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노동의 새벽」 이후, 애도되지 않는 노동자들
현대사회는 허상이 실재를 지배하는 시대다. 이는 단순한 사변적 푸념이 아니다. 사회의 중심에서 회전하는 축, 곧 경제를 들여다보면 그 말의 실상을 곧 깨닫게 된다. 오늘의 경제는 금융이라는 거대한 상상의 장치가 실물 재화를 가두어 둔 형국이다. 실물의 생산이나 소멸이 없는 상태에서도 경제 지수는 하루아침에 수십조를 잃고 또 만들어 낸다. 손에 잡히지 않는 이 금융 경제의 변동 속에서, 진정한 재화와 부(富)의 원천이 과연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실물경제, 곧 실제 시장에서 재화의 가치는 인간의 노동이 만들어 낸 생산물의 가치에 근거한다. 금융공학이 지배하는 시대라 하더라도, 생산된 재화의 가치가 부의 근간이 된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한 국가의 부를 측정하는 지표로 흔히 GDP, 즉 총생산 가치를 사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노동으로 생산된 재화의 가치가 사회의 원동력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은 언제나 양가적 감정을 일으킨다. 인간의 존속을 위해 필수적이고 소중한 행위이지만, 동시에 고되고 버거운 숙제와도 같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만, 기꺼이 콧노래를 부르며 맞이하기는 어렵다. 특히 오늘날 기술의 발달과 자본시장의 지배 강화로 인해 노동의 가치는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이 억지 동행의 의미에는 신화적, 역사적 기원이 깊게 스며 있다. 우선 기독교 성경의 첫 편 「창세기」에 실린 에덴동산의 이야기에서 노동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풍족한 무위도식의 낙원에서 최초의 인류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이유는 어이없게도 ‘각성’이었다. 그들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신의 능력을 훔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처지와 상황을 자각하고 사유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인식이 인류의 ‘원죄’가 되었다. 낙원에서 추방된 뒤, 인간은 거친 땅에서 엉겅퀴에 긁히며 이마에 땀을 흘려야만 먹고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노동의 기원에 대한 소위 ‘낙원추방’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인간 노동에 대한 시각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거친 노동은 죄에 대한 일종의 징벌로, 인간에게 씌워진 굴레였다. 이로 인해 인류는 생존을 위해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끊임없는 노동의 굴레에 갇혀 살아가게 되었다. 그 흔적은 언어에도 남았다. ‘travail’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유래해 노동을 뜻하지만, 동시에 고통과 아픔을 의미한다. 나아가 출산의 고통, 곧 산고(産苦)를 뜻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인간 원죄의 대가는 노동과 출산이다.
이 신화적 기원은 인류의 역사적 선택과도 조응한다. 인간은 채집과 수렵의 유랑을 포기하고, 농경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였다. 농경은 정주의 안정과 다산의 풍요를 가져왔지만, 시간과 계절의 질서에 복속되고 매일의 육체노동으로 생존을 이어가야 하는 삶을 낳았다. 노동의 굴레는 생산의 격차를 만들었고, 생산의 격차는 생산수단을 지배하는 계급을 세웠다. 결국 실제로 몸을 쓰는 노동은 가치의 최하단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노동은 한자로 ‘勞動’이라 쓴다. 두 글자 모두 ‘힘 력(力)’ 자가 받치고 있다. 노동은 곧 힘을 들이는 일이다. 그래서 흔히 노동의 대가를 ‘벌이(earning)’라 하고, 힘들이지 않은 소득(income)과는 구분한다. ‘벌어서 산다’는 말은 땀 흘린 노동으로 생존을 이어가는 인간의 숙명을 가리킨다. 막스 베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노동의 가치가 근대적 의미로 조명되었다. 그는 근면한 노동과 절약의 정신이 근대를 가능케 한 윤리라 보았다. 이러한 정신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를 통과한 대한민국에도 이어져 자본주의의 씨앗을 틔웠다. 노동은 고되고 고단한 노력이지만, 주어진 일을 완수하고 일상을 이어가는 행위가 일종의 소명이라 여겨지게 된 것이다.
