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傾聽과 질문質問
그 먼 옛날 중학교 입학 시절이 떠 오른다. 완전히 달라진 환경을 6년 만에 맞이하는 중학입학은 설렘과 두려움의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기 같았다. 남녀 합반이 아닌 이상 시커먼 녀석들과의 3년이 암담하기도 했지만, 입학 선물의 전형 만년필, 볼펜 세트도 받고, 두툼한 국어ㆍ영어 사전도 책상에 꽂아 넣으면 왠지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러다가 두려움이 다가 오지요. 바로 영국, 미국 사람 말, 'English'때문이었다.
오선지 비슷한 공책에 필기체도 그려 보다가, 선행 학습은커녕 예습, 복습도 버거운 '과외(사교육) 금지'의 시대에 미국 사람들 말은 참 어렵고 두려웠다. 서툰 흉내로 선생님의 선창에 후창 하듯 본문을 읽고 나면, 까만 카세트 라디오를 교탁에 올려, 당시 최신식의 시청각, 아니 청각 교보재 카세트테이프를 들려주었다.
본문을 미국 사람으로 추정되는 아저씨, 아줌마들이 읽어 주면, 대망의 하이라이트가 나온다. 바로 'Listen & Repeat'부분이 배경음악과 함께 온 교실에 퍼진다. 한두 달 지나고 나면, 녀석들은 이 대목을 알리는 "Listen & Repeat"부터 성대모사하듯 외치기 마련이었다. 이때까지 이 'Listen & Repeat'가 삶에 중요한 깨우침이 되리라고는 알 턱이 없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123/0002262072
CJ제일제당이 적극적으로 고객의 소리(VOC)를 담아 제품을 개선하고 신제품을 출시하는 등 ‘소비자 중심 경영’을 적극 실천하고 있다. 올 한 해만 크고 작은 제품 개선 사례가 11월 누계로 270여 건에 이르며, 해마다 10%가량 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고객행복센터를 통해 접수된 의견, 자체 모니터링으로 수집된 소비자 요구 등을 매일 점검하고 마케팅, 생산, 영업, 연구소 등 전 밸류체인에 이를 전달한다. 이후 의견을 수렴한 부서에서는 소비자 요구를 최대한 빠르게 제품에 반영하며, 이를 통해 개선된 제품은 고객 관점에서 검증하고 별도의 소비자 품평도 거친다.
-기사본문 중-
사람의 이기적인 본능은 주요 신체 일부인 눈과 귀에도 똑같이 스며들어 있다. 거의 본능적으로 보고 듣는 대상을 차별하고 구별하기 일쑤다. 눈도 귀도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 호기심과 쾌락을 자극하는 것만을 보고 듣는 경향이 생긴다. 관성이 생기고 결국 그런 것들만 지속적으로 접하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진리와 사실의 탐구를 위해서는 듣고 보는 자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되었다.
영어의 단어는 보고 듣는 행위의 단어를 구분되어 사용한다. 행동 양상과 정도를 각기 다른 단어로 표현합니다. 화자의 입장에서 "그냥 보는 것"은 ‘look'을 사용한다. 대상이 눈앞에 나타나서 아무런 생각ㆍ의도ㆍ판단 없이 보는 행위를 말한다. 이와 달리, 대상에 끌려 화자나 관찰자의 시선을 대상에 두는 경우에는 전치사를 사용한다. look at, look up, look into처럼 말이다. 전치사로 시선을 잠시 대상에 잡아 둔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대상을 상당 시간 볼 경우, ‘watch'라는 단어를 쓴다. watch TV, watch movie, night watch 등처럼 상당 시간 관찰하는 것을 나타 낸다. (시계를 watch라고 하는 이유)
듣는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로는 ‘hear'가 있다. 눈과 달리 귀는 닫거나 감을 수 없기에, 집중력으로 뇌 속에서 차단하기 전까지는 본의 아니게 소리는 존재와 동시에 귀에 들린다. 이렇게 부지불식 간에 들리는 것을 'hear'로 표현한다. 한 장소에서 상당 시간 무심코 듣는 경우 ‘overhear'란 단어를 사용한다. 반면,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듣는 행위는 'listen'입니다. 'listen'은 자신이 들으려는 대상 앞으로 귀를 가져가는 '의도의 행위'를 하기 때문에 전치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listen' to를 항상 사용한다. 우리말 표현으로 한자어 '경청(傾聽)'으로 쓴다.
