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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유혹 40일, 벼가 뿌리를 내리는 때

사순묵상 05

by 박 스테파노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루카 복음 4.1-2-


사순 1주일 복음은 예수의 광야에서의 유혹을 전하며 사순 고난의 시작을 알린다. 빵과 권력으로 유혹하는 사탄의 농밀함에 치를 떨다가도 그 정도 유혹은 나도 견딜만하다는 생각도 치민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곧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치밀한 유혹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일이라는 기간 내내 치고 들어 왔다 생각한다면 이 유혹에 대한 단호한 뿌리침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가늠할 수 있다.


Temptation of Christ by Eric Armusik (2017)


4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 자주 등장하고 구약의 성경을 믿는 유대인에게는 매우 의미 깊은 숫자다. 구약에 등장하는 40의 의미는 공동체의 수난, 역경, 인내와 수련의 기간이고 모두를 위한 검역, 사찰과 통치의 시간으로 나타난다. 노아의 홍수가 40일 밤낮 동안 지속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고난한 시간이 40년이고, 모세는 40세에 공생을 시작하고, 40일을 기다려 하느님의 율법을 받았으며, 40일 동안 정탐하여 가나안에 입성하였다.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기간이 40년이며 요나의 경고의 기간도 40일이었으며 구약의 기간은 40세기, 즉 4천 년으로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유대인이 믿는 구약의 하느님, 신은 통치자이며 심판자이고 보다 엄격한 냉정한 모습이다. 이와 반하여 신약이라 부르는 예수의 시대의 40은 보다 개인적이고 내적인 의미이다. 예수의 40일 동안의 광야에서의 유혹, 부활 후 40일 만의 승천 등의 사건을 보면, 40이란 인내와 고통이 있지만 약속된 변화와 결실의 시간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예수 이후의 하느님, 신은 자비롭고 사랑이 넘치며 개인에게 다가서는 신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런 해석이 종교적 의미로 유대교와 기독교를 나누는 의미가 되기도 하지만, 예수라는 작은 마을의 목수의 공생과 기적, 그리고 수난과 죽음, 부활이라는 어마 어마한 인류의 최대 사건이 인간 인지와 성찰의 변곡을 주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저 신앙의 종교적 믿음에서 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일지라도 40이라는 의미는 우리의 삶에 유의미하게 다가설 수 있다. 가까운 예로 우리가 주식으로 삼는 쌀을 생산하기 위한 벼농사에서 40일은 다음과 같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중간 물떼기 때의 벼. 사진=진천 자치 신문

모낸 후 40일이면 대략 이삭 패기 30일 전쯤이 된다. 이때가 되면 벼는 영양생장에서 생식생장으로 넘어가게 되고 그 넘어가는 중간에 잠깐 교대기가 며칠 자리하고 있다.


이 시기는 벼 일생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으로 영양생장을 멈추고 열매를 맺는 생식생장으로 넘어가는 시기이므로 벼는 이때 최대의 체력을 갖추게 된다. 사람으로 치자면 사춘기를 끝내고 성인으로 접어들어 2세를 준비하는 시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시기 재배의 최대의 과제는 튼튼한 뿌리 발육에 있다. 즉 기존까지는 분얼(식물의 땅 속에 있는 마디에서 가지가 나오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이제는 뿌리발육을 목적으로 하여, 강한 뿌리로 영양분을 최대한 흡수하여 포기 전체에 영양이 골고루 미치게 하면서 좋은 이삭을 맺도록 해야 한다.


이 시기의 특징을 간단히 열거하자면, 분얼은 끝나고 어린이삭(幼穗)이 형성되며 뿌리는 밑으로 뻗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강한 뿌리로 최대의 체력을 갖춰 튼튼한 이삭을 맺을 준비를 하는 것인데, 그것은 얼마만큼 뿌리에 전분을 축적하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햇빛을 흡수하여 영양분을 뿌리에 축적하는데, 그것이 전분이다. 전분은 열매 줄기와 지경을 튼튼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아주 중요한 양분이다.


-<강대인의 유기농 벼농사(2005)>에서 발췌-



그리스도교인에게 사순절이란 40일간의 예수의 고뇌와 금욕의 기간을 기리며, 자신의 내외면을 들여다보고 새롭게 변모한 일상을 가꾸는 중요한 기간이다. 원죄와 본죄의 속죄를 떠나, 예수의 십자가 못 박혀 죽음에 대한 애도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준비의 기간이다.


흔히 그리스도 이전의 예수와 예수 이후의 그리스도라 이야기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묘사하는 인성 가득한 예수의 모습에서 인류의 각성과 구원이라는 속죄의 희생양이 되는 신성 충만한 그리스도로의 변모의 시기가 사순절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마틴 스콜세지가 1988년 영화로 만든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사진=유니버설 픽쳐스


옮겨 심겨진 손마디만 한 모가 자라 벼로 재탄생할 시간, 그 변모를 위해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최대의 체력을 준비하는 시간이 40일 이듯, 이전의 어리석고 오욕 가득한 나를 태워 버리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날 준비의 시간을 보낸다. 새롭고 보다 강직한 나를 위한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자신을 관찰하고 깨닫고 깊이 바라보는 ‘번데기’의 마음먹음이 필요한 시기다.


질투와 시기의 탑에서 벗어나 번데기의 고뇌를 거쳐 언젠가 세상에 피어 있는 꽃들에게 희망이 되는 한 마리 나비가 되는 ‘탈바꿈’의 시간이 이 40일 사순의 시간이다.


사순이 진정한 번데기의 시간이 되길 기도하는 사순 1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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