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업데이트] 썸씽 스페셜

3차 골수 검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by 박 스테파노

평범한 어느 날, 케이블 티브이 채널을 습관적으로 돌리다. 20년 전의 어느 드라마 재방을 스치듯 보게 되었습니다. 선남선녀의 주인공들이 서양식 레스토랑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장면이었습니다. 메뉴를 고민하던 여자의 면전에서 주인공 남자는 호기롭게 메뉴판을 닫아서 종업원에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스페셜로 둘. 주세요."

나이 제법 먹은 세대에게 익숙한 장면, 추억의 메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식당, 패스트푸드점이나 분식점에서도 '스페셜'메뉴는 흔하디 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무엇, 썸씽 스페셜 (something special)은 존재합니다. 그저 보통의 존재보다 특수해 보이는 무엇은 천혜의 존재이거나 남다른 경쟁력을 보유한 우월감의 발현은 늘 생리적 본능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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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노멀(normal)"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ab-라는 접두어로 반대 의미의 부정어를 이야기할 수도 있으나, 영어권에서는 흔히 "스페셜(special)"이라는 답을 들을 수 있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척도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라 '특별'하고 '독특'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상하다'라고 표현되는 이 세상 일반화의 규범 안에 들지 않는 것을 표현하게 된다. "스페셜~"이나 "특~"으로 표현되면 가치부여가 되는 기준이, 반대말의 의견만 부각하면 매우 부정적인 표현이 되는 것이다.

-영화로운 다반사 <노멀의 반대말> 중 -


영단어 노멀(normal)의 어원은 도량형의 기준이 되는 척도-norma에서 기인했다는 지식과 당시 최고의 인기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섞어 글을 써 내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짧은 생각에서도 던진 물음표이지만, 정상-노멀의 반대말은 '이상한'이 될 수도 '특별함'이 되기도 하는 세상입니다. 어찌 되었든 표준분포에서 벗어난 지표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우쭐댐보다 걱정 가득함이 먼저 다가서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수혈 대장정


오늘 외래를 보기 전에 유전자 채혈이 있기에 예상은 하였지만, 세 번째 골수검사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일주일 간 휴약을 하였음에도 혈액수치 하강세는 멈추지 않아, 적혈구 두 팩, 혈소판 한 팩, 그리고 백혈구 촉진제를 다시 처방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주치의 설명은 골수 생검상 섬유화 진행이 많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보통 골수증식질환인 골수섬유증과 만성골수성백혈병이 함께 진행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있는 경우라고 거들어 설명해 주었습니다.


지난 기저 질환이었던 강직척추염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골수의 환경을 척박하게 만든 유관 원인일 수도 있다는 설명에 지난 십 년 동안 기회를 실기한 몸 돌봄에 대한 결과라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어찌 되었든 암세포가 반응하여 골수가 텅 비어진 상태라면 촉진의 시간과 휴식이 답이 될 것이고, 암세포가 골수를 장악하여 더 이상 조혈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4세대 신약으로 항암제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작년에 4세대 신약이 보험청구 가능한 심평원 등재가 되었고, 약제 실패 후에는 만성기 동종 골수 이식이라는 방법도 남아있으니 감사할 일입니다. 하느님은 늘 걱정과 기대를 함께 주시는 듯합니다. 차주에 골수검사를 하고 유전자 검사와 대조하여 치료 방향이 재정립될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저에게 '실패'는 여전히 '다시, 다음'의 다른 말로 남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스페셜 인생


'썸씽 스페셜'은 1990년대 '패스포트'와 함께 유흥 주점을 양분하던 스카치위스키의 브랜드입니다. 이 양주를 좋아한다기보다, 대학 시절 신촌 먹자골목에 위치한 분위기 좋지만 제법 안주 가격 나가던 맥주, 양주집 이름이 <썸씽 스페셜>이었습니다. 주머니 여유로운 학생들이나 그런 학생들이 주류인 동아리, 모임 장소로 유명했기에, 그곳에서의 모임에는 늘 긴장 가득 입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남다른 풍미의 원액'이라는 뜻의 브랜딩을 새삼스럽게 떠올린 이유는 '평범'에 대한 소망입니다. 평균적 범주의 사람이라면 걸리지 않을 혈액암, 아니 혈액암 환자라도 대부분의 일반적 증례에 해당되어 항암제만 꾸준히 복용하는 '남다른 평범'을 꿈꾸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직 확진은 아니지만 전체 동일 유병자 중 5% 미만의 확률에 들어가는 희귀성 예후가 예상됩니다. 걱정스럽지만, 워낙 회복탄력 강한 멘탈 덕에 이런 생각으로 걱정을 기대로 바꾸어 봅니다.


'하느님은 나를 여전히
'썸씽 스페셜'로 보시는구나!'


그리 선하게 살아 내지 못한 지난 시간의 보속이라도 괜찮습니다. 무언가 쓸모 있는 도구로 쓰심이 있지 않을까 얕은 기도를 드릴 뿐입니다.


누구나 돌아 본 인생은 '남다르다2'

어릴 적 부터, 매우 주관적인 기억이지만, 유별났습니다. 머리가 너무 커서 10개월이 다되도록 고개를 가누지 못하던 녀석이 한 달 만에 목 가누고, 뒤집고, 앉고, 기고, 서고 걸었다지요. 어릴 적 그린 그림은 명동성당 별관에 여전히 걸려 있고, 사제가 되기를 바라는 분들의 천일기도도 받았습니다. 서예도 좋아라 해서 국민학교 4학년에 고등 한문 1,800자를 떼고, 늦게 시작한 주산학원에서는 겨우 3급 짜리가 3,4단이 수두룩한 선수반에 들어, 일본 학생들과 겨루는 경진대회에서 입상도 했다지요.


중고등학교 지능 검사에서 멘사회원이 되고, 설렁설렁 공부해 신촌에 있는 나름 유명대에서 두 개의 학번을 이과, 문과 차례로 습득했었습니다. (재수 없게도 자랑질이 되었습니다.) 사회에서도 남보다 조금 빠른 승진, 조금 이른 임원이 되었었지요. 그 속력을 변속하지 못한 탓일까요. 남들보다 조금 큰 좌절, 실패, 은퇴를 하고, 남다른 병을 얻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평범한 날들의 연속이야 말고 비범의 경지라는 것을요. 인생이라는 과대망상을 지탱해 주는 비루하지만 소중한 평범을 추앙합니다. 이겨내 보겠습니다. 응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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