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0주간 묵상
시거든 떫지나 말고, 얽거든 검지나 말지.
나는 문장 하나를 써내는 욕망에 대해 생각한다.
아직 익지 않은 마음, 미처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을 문장으로 내보일 때, 그것이 누군가의 입안에 떫은맛으로 남는다면 어쩌지—그 걱정이 종종 나를 멈춰 세운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때때로 너무 앞서고, 나의 언어는 그 마음을 따라가기엔 아직 설익은 열매 같다. 덜 익은 문장을 세상에 내놓고 싶은 욕심은, 어쩌면 누군가를 설득하기보다 스스로를 확인받고 싶은 조급함일지 모른다.
무엇을 쓰든, 결국 인간에 대해 쓰게 된다.
얽힌 관계들, 뒤엉킨 기억들, 그 복잡한 결을 단순한 말로 정리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 순간마다 나는 ‘검지나 말지’라는 말에 붙든다. 얽힌 것을 단정하려는 태도야말로 글쓰기의 폭력일 수 있다.
쓰고 싶은 욕망은 멈출 수 없지만, 떫지 않게, 검지 않게 쓰고 싶다. 글이 누군가에게 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이 한 줌의 위로나 작은 여백이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오늘 나는 한 문장을 더 지우며, 덜 쓰는 법을 배운다.
욕심이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말이 익는다.
부활의 축제가 끝났다.
가톨릭 전례는 다시 '연중(Tempus per annum)'으로 들어선다. 영어로는 Ordinary Time이다. 곧 ‘보통의 시간’이라 불린다. 그러나 이 말은 결코 평범하거나 하찮다는 뜻이 아니다. '보통'은 생각보다 유지하기 힘든 이상적 상태다.
라틴어 ordo ‘질서’에서 유래한 말로 영어 order에서 시작한 단어다. 숫자가 매겨진(ordinal) 시간들, 즉 순서 있게 살아가는 신앙의 시간을 의미한다. ‘ordinary’란 말은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 아닌 '시간의 흐름 안에서 질서정연하게 하느님을 따르는 삶의 리듬'을 가리킨다.
연중 시기의 전례색은 녹색이다. 성탄의 흰빛, 사순의 자색, 부활의 황금과 비교하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녹색은 생명과 성장을 상징한다. 화려한 축제의 장막이 걷힌 후,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바로 그 일상이 하느님의 현존이 머무는 자리임을 연중 시기는 조용히 일깨운다.
'Tempus per annum', 즉 ‘해를 따라 흐르는 시간’. 이 말 안에는 인간의 시간이 곧 하느님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스며 있다. 믿음은 대단한 사건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오히려 무심히 반복되는 매일의 노동, 기도, 관계 안에서 뿌리내린다. 연중 시기는 그런 ‘보통의 날들을 거룩하게 사는 훈련의 계절’이다.
그러므로 Ordinary Time은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 시간은 눈부시지 않지만, 성숙을 위한 은밀한 계절이며, 하느님의 마음은 바로 그 침묵과 반복 안에서 자라난다.
[근황]
최근 유전자 검사에서 암수치인 돌연변이 유전자 수치가 0.2%로 떨어졌습니다. 남들보다 많이 늦었지만 희망의 날들이 계속입니다. 0.032%까지의 하강과 유지가 목표입니다.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콜레스테롤이 높아지고 많던 근육자리 대신 지방이 차오릅니다. 피부 발진은 모기 물린 듯 여기저기고 근육통과 관절통이 다시 시작되었지만 다 괜찮습니다. 잘 견딜만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공모 투고를 준비 진행 중입니다. 책 반권 분량의 공모전을 준비해 투고 완료했고, 영화 전문잡지의 평론상 공모 원고를 퇴고 중입니다. 이 잡지의 성격이 소위 씨네필이라는 영화 덕후와 전문인들의 인사이트 자랑이 특징입니다. 구색을 맞추려 여러 이론서와 철학서를 읽고 오래간만에 아카데믹하게 글 쓰는 연습을 했습니다. 최근의 글들이 다소 무거웠던 이유입니다. 경력 나이 불문인 블라인드 심사라니 한 번 내보기나 하자는 심사입니다.
글쓰기가 갈급하게 되니 문장이 시고 떫어집니다. 글이 얽히고 때가 묻습니다. 이 또한 성숙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하기로 합니다.
봄과 여름 사이 또 살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