여전히 아득한 햇새벽의 날들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정착지를 갖지 않는다. 질문을 던지는 일과 답을 찾는 일이 중첩된 세계를 경험하게 할 때, 문학은 숭고하거나 찬란한 것만이 아니라 비루하고 참혹하며 비장한 것들까지 품는다. 동그랗게 말린 그 뒷모습들 또한 문학의 한 얼굴이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시는 노래처럼 흘러든다. 여러 노래패와 노래꾼들이 불렀지만, 안치환의 거칠고도 여린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들을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먹고 사는 일’이 전쟁과 같고, 그 전쟁 같은 일을 끝낸 새벽은 해방의 시간이라기보다 다시 시작될 밤의 중력 속으로 가라앉는 시간이다. 억지로 버티는 일상, 혹은 익숙한 관성 속에서 남은 선택은 단 하나 — 새벽부터 쓰린 가슴에 소주를 붓고 잠드는 일뿐이다.
https://youtu.be/UOaCuJwDGzk?si=7H5RpfbgvSQmJxCN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아’라는 탄식은 이미 그 한계를 예감하고 있다. 전쟁 같은 노동의 강도에도 보상은 고작 세 그릇의 짬밥. 기름을 뒤집어쓴 몸은 체력을 잃고, 끝을 알 수 없는 시지포스의 바위처럼 하루가 또 하루를 밀어낸다. 그만둘 수도, 멈출 수도 없기에 이 전쟁 같은 밤일은 오래 갈 수도 끝까지 갈 수도 없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박노해는 삶과 죽음의 대립항을 통해 노동의 실존을 비춘다. 그의 시 속에서 육신은 물성을 가진 존재로, 노동자는 그 물성 안에 갇힌 생명으로 등장한다. 생존의 본능과 절망의 경계에서 그는 버티며 산다.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궁핍의 막다른 골목에서 노동자는 단순히 체념하지 않는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매개는 차디찬 ‘소주’다. 그것은 각성의 독이며, 내일을 견디게 하는 잠시의 마취다. 그보다 더 독한 깡다구와 오기를 다져, 분노와 슬픔을 새벽의 가슴 위로 붓는다. 현실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현실에 취하는 모순의 시간 속에서, 그는 여전히 살아남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이 모순의 순환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개인의 ‘나’가 아니라 ‘우리’다. 박노해는 ‘우리’로의 전환을 위해 감정의 응축체인 소주를 매개로 삼는다. 어쩔 수 없는 절망의 벽 앞에서 그는 언젠가 솟구칠 찬가를 부른다. 그 노래에는 우리들의 사랑과 분노, 그리고 그 틈에서 피어난 희망과 연대의 숨결이 있다. 죽은 자가 산 자로, 무기의 물성이 유기의 생명으로 변모하는 새벽의 환희 — 그것이 노동의 햇새벽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새벽이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소주의 기운이 사라지듯, 연대의 희망도 희미해지고 다짐은 흩어진다. 우리는 다시 ‘나’로 파편화된다. 그것이 깊은 밤, 절망의 밑바닥이다. 박노해는 「노동의 새벽」에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절망의 미로를 노래한 것일까. 답을 미리 말하자면, 아니다. 시집 『노동의 새벽』의 다른 시들과 상호텍스트적으로 조응하며, 그는 결국 술 기운이 사라진 단단한 ‘우리’를 그려낸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대대로 바닥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아장걸음마 시작하는/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것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 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 〈하늘〉, 박노해
시인은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세상을 그린다. 살아 있음과 죽음, 절망과 희망의 대립항을 넘어, ‘우리’의 상생이 피어나는 순간이다. 그 ‘우리’의 호출은 삶의 근원적 모순뿐 아니라, 노동과 자본, 노동자와 사용자의 대립을 화해와 공존의 관계로 엮고자 하는 시인의 신념이다.
그는 이후 시적 방향을 바꾸었지만, 그가 포착한 노동의 어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노동의 새벽」이 말하는 것은 끝없는 고통의 반복이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도 서로를 일으켜 세우려는 ‘우리’의 서정, 그 느리고 질긴 새벽의 의지다.
‘호모 사케르’의 존재론적 틀
박노해라는 이름은 내게 1989년, 고등학교 2학년의 어느 봄날로 각인되어 있다. 중학교 시절 신문반 후배가 생일 선물이라며 건넨 얇은 시집 한 권. 거친 목판화로 표지를 삼은 『노동의 새벽』이었다. 그즈음 나는 나름 다양한 문학 체험을 해 왔다고 자부했지만, 그 시집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거칠고 매서운 말들이 시어로 엮인 낯선 세계 앞에서 한동안 숨이 막혔다. 솔직히 말해, 한 번 훑어 본 후에는 누군가의 눈에 띌까 두려워 책장 구석 깊숙이 숨겨두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 가난과 노동의 현실을 가까이서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 시집은 다시 내 손에 들려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시 속의 분노와 절망, 그리고 묵직한 연대의 떨림을 조금씩 체화할 수 있었다.
