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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Apr 29. 2017

과자 봉지 뜯기



   나는 손으로 물건을 다루는 것에 서투르다. 과자 봉지를 제대로 뜯거나, 병마개를 쉽게 따거나, 그런 일에 젬병인 것이다. 손가락을 그냥 움직이는 건 남들만큼 잘하는데, 손가락을 움직이며 뭔가를 하는 것에는 어설픈 것이다. 

   나도 모르겠다. 내 손이 왜 이렇게 둔한지. 유전 영향도 아닌 것 같다. 그냥 내 손은 그렇게 생겨 먹은 듯하다. 내 코 모양이 그렇게 생겨 먹은 것처럼, 그냥 그런 거. 내 고유한 특성인 거.    





   아까 나는, 과자 봉지를 안고 씨름하고 있었다. 파란색 과자 봉지가 쭈글쭈글해지도록, 나는 그걸 주물러댔다. 오기 같은 게 생겨서, 나는 그걸 가로로 뜯지 않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부스럭거려. 뭐하는데?”

   뒤에서 내 머리를 헝클며 나타난 네가 내게 물었다. 네 머리를 감고 있는 흰 수건을 올려다보던 나는 다시 과자 봉지를 내려다보았다.

   “배고파?”

   네가 다시 물었다. 나는 고갤 좌우로 흔들며, 다시 과자 봉지 양쪽을 꼬집었다. 

   “또 그런다, 또.”

   내게서 과자 봉지를 가져가려 하며, 네가 말했다.

   “아니야. 내가 할래.”

   네게서 조금 돌아앉으며, 내가 대꾸했다.

   “손 아프잖아. 빨개졌어, 손. 얼굴도 빨개. 이리 줘.”

   “아니야. 내가 할래.”

   “왜?”

   “뭐가 왜야?”

   “그냥 옆으로 찢어서 뜯어. 그렇게 뜯지 말고.”

   “제대로 뜯고 싶어서.”

   “제대로 같은 소리 하네. 누가 그래? 그렇게 뜯어야 제대로 뜯는 거라고.”

   말끝에 표정을 살짝 굳히며, 너는 기어이 과자 봉지를 빼앗아 갔다. 가로로 눕혀진 봉지가 순식간에 뜯겼다. 벌어진 과자 봉지 안에서 매콤한 향신료 냄새와 기름 냄새가 새어 나왔다.

   약간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책상 귀퉁이에 과자 봉지를 내려놓은 너는 내 손을 찾아 쥐었다. 네가 고개를 숙이자, 네 머리를 감싸고 있던 수건이 느슨해지면서, 네 왼쪽 어깨로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옅은 샴푸 냄새가 났다. 너는 내 손을 두어 번 뒤집어 보았다. 

   “물집 잡히면 어쩌려고 그래. 날도 더워서, 상처 아무는 데 꽤 걸리는데.”

   네가 투덜거렸다.

   “가끔 이런 거에 약 올라서.”

   “뭐? 과자 봉지 뜯기?”

   “아니, 내가 잘 못하는 거. 잘 못한다는 거 아는데, 어떻게든 해 보고 싶어져서.”

   내 말을 듣고 있던 네가 고갤 절레절레 흔들었다. 네 머리에 둘러져 있던 수건이 완전히 풀어져, 네 어깨 위에 걸쳐졌다.

   “제대로, 잘,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자기 좀 괴롭히지 마. 내 속 뒤집는 데 아주 선수야.”

   한숨을 짧게 내쉰 네가 뒷말을 잇기 시작했다.

   “뭔가를 해내는 접근법이 다 다른 거야. 그냥 그런 거야. 어떤 접근법만 제대로이거나 잘하는 거고, 다른 접근법은 제대로가 아니거나 잘하는 게 아니고, 그런 게 아니라구. 왜 쓸데없이 잘하고 못하고를 따져? 자기 방식대로 그냥 하면 되는 거지.”

   어깨로 떨어진 수건을 당겨 쥐며, 너는 말을 맺었다. 네 손에 들려 있던 수건이 내 얼굴로 날아왔다. 

   “과자 봉지 때문에, 또 손 아프게 하기만 해. 가만 안 둬.”

   다시 거실 쪽으로 걸어 나가며, 네가 목소리를 높였다. 축축한 수건이 내 무릎 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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