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은 '경제'라는 과대망상으로 버티는 일상
1.
90년대 세기말인지 2000년을 맞이한 뉴밀레니엄의 초입인지 시기를 특정할 수 없는 어느 날이 기억난다. 특정한 때를 인지할 수 없을 정도이니 그다지 중요하거나 대단한 일은 아니다. 사회에 발 들이고 출퇴근을 거듭한 지 제법 된 어느 날의 퇴근길이었다. 지하철역에 내려 집으로 향하던 그 길에 자꾸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럴 때가 있다. 누군가 나를 알아보거나 말을 걸려고 하거나 그럴 것만 같은 느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떤 중년의 남성 분이 가던 길을 가로막고 자신의 점퍼 안쪽에 손을 넣어 무언가 꺼내 내민다. 놀라기도 했고 기분도 그다지 좋지 않아 한 발 물러 서서 내민 무엇을 본다. 자세히 보니 만원 권 다섯 장. 그리고 아저씨는 힘겹게 입을 뗀다.
"신문 구독하시면 현찰 5만 원, 자전거 석 달 무료이고 스포츠신문 끼워 드립니다."
2.
당시 신문 구독 호객행위는 법과 행정 지도로 금지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 구독자를 늘리려는 신문 배달 사무소나 현금과 현물에 혹하는 잠재적 호갱들은 적지 않게 암묵적 거래를 이어 갔다. 신문뿐이던가. 여성잡지를 사면 화장품이나 기타 가사에 도움이 되는 '사은품'이 한가득이었고, 매일 학습과 아이템플로 대변되는 일일 학습지도 이런저런 증여품 자랑이었다. 일배송하는 우유, 베지밀, 선식도 끼워 주기 등의 '구독 사은'은 필수적인 마케팅이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 명색을 잇는 아파트 신규 입주 단지에 늘어 선 통신사들과 지역 케이블 송출사의 파라솔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요즘 그럴싸하게 포장된 '구독 경제'의 할아버지 뻘이 된다.
3.
일본어의 잔재 중 불편한 표현인 '~된다'에 대하여 이야기했는데, 사실 단어는 그 보다 몇 곱절 많다. 그중 하나가 '경제'이고, 또 다르게 급부상하는 단어가 '구독'이 그러하다. '경제'는 영단어 economy의 한자 번역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식' 한자 번역이다. 원래 중국에서는 <사기>에서 유래한 "理財(이재)"라고 사용하였다. 반면 일본인들은 <대학>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는 표현에서 차용한 "경제(經濟)"라고 번역했다. 사실 '이코노미'가 가진 실제적 의미와 본디 유래는 "이재"가 더 잘 나타낸다. economy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로 '집'을 뜻하는 oikos(eco-)와 '분배'에서 파생되어 관습, 규칙을 나타내는 nomia(nomy)가 만나, "집안일". 즉 "가계 활동"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부풀리기 좋아하는 일본인의 습성인지 돈벌이라는 표현보다 진중한 가치에 대한 의미부여인지는 몰라도, 19세기 이후 경제가 압도적으로 통용되면서 '이재'는 그저 치부(致富)의 표현이 되고 '경제'가 economy를 뜻하게 되었다. 먹고사는 일상의 일이 나라살림 같은 거창한 것이 되었다고 할까.
4.
요즘 툭하면 눈에 띄는 '구독'이라는 말도 일본식 한자 번역에서 시작한다. 구독(購讀)이라는 한자를 그대로 직역하면 '읽을 것을 사다'라는 의미로, 주로 정기 간행물인 신문, 잡지, 연보 등을 일정기간 구매하여 읽을 권리를 획득하는 영어 subscription의 번역이다. sub+script라는 단어로 알 수 있듯이 이 단어의 본디 뜻은 계약이나 문서의 하단에 기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수가 '서명하다'로 대체하는데 signition의 서명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바로 계약의 의미에 덧붙여 특정한 약속을 기입하는 '약정'이 바로 subscriprion이 된다. 사고파는 것에 덧붙이는 특정한 약속, 기간, 방법, 할인 및 소유 권한, 연장 사항이 그것이다. 그러나, 신문 등 정기 간행물만 우선 접한 일본에서 '구독'으로 명명한 단어가 지금 유행인 subsceiprion economy를 그대로 직역해 '구독 경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일견 모든 것이 '읽어 내야 하는 것'이라는 심오한 뜻이라고 치부하면 큰 불편은 없어 보인다.