박노해의 본명은 박기평. 그의 필명 ‘노해(勞解)’는 ‘노동해방’의 줄임말이다. 그는 섬유, 화학, 건설, 금속, 운수 등 여러 현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노동운동에 직접 참여했다. 1980년대 초반, 그는 체제 저항적 시와 잡지를 통해 사회 모순을 고발했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오랜 세월 도피자로 살았다. 결국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사건으로 구속되어 1심 사형, 최종심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91년부터 1998년까지 복역했다. 그 시기 그는 옥중에서 써 내려간 인터뷰와 편지를 모아 『사람만이 희망이다』(1997)를 펴낸다. 사회에 대한 날선 비판과 노동 해방을 외쳤던 『노동의 새벽』, 『참된 시작』과 달리, 이 시기 그의 언어는 종교적 성찰과 농민, 땅, 생명의 문제로 이동한다. 사회주의 혁명가로 기억되던 그에게서의 급격한 변화는 당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자 배신으로 읽혔다.
이념과 이데올로기, 집단의 신념이 시대를 주도하던 1980년대와 달리, 1990년대는 개인의 자유와 자율이 강조되는 시기였다. 사회주의의 붕괴, 운동의 해체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삶으로 흩어졌다. 그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박노해의 전환은 단순한 변절이 아니라, 인간적인 귀환, 혹은 생존의 다른 양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1980년대의 박노해 문학은 한국 문학사의 뚜렷한 변곡점으로 기억된다. 그는 노동문학의 상징일 뿐 아니라, 민중문학의 계보 속에서 ‘문학적 주체의 전환’을 실현한 시인이다. 과거의 운동이 ‘이념의 의인화’였다면, 『노동의 새벽』 이후 문학의 주체는 ‘노동자 자신’으로 이행한다. 거대한 담론의 조각이 아니라, ‘내 삶의 자각’을 통해 세계를 바꾸려는 존재의 결단이 등장한 것이다.
그 전환은 ‘희생’의 개념을 새롭게 재정의한다. 근대 이전의 희생이 근면과 복종을 담보로 하는 생산의 유지 장치였다면, 산업화 이후의 희생은 자본의 재생산을 위한 익명화된 노동의 헌신이었다. 기계와 장치의 효율을 위해 소모되는 인간. 『노동의 새벽』의 노동자는 바로 그러한 불합리한 구조를 자각하는 존재다. 그는 부의 축적을 위한 대리의 대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심층에서 배제된 ‘호모 사케르(Homo Sacer)’ — 즉, 희생 제물로 바칠 수는 없지만 죽여도 되는 존재,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누구도 애도하지 않는 생명이다.
이 자각은 시의 출발점이 된다. 『노동의 새벽』의 주체가 마주한 한계상황은 사회적 상징체계로부터의 추방이다. 그들은 권리의 언어 바깥에 놓여 있으며, 이름 없는 다수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시인은 ‘다른 희생’을 노래한다. 그것은 타인의 요구에 의한 희생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온전히 의식한 뒤 스스로 선택한 희생이다. 시 속의 ‘쓰린 가슴에 붓는 찬 소주’는 바로 그 자각의 의식이다. 냉혹한 현실을 맑게 인식하려는 통증의 의식, 자기 안의 분노와 슬픔을 불태워 연대로 나아가려는 의지의 표상이다.
연대를 향한 노동자들의 운동은 자기 자각의 실천이자, 무기력한 희생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의 선언이었다. 1980년대 민중시에 등장한 새로운 주체는 더 이상 이념의 피난처 속에 숨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피로와 상처를 끌어안고, 그것을 타인의 고통과 접속시키는 존재다. 『노동의 새벽』은 그런 ‘우리의 탄생’을 예고하는 시집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새벽은 여전히 멀다. 현장의 노동은 더 하잘 것 없는 일로 전락했고, 그곳에서의 죽음은 여전히 애도되지 않는다.
