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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스테파노 Jan 07. 2023

2022년 올해의 동사(動詞) - 감당하다

한해의 정리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1224/117141010/1?mibextid=Zxz2cZ

 엊그제 우리 책방의 북토크 주제는 김영민 교수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그의 글과 사유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이 추운 날에도 책방을 가득 메웠는데 진행을 본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교수님은 책에서 고단한 노동과 삶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시 긴 여가 시간을 확보하면 되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요즘 MZ세대들은 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이 되고자 한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그는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일하지 않는 시간, 그 긴 여가의 무료함과 권태로움을 견디기 어려울 거라는. 지금은 노동의 피로에 찌들어 있어 일하지 않는 여가를 갈망하지만 막상 그렇게 살아 보면 그 또한 만만치 않을 거라는. 그의 답을 듣는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번졌다. ‘어떻게 사는가’는 결국 무엇을 감당할 것인가의 문제로구나…. -칼럼 본문 중-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은 달력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생계를 위해 잠시 나와 본 거리는 분주함이 여전했다. 이 엄동설한에도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종종걸음 내닫는 이들은 무엇을 위해 저리 움직이는 것일까? 건조한 답은 일상과 생계가 대부분이겠지만, 자신의 지식의 갈급, 지혜의 문답, 그리고 성찰과 반성을 위한 시간들을 채우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무언가 "감당하기" 위해 분주함을 재촉하는지도 모르겠다.


책방 주인이 된 최인아 님의 글은 늘 부러운 마음을 감당하게 해 주었다. 어제 가슴에 담아둔 글을 다시 꺼내 읽었다. 다시 꼭 꼭 새겨 읽어 보았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조응의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올해의 동사(動詞)는 너로 정했어. "감당하다"


출처=네이버 사전

사전의 말뜻이 결기가 있다. 견딜 "감"에 마땅히 "당"이라니. 마땅하게 견디어 내는 것을 말한다. '감수하다'는 능동의 의지가 아닌 어쩔 수 없이 견디어 내는 수동이라면, '감당하다'는 스스로 마땅하게 여기어 견디어 내는 것이란다. 잠다, 견디다, 처리하다 등등의 말을 품고 있다. 그래서 영어 한 단어로 대체 번역하기 힘든 동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당하다"라는 말의 울림은 깊고도 넓은 파장으로 다가온다.


최인아 님은 오늘이라는 것은 지난날들의 모든 선택과 한  일들을 감당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가슴에 내려앉는 이야기다. 나는 무언가를 결정하고 예스와 노를 선택하는 일상의 양자선택을 거듭했을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한 것도, 해야 되는 일을 하지 않은 것도 모두 나의 결정이었다. 그 모든 결정의 자국들은 상처가 되었든 새살이 되었든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미워해서,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아 벌어진 것들도 감당해야 한다. 어떤 이를 평가하고 판단해서, 어떤 부류들에게 배척받고 지적받는 일, 또한 내가 감당할 것들이다. 지난한 병을 달고 살았던 시간들 또한 "만성"이라는 이름표 하나로 감당할 일이 된다. 내가 미워하고, 사랑했던, 아니면 타인에게 미움받고 사랑받는 그 시간을 감당하는 날이 바로 "오늘"이 아닐까.


감당하는 시간들은 그리 좋은 날들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기꺼이 마땅히 견디어 내야 한다는 당위로 품지 못한 날들도 부지기수이다. 그 시간들이 삶의 주름을 만들고, 그 주름들 틈에 감당해 내었던 일들이 숨어들었을 것이다. 제법 감당해 내고 살았구나. 아직도 감수할 일보다 감당할 일들이 많이 있음에 감사한다.


내년에도 감당할 것들이 기다리고 있겠지. 조금 더 넓게 펴진 어깨와 가슴으로 그것들을 마땅히 견디어 내고, 처리하는 날들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살아 낸다는 다른 말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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