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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 생각] 의심이란 '인내'의 과정

웅이가 여니에게

by 박 스테파노

“의심이란 자신의 견해가 옳은지 그른지 ‘보고 또 보는’ 인내다.” -배철현 <심연> 중-


비판하고 합리적으로 의심을 품으면 내부 분열자가 되는 세상이 정상일까요? 그래서 더 의심스럽습니다.


도덕이나 양심엔 ‘적당함’도 없으며 ‘현실에 맞는’ 것 또한 없습니다.


흑백사진은 묘한 힘이 있습니다. 자꾸 들여다보게 되지요. 그리고 그 검고 흰 채도로 표현된 것들의 색을 상상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결핍은 물음을 품고, 그 물음은 힘을 지닙니다.



​자신이 인식하려는 대상을 보고 또 보기를 수련하는 사람들은 '의구심'을 지니기 마련입니다. 여기에서 의심은 대상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대상을 보고 있는 자신의 시선에 대한 불신입니다. 일인칭 시선의 특징은 왜곡입니다. 특정한 시공간에서 태어난 역사적인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오래전부터 오감으로 인식하는 세계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 당위성을 의심해 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는 유일한 사실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라는 명제로 유명하지요.


​어떤 분야의 최고 권위자가 되기 위한 노력들, 즉 오랜 시간을 바쳐 정교하게 훈련하고 완벽한 기량을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는 것은 사뭇 거룩한 일입다. 경쟁은 어떤 분야에서 최고를 가려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탁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군분투한 인간을 축하하기 위한 의례일 뿐입니다.​​


​소피아 학파의 고르기아스는 질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말을 통해 색깔이란 개념을 소통할 수 있을까? 우리의 귀는 음성을 통하지 않고는 색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르기아스의 궤변학은 후대 허무주의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오늘 보는 대상을 의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대상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대상에 투영시킨 편견과 무식을 돌아보고 개탄하는 것입니다.


의심이란 자신의 시선이 옳은지 혹은 그른지 ‘보고 또 보는’ 인내의 과정입니다. 일인칭의 왜곡된 시선을 발견하는 것이 배움의 시작이며, 상대방의 실수에 대한 관용의 토대가 됩니다. 나의 시선을 늘 의심하는 수련이 필요한 때입니다.


​-곰탱이 남편의 어여쁜 아내와 나누는 아침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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