‘호모 사케르’로서의 자신을 깨닫는 순간, 시의 주체는 더 이상 무력하지 않다. 그는 동일한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절망을 나누고, 그것을 연대의 언어로 번역한다. 바로 그 연대의 시작이 ‘노동의 새벽’이다. 새벽은 약속이었으나, 그 약속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박노해의 시가 던졌던 물음 — “누가, 어디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는가” — 는 오늘도 여전히 묻고 있다.
밤의 밑바닥은 무심히도 어둡다
오늘날의 노동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기술은 천정을 의식하지 않은 채 우상향의 곡선을 그리며 폭주한다. 그 속에서 인간은 잠시, 유토피아의 꿈을 꾸었다. 진정한 노동해방, 즉 고된 육체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그 오랜 열망 앞에서 비판은 잠시 눕고, 인간은 기술을 구원의 언어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기술의 등 뒤에, 익숙한 자본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음을 우리는 미처 경계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인간은 비참하게도 ‘비핵심적 필수노동’이라 불리는 모순된 영역, 더 미세하고 더 하찮은 노동의 틈으로 밀려나고 있다.
우리는 클릭과 체류를 통해 보이지 않는 광산을 판다. 그 광산에서 채굴되는 것은 금속이 아니라 개인의 시간, 관계, 감정으로 이루어진 데이터다. 착취는 타인의 손이 아니라 스스로의 손으로 자행된다. 배달앱과 글쓰기 플랫폼, SNS와 스트리밍 서비스 속에서 우리의 일상적 행위는 이미 노동으로 변환되고, 그 산출물은 알고리즘의 회로를 따라 자본으로 환류된다.
플랫폼 노동의 본질은 이 회로 속에서 드러난다. 노동의 공간은 더 이상 물리적 경계로 정의되지 않는다. 배달 노동자의 이동 경로, 글쓰기 플랫폼의 창작과 소비, 클릭과 댓글 하나하나가 노동의 잔여로 기록되고, 기업의 목적을 위해 데이터로 가공된다. 도로와 골목, 카페의 테이블, 그리고 화면 속의 시간까지, 이 모든 장소가 ‘혼종적 작업장’으로 재편된다. 알고리즘은 이 새로운 시공간을 관리하며, 노동자는 그 안에서 숙련과 적응을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숙련의 의미 또한 변한다. 과거의 숙련이 반복과 전수의 결과였다면, 오늘의 숙련은 알고리즘의 판단을 해독하고 대응하는 능력이다. 배달 경로의 최적화, 상점의 위치와 도로의 변수를 읽는 감각, 플랫폼 글쓰기의 최적 게시 시간과 분량의 조율 ― 이 모두가 새로운 숙련의 형식이다. 알고리즘은 이를 평가하고, 노동자는 그 논리에 맞서며 끊임없이 조정당한다.
AI와 센서, 추천과 알림의 기술은 인간의 선택과 습관을 강화한다. 이 유도된 반복은 다시 데이터로 환원되고, 자본으로 귀결된다. 소비자와 노동자는 구별되어 보이지만, 데이터 노동이라는 관점에서 둘은 동일한 회로 안에 놓여 있다. 클릭, 조회, 작성, 평가, 체류, 공유 ― 그 모든 행위가 무급의 미세노동이다. 플랫폼 자본은 명시적 계약 없이 이 노동을 흡수하며, 그 과정에서 착취는 ‘자발적 참여’라는 이름으로 위장된다.
재앙은 비가시적이다. 노동이 보상되지 않거나, 존재 자체가 인지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착취는 구조화된다. 플랫폼 기업의 베타 업데이트와 알고리즘 재편은 새로운 적응을 강요하지만, 저항은 언제나 ‘이미 지난 버전’의 싸움으로 무력화된다. 새 UI에 익숙해지는 과정조차 또 하나의 노동이 된다.
이 비가시적 착취는 특정 직군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가 생성하고 소비하는 모든 데이터, 검색과 클릭, 댓글과 평점은 이미 자본의 노동력으로 환류된다. 플랫폼은 인간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도 노동을 포획하며, 기술 자동화는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저가의 노동’이 무한히 복제되는 체계를 만든다.
결국 플랫폼은 인간의 욕망과 습관을 회로화하여 자본으로 전환하는 거대한 장치다. 욕망을 자극하고 습관을 강화하며 행동을 재생산하는 AI 알고리즘은 노동과 자본을 끊임없이 접속시킨다. 인간은 이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숙련을 수행하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플랫폼 자본의 체계로 흡수된다. 우리의 시간과 감정, 관계와 행위는 ‘데이터화된 노동’으로 변형되고, 그 위에서 플랫폼 권력은 견고해진다.
