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묵상 04
‘구성원(構成員)’이라 함은 어느 조직이나 단체를 이루는 사람들을 말한다. 한자대로 풀이한다면 ‘얽어서 (조직을) 완성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학교의 구성원은 학생, 교수(교사), 교직원 등이 해당될 것이다. 학교의 구성원은 모두 학교의 사용자이지 주인이 된다. 이런 기준에서 기업은? 기업은 사용자, 노동자, 그리고 투자자 혹은 소비자 등이 해당될 것이다. 이를 흔히 Stakeholders, 이해관계자라고도 말한다. 땅에 경계목(stake)을 박아 자신 구역을 획득하는 자들의 집합이라는 말이다.
구성원을 영어로 풀어보면 의미가 새롭게 다 와닿는다. 쉬운 영어로 ‘Member’라고 말한다. member의 어원은 ‘기억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피아의 구분이 곧 생존으로 연결되는 야생의 원시시대부터 나의 편, 즉 우리 조직의 구성원인 member는 꼭 기억되어야 하는 사람이기에 어원이 시작되었다 유추한다. 그래서 ‘다시’ 되새겨 기억한다는 단어가 ‘re+member’라는 이야기다.
세상이 각박하다. 물질은 넘쳐나는데 정작 나는 항상 부족하게 느껴진다. 한정된 재화를 나누어 쓴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말처럼 받아들여진다. 내가 쓰고 누리기에도 부족한데 누구에게 나누어 준다 말일까.
그래서 초등학교 짝꿍과 치기 어린 영토전쟁처럼 선을 주욱 그어대고 만다. 그 선을 중심으로 나와 너, 우리와 타인을 구분하려 애쓴다. 그런데 말이다. 학교의 구성원을 다시 생각해 보자. 교직원도 교사도 아닌 계약 관계의 노동자들은 구성원인가? 보일러 안 들어와 추운 초소에 손불며 앉아 있는 경비직들이나 식대조차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근무환경에 놓인 학교 노동자 모두 member가 아닐까? 아마도 주욱 그어 버린 선위에 아슬아슬 모두 서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면과 면을 맞대어 선을 그어 놓게 한 것은 member들의 진심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의가 훼손되고 파괴된 세상의 가치 틀 안에서의 정의는 절대로 불의하게 여기어진. 그 불의를 인지도 못하고, 부끄럽다 생각도 못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도 혁명은 아직 필요하고 광장은 유효한지 모른다.
공공선이란 공동 동등한의 이익이 최대의 효율을 가져다준다는 도덕적이고 정성적인 행동률이 아니다. 수학적으로 증명되며 과학적으로 가설설립이 가능한 진실이다.
솔직히 말해 학생들보다 그곳을 일터로 사는 노동자들의 membership이 기한도 길고 무게도 더 한 것 아닐까?
부당함에 대해서는 부당함을 제공하는 자에게 맞설 용기가 필요한 때다. 멋대로 그어 놓은 선을 지우고 모두 평평하고 단단한 땅 위에 공존할 수 있는 길이 분명 있을 것이다. 서로를 서로의 구성원으로 기억해야 할 때다.
커다란 시국의 소용돌이 속에 일상의 잔물결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잔잔한 물결이 마치 태산 같은 파도라 여기며 아슬아슬 버티며 살아가는 수많은 일상들은 오늘도 고전 중이다. 매일이 콜드게임만 되지 않기를 바라는 필사의 생존에 놓여 있다. 계엄 내란과 탄핵이라는 어마어마한 소용돌이 속에 이 생존 또한 점점 가라앉고 있다. 모두가 예언자이고 모두가 투사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누군가는 이 일상의 버팀목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이틈이다 싶어 목소리 내어 모든 것을 자신들의 이득으로 돌려놓으려는 반공동체적 목소리를 경계해야 한다. 상황이 수습되더라도 더 큰 혼란은 이들의 욕심에서 시작할 테니까. 대기업 집단들이 그러하고, 의사들이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