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신기한 얘기를 들었다. 어느 도시에 ‘기억 복원 센터’가 생겼다는 얘기를. 엄마를 만나러 온 이모가 그 얘기를 했었다. 사흘 전쯤이었다.
엄마는 그 얘기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기억이 지워지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텐데, 뭐하러…….”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다시 싱크대 앞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상대 반응에 따라 말수를 줄이거나 늘이는 재주가 없는 이모는, 엄마 등에 대고 그 센터 얘기를 좀 더 늘어놓기 시작했다.
“언니, 내 친구 동생이 글쎄, 그 센터 다니면서 기억 몇 가지를 복원했다니까? 뭐, 나야, 거기 가 본 적이 없어서, 거기서 진짜 기억을 복원시켜 주는지 아닌지, 복원시켜 준다면 어떻게 복원시켜 주는지 잘 모르지만, 그 센터 들락거리는 사람들 말로는 기억이 감쪽같이 복원된다 하더라구. 한두 사람도 아니고 꽤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증언하는 거 보면, 그 센터, 믿을 만 한 센터 아니겠어?”
이모와 엄마가 주방에서 그러고 있을 때,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모 목소리를 귀담아 들으며, 나는 사진이 복원되는 장면을 상상했다.
요즘은 수십 년 된 흑백 사진을 컬러 사진으로 복원시키기도 하고,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 속 얼굴을 실제 얼굴로 복원시키기도 하는데, 그것처럼 색깔이 다 빠져 버리거나 한껏 일그러진 기억도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복원되는 건지 궁금했다.
기억 복원이라.
인간의 기억은 두 가지 방식으로 변형된다. 하나는 망각. 하나는 왜곡. 기억이 잊어지거나, 사실과 다르게 기억되거나.
삶을 감당하기 위한 한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이 흐려지거나, 기억의 형태가 바뀌어 버리는 건. 나도 엄마랑 생각이 같다. 기억이 사라지거나 뒤틀리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걸로 여긴다. 그렇게 해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적당히 까먹고 적당히 착각해야,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늘을 살 수 있으니까.
예전에는 자기 멋대로 기억을 지우거나 꾸며대는 사람을 싫어했다. 자기가 의도해서 그런 게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 식의 기억 변환 과정을 거친 사람을 싫어했다. 그런 식의 기억 변환 과정을 얼결에 거쳐 버린 나를 싫어했다.
지금은 아니다. 살 만큼 살아서 그런지, 과거가 쌓일 대로 쌓여서 그런지, 내 과거를 모조리 사실적으로 기억하며 살 자신이 없다. 비겁하다고 해도 좋으니, 지나간 순간들을 필요한 만큼 잊거나 오해하며 지내고 싶다. 지금처럼.
몸에 난 상처들이 아물며 그 흔적이 사라지는 것처럼, 삶에 난 기억이라는 상처들의 흔적도 말끔히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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