이 구조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일이 이제 필수적이다. 플랫폼이 포획한 무상노동과 데이터 착취의 메커니즘은 기술의 빛 속에 은폐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드러내고 제어할 사회적 공론과 법적 장치, 사용자-노동자의 연대와 비판적 성찰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다. 플랫폼의 편리와 효율 속에서 우리가 스스로 노동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 바로 그 깨달음이 지금 시대의 첫 번째 저항일 것이다.
당신은 노동자입니까?
최근 우리는 너나없이 카메라 셀피를 찍어대던 핫플레이스의 한 노동자의 죽음을 목도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적 죽음은 많은 질문을 던졌고, 그 되먹임의 이야기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SNS와 개인 블로그는 물론, 뉴스 미디어에서도 비판의 분노와 냉소는 증폭되고 있다. 그 브랜드를 팔아 성공적으로 엑시트한 창업자의 저서와 발언들이 비판으로 물들면서 말이다. 그러나 이 모습들은 묘하게 씁쓸하다.
이 관심 또한 일종의 현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죽음의 한가운데에서 애도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분노와 질시가 묘하게 섞인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의 냄새가 메운다. 수많은 포스팅 중 어느 하나에서도 죽은 노동자에 대한 직접적인 애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돈 많은 자본가의 추락에 손가락질을 얹는 형국일 뿐이다.
불과 며칠 전, 경북 경주의 한 폐기물 가공업체에서 수조 안 배관 공사를 하던 노동자 네 명이 유해가스에 중독되어 두 명이 숨지고 두 명이 크게 다쳤다. 그들의 죽음은 런던베이글뮤지엄의 청년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이 죽음은 산업재해에 무감각해진 사회의 뉴스 사이에서 한 줄 기사로 스쳐 갔고, 제대로 애도받지 못한 ‘호모 사케르’로 남았다. 이런 사고는 거의 매일 반복되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런던베이글뮤지엄 노동자의 죽음이 유독 회자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작 그 화제의 중심에는 죽은 노동자의 고통이 없다. 대신 아이디어 하나로 큰 부를 쥔 창업자에 대한 비판이 서사를 점령했다. 그리고 더 위험하고 열악한 현장에서 매일의 죽음과 싸우는 노동자들의 처지에는 공감하지 못한 채, 우리는 이 슬픔마저 패션처럼 소비한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진정 ‘노동의 새벽’을 인지하고, 쓰린 가슴에 찬 소주를 붓는 심정으로 그 새벽을 기다린 적이 있는가? 당신은 스스로 노동자인가? 노동자로 살아가며 부끄럽지 않게, 진지하고 치열하게 버텨 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선뜻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여전히 나는 그 숭고한 노동의 밤에서 탈주하려는 막연한 꿈을 꾼다. 어쩌면 나는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난 부의 형성을 ‘노동의 원죄가 사라진 순간’이라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죽는 날까지 일하며 살아가도록 되어 있다. 영원한 노동자라는 생각, 바로 그 인식이 아득한 밤의 밑바닥을 비추는 새벽의 여명을 불러온다.
시인의 자각이 개인의 고립된 각성에서 ‘각자 연대’의 자각으로 이어진다면, 이제 우리는 약한 고리의 모두가 서로의 손을 내밀고 잡을 때만이 중심에서 밀려난 이 시스템의 세계에서 버틸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불매운동과 조롱의 힐난이 아니라, 진정한 애도의 마음이 그 연대의 시작이다.
빵을 굽던 청년의 죽음을 말하는 이 많으나, 그를 진심으로 불러본 이는 적다. 우리는 한때 그가 구워내던 따뜻한 빵의 냄새를 들이마셨으면서도, 이제는 그 냄새의 자리에 싸늘한 공기를 남겨두었다. 애도란 분노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내 안에 들이는 조용한 수련이다. 그리하여 그의 죽음을 말할 때, 우리는 그를 잊지 않기 위해 잠시 생각을 쌓아야 한다. 그 쌓인 생각 속에서 다시 빵이 부풀고, 새벽의 노동이 뜨거운 손끝으로 이어지는 세상을 떠올려야 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최소한의 기도요, 이 땅의 모든 이름 없는 노동자들에게 바치는 가장 인간다운 헌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