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은 롱폼이 있어야 존재 가능하다
엘리베이터 스피치(elevator speech)라는 말은 비즈니스 자기 계발서, 취준생 면접 참고서, 그리고 기업의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수업에 단골로 등장하는 목차 중 하나다. 보통 30초~1분 동안의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짧은 시간에 동승자에게 자신의 주요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을 말한다. 엘리베이터 피치(pitch), 엘리베이터 스테이트먼트(statement)라고도 부르는 이 비즈니스 방법론의 요지는 '간단하게 추려서'가 된다.
보통 자신이 셀링 하고자 하는 기업, 상품, 서비스 등의 주요 개념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동안 전달되어야 하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엘리베이터 스피치'로 네이버 검색을 하니 수백 개의 결과가 뜬다. 대부분 '성공', 거각의 성공들을 위한 자기 계발서와 그를 바탕으로 한 블로그, 유튜브, 기사, 그리고 숏폼들이다. 특히 구글 창업자 에릭 슈미트는 이 엘리베이터 피치를 좋아하기로 유명했고, 퇴사하려는 핵심 인력을 엘리베이터 동승 한 번으로 마음을 돌리는 일이 부지기수라 전해 진다.
엘리베이터 스피치는 할리우드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영화 제작 투자를 위해 시간이 없는 짧은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그 시작이라는 것이다. 사실 유래에 대한 설은 여러 가지이니 일단 그렇다 치기로 한다. 할리우드에서 엘리베이터 스피치는 사실 '하이 콘셉트(High concept)'과 비슷한 개념으로 쓰인다. 영화 제작자로도 유명한 스필버그 감독은 '좋은 영화란, 영화의 콘셉트를 25 단어 이내로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을 한 손에 쥘 수 있는 영화'라고 이야기했다. 이 지점이 '하이 콘셉트'가 대세로 자리 잡고 '시놉시스'의 바람이 분 이유다.
정치의 분야에서도 일찌감치 대두되었다. 각종 슬로건과 한 줄 표제, 어깨띠와 일인시위 피켓, 그리고 범퍼 한 줄에 들어가는 스티커까지. 아주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다. 지난 대선, 지선, 총선에서도 '숏폼'은 필수 홍보 수단이 되었다. 티브이의 광고도 15초로 기본 포맷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고, 유튜브 광고는 5초의 형식이 자리 잡았다. 이렇듯 '숏폼'의 원조들의 이야기들은 차고도 넘친다.
이미 세상은 시간을 잘게 나누어 쓰는 시대가 되자 '숏폼'에 길들여졌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외부 자극으로 정보를 집중해서 불현듯 저장할 시간은 7초에 불과하다는 연구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의 기본적인 조건이 있다. 폭넓고 풍부하게 설명할 수 있는 '롱폼'이 존재해야 하고, 그것의 간추림과 주림이 '숏폼'이 되어야 한다. 즉, '요약'은 본체가 있을 때 유의미하다. 영화의 시놉시스가 있다면, 당연히 시나리오가 있어야 실재 제작이 가능해지는 것이니까.
한창 현업에 있을 때 각종 '전략 계획(Strategy Planning) 컨설팅'을 제안할 때마다 곤혹스러운 일이 마무리에 발상하곤 했다. 바로 수백 장의 제안서의 요체를 한 장으로 요약하는 일명 'Executive Summary (임원용 요약)'이 그것이었다. 그래서 의사결정자들의 바쁜 시간과 임팩트 있는 어필을 위해 한 장에 결론에 해당하는 요약을 넣곤 했었다. 주로 프로젝트로 얻게 될 이익을 숫자로 표현하고 결정을 촉구하는 주장을 담았다. 이를 돌이켜 보면 '간추림'의 선결된 '본판'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결국 실제적인 계약 단계를 위해서는 실무의 꼼꼼한 본 제안서의 검토가 뒤따르는 일이었다.