5.
이렇듯 '구독 경제'는 절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다. 획기적인 소비의 행태가 아니다. 오히려 세기가 넘도록 묶은 상술이고 그 기간 동안 통용된 나름의 공증된 경제 활동 수단이었다. 거창한 거시적인 무엇이 아닌 집안 살림과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는 보통사람의 '이재 활동'의 한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라는 말은 참 부담스럽기만 하다. 언론 기사에 "구독 경제의 비상"이라는 의미의 리포팅에서 선진국(? 우리 선진국이라며)은 월 지출의 얼마, 그리고 한국도 어느 정도라는 비교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다 '말장난'에 가깝다.
https://www.smartcity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30
배포된 자료에 따르면 월간 또는 연간 가입하는 구독 경제는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글로벌 시장 가치는 2022년에 2750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의 경우 구독 경제 시장은 2240억 달러였으며 올해는 22.8%가 증가할 것이라는 추정이다. -기사 본문 중-
6.
'구독'이라는 단어에 대한 불평은 이쯤으로 하고, 구독 경제의 실효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구독'을 하면 누구에게 이득이 될까? 공급자나 판매자일까? 아니면 소비자들일까? 계약 당장의 시점을 보면 구독자들에게 혜택과 이익이 부여되는 것처럼 보인다. 장단기의 반복적인 소비를 약속하는 반대급부로 할인이나 기타 사은품, 그리고 안정적인 공급의 편익과 금전적 이득을 얻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구독'은 공급자와 판매자의 '손쉬운' 영업이 되고, 안정적인 매출과 이익의 확보를 가져다준다. 할인? 사은품? 우선 배달? 설마 그것들이 '공짜'일리가.
7.
신문, 잡지의 구독 시대를 지나 정보통신 기술이 고도화된 현대 사회에서의 구독의 대표적인 것들은 이미 한국에서 넓게 자리 잡고 있다. 모바일 통신과 인터넷 통신이라는 '정보통신 유틸리티 서비스'가 바로 그것이다. 거의 모든 가정과 세대, 그리고 개인이 한 번은 경험한 경제 서비스일 테니까. 이 것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소비의 활동만으로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좀처럼 '원가'를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렇듯 '구독 서비스'는 '구매 소유'하기 어려운 것들을 '이용'하게 해 준다. 그리고 그 원재료의 가격, 윈가의 구성, 기타 비용의 가늠이 어렵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깜깜이 정보력을 이용하는 마케팅으로 할인, 보너스, 혜택 등의 미끼를 던진다. 이런 '구독' 비즈니스의 요체는 바로 "과금"-billing이 된다.
8.
이런 이유에서 "구매하지 말고, 구독하세요"같은 카피라이팅은 참 우스운 이야기가 되고 만다. 구매하여 소유하기 어려운 것들을 '구독'하는 것이고, 가격의 깜깜이 구조도 통용이 되기 때문이다. 통신회사 기업 시스템 중 가장 중요한 시스템은 'Billing system'이다. 바로 가격을 책정하고 내외 변수와 기타 환경을 고려하여 '과금'을 하는 것이 기업의 가장 중요한 요체가 되고 있다. 제조업체에 ERP가 있고 은행에는 뱅킹 시스템이 있듯이 통신사에는 빌링 시스템이 있는 것이다. 이 과금 부서의 인원도 상상 이상의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에게는 마치 많은 할인과 혜택을 주는 것으로 포장하여 '약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이 비즈니스의 핵심이 된다. '구독'은 결국 지속적인 이용을 약속하는 '약정'의 애매한 표현이다. 기업은 이 지속적인 약정으로 streamline이라고 하는 중장기 고정된 매출과 수익을 예측하고 담보하며 비즈니스의 안정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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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thescoop.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343
이렇게 기업들이 구독경제에 올라타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안정적 매출의 기반을 새롭게 확보할 수 있다. 구독 서비스 결제가 ‘선불’로 이뤄지는 만큼 기업이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시간’을 벌어줄 수 있어서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 교수는 “구독경제 모델을 갖춘 기업들은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성장을 이어갔다”면서 “매출이 감소하는 시간에 비교적 여유가 있고 그만큼 불황에 대비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중략)
그럼에도 유의할 건 있는데, 그건 가성비에서 기인하는 ‘망각’이다. 가격 장벽이 낮은 탓에 별생각 없이 구독했다가 까맣게 잊는 소비자는 생각보다 많다. 분명히 무료 구독했는데, 어느샌가 ‘유료’로 전환된 경우도 있다. -기사 본문 중-
ㅇ요인 요인이다. -기사 본문 중-
9.
