 대책이라는 것이 ‘대표팀 평가전 확대’라니 할 말이 없어진다. 필요한 것은 학생 선수들의 수업권과 선수 이전에 최소한의 자기 수양이 가능한 학습 능력을 배양하는 데에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의 야구계에서는 인수분해 한 번 해보지 못한 사람이 세이버메트릭스라는 비교 통계 지표를 거들먹거리고, 뉴턴의 법칙도 모르면서 회전과 각도의 역학을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이 NG다.
수양과 수행하라 하는 것은 정신 통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요란함이 있는 가 없는가, 어리석음이 있는 가없는가, 그름이 있는 가없는가 그리고 하는 일에 신념으로 추진하였는가 못했는가를 살피고 살피는 일이다. 그리고 매사에 감사 생활을 하는지 못하는지, 자력 생활을 하는지 못하였는지, 성심으로 배웠는가 못 배웠는가, 성심으로 가르쳤는가 못 가르쳤는가, 남에게 유익을 주었는가 못 주었는가를 대조하고 또 대조하며, 챙기고 또 챙기는 일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챙기지 아니해도 저절로 되는 순간이 있는데 이것이 ‘정신일도 하사불성’의 지경이다. 정신력이자 마인드의 정립이다.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미묘하다. 잡으면 있게 되고 놓으면 없어진다. 마음을 챙기지 않으면 그 마음을 잡을 수 없다. 이렇게 마음을 여러 가지로 챙기고 또 챙기면 우리는 평범을 벗어난 오롯하고 유일한 존재가 된다. 이는 큰일을 성취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은 위대하다. ‘멘탈’이 아니라 ‘마인드’가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