엘리베이터 스피치의 다른 유래로는 승강기 대중화의 효시가 된 엘리샤 오티스(지금의 오티스 엘리베이터 창시자)의 브레이크 실험에서 기인한다는 설도 있다. 엘리샤 오티스는 자신이 개발한 승강기의 안전성을 공개 실험하고자 했다. 지금의 브레이크가 달린 승강기를 1854년 뉴욕 박람회에서 자신의 승강기에 무거운 화물과 함께 올라, 승강기의 로프를 자르라고 하자 그의 안전장치가 승강기를 그대로 지탱시킨 실험 증명이었다고 한다.
그 후 승강기는 화물뿐 아니라 사람이 탈 수 있는 기계로 자리 잡았고, 그 승강기의 상품명인 '엘리베이터'가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것이 가능하게 한 엘리베이터 위에서의 알리샤 오티스 모두 연설을 '엘리베이터 스피치'라고 한다는 유래다. 짧은 시간에 몸소 가장 핵심적인 기술 개념을 대중에게 전파한 것이 특징이었다.
숏폼이라는 것이 갑자기 튀어나온 독특한 트렌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멀티미디어와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사람들은 정보의 깊은 호수에서 바쁜 길을 가면서 가장 효율적인 정보 취득의 방법을 간구하기는 것이 전가의 보도가 되었다. 짧은 시간의 주요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최소한 호기심을 유발해 후속 행위를 기대하는 것이 당연지사가 되었다.
"제대로 알리고(Purposeful),
독특하며(Original),
간결하게(Pithy)"
어느 엘리베이터 스피치 관련 자기 계발서에 나온 핵심 요약의 단어들이다. 가장 먼저 선제되는 것이 '제대로 알리는 것'이라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결국 마지막 '간결하게'는 제대로 알리기 위한 효능적 방법이 되는 말단의 수단이라는 이야기다. 줄이고 줄이는 세태에 큰 불만은 없다. 그러나, 보이는 것 뒤에 커다란 '제대로 된 것'이 존재해야 그 '간결하게' 하려는 모든 행위가 존재할 수 있다.
'1분 순삭'같이 순식간에 몰입하는 시간이 아까운 시대다. 넘쳐나는 정보와 가치를 쫓아가기도 벅차 보인다. 영화와 책도 바빠서 줄여 놓은 숏폼이나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은 어쩌면 동물원에 가보고 세렝게티의 야생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사를 담은 진실과 사람들이 시간 속에 만들어 낸 가치 있는 생각들은 늘 '빙산의 일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일이니까.
https://www.fortun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201
위의 기사를 참조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속도전'에 지친 소비 트렌드가 다시 '롱폼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시간의 압박에 시달리는 세대가 주류가 되어, 영상미디어의 경우도 점차 100분 내의 단편 오락 영화가 대세가 될 것 같았지만, OTT의 보급으로 유비쿼터스 환경이 되면서 오히려 10부작을 넘어서는 시리즈가 각광을 받고 있다. 유튜브 조회수 상위권도 40분이 넘는 '롱펌'들이 대세다.
빠른 속도의 트렌드가 주류적 관점이라는 강박이 난독과 난해의 시대를 만들었다. 드라마와 영화도 빨리 감기로 보거나, 간추려 놓은 줄거리 콘텐츠로 대신한다. 하지만 첨단 산업에서도 그 빠른 속력의 폐해는 드러나고 말았다. 대표적인 것이 '메타버스'의 흥망성쇠의 매우 짧은 주기다. 이처럼 속력이 중시되는 시대는 저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니까.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같은 오류적 표현은 사양하고 싶다. '속도는 속력에 벡터라는 방향을 내포한 것'이니까. "중요한 것은 속력이 아닌 방향"이 맞는 표현이겠지.
어쩌면 '숏폼'이 가장 필요한 세대는 역설적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시간의 무서운 추격을 매일 경험하는 노인 세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MZ들이여 '아직 읽고 보고 느낄 시간' 충분하니까 시간을 쪼개지 말고 불필요한 시간을 뭉쳐 만들어 써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