요즘 스타트업 기업들 사이에서 '구독'이 핵심 비즈니스 모델인양 퍼져 나가고 있다. 하지만 실체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선 효시라고 일부가 오도하고 있는 것처럼, 마이크로소프트나 어도비가 마치 최근에 "subsciption"을 도입한 것이 아니다. SW의 라이선스라는 것은 '소유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저 뚜껑을 열어 볼 'unboxing'의 '권리'만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숨어 있는 과금으로 'Subsceiprion+MA', 즉 구독 약정과 유지보수 서비스를 넣어 제공한다. 이 SMA라고 부르는 것은 주기적으로 갱신해야 하며, 대부분 갱신 시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 이전 일반 데스크톱에 탑재된 소프트웨어의 경우 사용자가 굳이 SMA를 갱신할 필요가 없었기에 유명무실했지만,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필수적이었고 이 효용이 경쟁이 심화된 소비재 소프트웨어로 이식된 것이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는 것이다.
10.
'구독'이라 부르는 '약정' 비즈니스 모델에는 암묵적인 수요와 공급의 합의가 있다. 바로 "지속 가능한 양질의 서비스, 상품"이 그것이다. 유사 서비스인 렌털이나 운용리스의 경우 실제 하는 '제품'으로 담보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접하는 '플랫폼 서비스'는 어떤가? 넷플릭스와 아마존 이야기들 하면서 코 묻은 돈을 빼내려는 행태가 늘어난다. 그런데, 아는지 모르겠다. 넷플릭스는 비디오와 DVD 대여 배송 수거 서비스로, 아마존은 도서 구매 대행 서비스로 20~30년의 업력을 지닌 검증받은 서비스로 '구독'을 적용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의 현재 비즈니스 매출 포트폴리오에 '구독'이 매인 스트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11.
'구독 경제'라고 붐업을 시키는 현시점이 솔직히 불편하다. 비밀스러운 과금으로 원가를 가리는 데에도 소비자들이 약정을 계속하는 이유는 '품질' 때문이다. 검증되고 지속 가능함이 제시되는 품질이 유용하였고, 믿을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멤버십을 마치 '구독' 모델인 것처럼 유도한다. 패스라는 이름으로 입장권을 판매하고 엄청난 품질의 서비스가 있는 것처럼 포장한다. 과금의 기술이 비즈니스 모델이 되고 세상에 없던 기술로 둔갑한다. 벤처 투자의 속성상 트렌드가 되어 일시 회수가 가능하면 투자금을 쏘아 주니, 구독자 수와 판매량으로 투자 유치에만 혈안 되어 있다. 지금 한국 스타트업 중 유니콘의 반열에 오른 몇몇 기업들의 민낯이기도 하다.
12.
정들었던 글쓰기 플랫폼이 구독 모델로 전환되는 모양을 목격했었다. 직접 화폐의 투입이 아닌 기타 기여 보상으로 구독하는 모델이지만 그 또한 willing to pay를 부르는 '판매'가 된다. 그 비즈니스 모델의 평가는 위의 전체 이야기로 갈음합니다. '구독'이란 예전부터 우리들의 '일상'에 있던 신의의 거래였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아침 밤사이 소식과 하루 소중한 단백질 유제품을 배달해 주리라는 믿음. 그리고 한 달 동안 이용한 대금을 후불이라도 지불해 줄 것이라는 신뢰. 그리고, 이 회사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앙 같은 기대가 이뤄 낸 소중한 '일상'이었다. 이런 일상의 소중함을 함부로 차용하여 '경세제민-경제'라는 어마어마한 과대망상으로 훼손하는 천박한 자본의 욕심을 경계할 뿐이다. 그리고 이 과대망상이 이루어지려면 엄청난 행운만이 가능할 것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