보다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한 '어른의 행동'에는 두 가지의 위밍업이 있다. 하나는 경청(敬聽)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공경스런 청취 뒤의 공감과 정립의 질문(質問)이다. 경청은 상대방의 말들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다. '경(傾)'은 '기울이다'라는 뜻의 "상대에게 몸을 기울여 듣다"라는 의미를 주며, 이는 결국 상대를 존중ㆍ공경하는 마음의 '경(敬)', 즉 깊이 듣는 행위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경청(敬聽)하는 보통 사람은 사실 찾아보기 힘들다. 성인, 군자의 반열에 든 몇몇만 기억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필부, 평범인들이 할 수 있는 '경청(傾聽)'부터 노력해야 한다.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는 자세'부터가 그 시작이 될 것이니까.
인간의 많은 문제들은 관계의 문제다. 발생의 이유야 무수하지만, 해소가 안 되는 것은 경청의 부재에서 온다. 경청은, 오랜 수련을 거쳐야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경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독서를 하고, 감상을 하고, 그것에 대한 생각을 써내는 일이 그 일환일지도. 산책은 대단한 자연의 소리를 침묵으로 경청하는 것이고, 집 나오면 고생이더라도 여행을 하는 이유는 타인들의 삶의 모습을 관찰하고 경청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경청은 내가 남이라면, 남이 나와 같다면이라는 역지사지의 유일한 출구가 된다.
경청할 때 비로소 다음 단계가 존재한다. 기업 강연, 경쟁 프레젠테이션, 대학 강의 등 다양한 경험이 있다. 더 나은 전달을 위해 효과적인 프레젠테이션 교육을 위해 3박 4일의 출장 세미나를 간 적도 있다. 그곳에서 배워 아직도 유용하게 쓰는 방법은 'objection handling'이다. 우리말로 '반론 다루기'정도가 된다. 그때 1번 규칙이 'repeat'다. 내 주장의 반복이 아니라, '상대 반론을 반복'하라는 것이다. 대부분 반론은 질문, 질의가 됩니다(물론 가끔 반대의견을 주장으로 날리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 질의를 되뇌고, 다시 한번 반복해 '확인'하는 것이지요. 이 것은 '당신의 이야기를 내가 이렇게 들었다'라는 듣기의 확인이고, 상대 이야기의 속내에 대한 재차 확인이며, 일차적인 '공감의 표현'이 된다. 분위기도 좋아지고 반론자와 강연자의 유대관계를 형성해 준다.
경청은 귀 열고 자세를 구부려, 외부의 반응을 자신으로 온전히 향하게 하는 정렬의 노력이다. 그래서, 경청을 하는 사람이 제대로 질문할 수 있다. 질문은
일종의 쉼표다. 물음표가 달려 있지만, 관계의 다음 계단을 위한 준비이고 공감이다. 습관적이고 관성적인 자의식의 '잘난 체'를 버리기 위해서는 문턱과 같은 질문은 유효하다. 새롭고 참된 실체를 찾아가는 탐구의 과정에 늘 '자의식'이라는 강도가 길목을 지키기 마련이다. 이 길을 지켜 주는 것이 질문이 아닐까.
미소한 자신이 매달렸던 한 줌 신념이나 얕은 식견을 버리고, 낯설고 친절하지 않은 본질(本質)을 찾기 위해 통과하는 문(問)이 바로 ‘질문’이다. 질문은 그래서 유효하고, 경청으로 얻기도 하지만, 깨달음이라는 마음의 눈과 귀를 여는 열쇠가 된다. 정답이 없는 자신 안의 외침을 우리는 늘 업신여기는 것은 아닌지. 지혜는 정교한 지식의 그래프 자랑질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질문하고 타인에게 귀를 기울이는 그 자체가 지혜가 아닐까? 질문하기 주저했다면, 반론이 버거웠다면, "Listen & Repeat"! 언제부터? 오늘, 바로 지금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