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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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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로운 Jun 30. 2017

예술과 나무와 뿌리

   발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다. 카페 주인이 1층 홀 가운데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 카페는 특이하게, 바닥이 마루로 되어 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우리 반 바닥이 이런 마루였다는 생각. 

   1층은 내부에서 바로 2층으로 이어지는데,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나무로 되어 있다. 이 카페에는 현대적인 느낌을 풍기는 게 거의 없다. 이 카페가 들어서 있는 10층짜리 건물 자체는 현대식으로 지어졌어도. 에스프레소 머신이나 원두 그라인더, 냉장고 같은 기계들이 오늘날의 시간 감각을 간신히 유지시켜 주고 있다. 여긴 복고풍을 구현해 내는 장소이기보다, 옛 시대 그 자체가 고스란히 옮겨져 온 듯하다. 주인의 신념과 고집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홀 중앙에 놓인 테이블 근처에 멈춰 선 주인의 왼손에는, 손가락 두 개를 맞붙여 놓은 크기의 조그맣고 하얀 리모컨이 들려 있었다. 주인이 천장 쪽으로 왼팔을 치켜들었다. 주인의 가느다란 팔목에 걸려 있던 까만색 머리 끈이 헐렁거리며, 팔꿈치 쪽으로 살짝 떨어져 내렸다. 희미한 기계적 멜로디와 함께, 천장에 붙어 있던 에어컨이 작동되기 시작했다. 

   “자리 옮길까, 우리?”

   내 맞은편에 앉아, 송곳니로 딱딱한 브레첼을 깨물어 먹고 있던 현명이 물어 왔다. 

   “왜? 어디로?”

   굵은 소금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브레첼 하나를 집어 들며, 내가 되물었다.

   “2층으로. 2층에 전시회, 뭐 그런 거 한대.”

   “무슨?”

   “나도 잘은 몰라. 아까 여기 들어오다가 입구에 붙어 있는 전단지 봤는데, 거기 그렇게 적혀있더라고. 2층에서 뭔 전시회 한다고.”

   “미술 작품, 뭐 그런 건가.”

   “아마? 샘플 그림 같은 거 전단지 밑부분에 있던데.”

   “보고 싶어?”

   “궁금하잖아. 코앞에 있다는데. 가자, 응? 내가 어디 10층까지 걸어서 올라가자고 하는 거 아니잖아. 너 오늘 되게 피곤한 거 아는데…….”

   현명은 말끝에 아양 부리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대답 대신, 빈 의자에 내려놓았던 트레이를 테이블 위에 얹고, 유리컵과 브리첼 접시를 트레이에 올려놓았다. 현명의 눈꼬리와 입꼬리가 차례로 올라갔다.     

   내 생각보다, 2층의 전시회 공간은 좁았다. 2층으로 올라가자마자 펼쳐진 전시회 공간은 3m 남짓했고, 그 너머는 전부 테이블이었다. 테이블은 듬성듬성 차 있었다. 대개 혼자 온 사람들이 2층에 머무르고 있었다.

   “언더그라운드 예술가, 독립 예술가, 그런 사람들 작품인가 봐.”

   왼쪽 벽 가운데쯤 걸려 있는 푸른색 그림을 들여다보며, 현명이 중얼거렸다.

   “너, 언더그라운드의 반대말이 뭔 줄 알아?”

   현명의 등 뒤에 선 내가 현명에게 물었다.

   “아니, 뭔데? 그냥 그라운드? 어퍼upper그라운드?”

   “메인스트림mainstream.”

   “메인스트림? 주류?”

   “응. 주류. 주류에 속하지 못한 것들은 언더그라운드. 근데 언더그라운드가 지하라는 뜻이잖아. 주류가 아닌 것들은 지하에 속한 뭔가라고 얘기하는 거, 뭔가 좀 께름칙해, 난.”

   “뭔 상관이야, 니가 예술 할 것도 아닌데.”

   “이게 예술만의 일인 건 아니잖아.”

   내 말을 들은 현명이 말없이 뒤돌아 나를 응시했다. 현명의 오른손 손바닥이 내 이마에 가만히 얹혔다. 현명의 손바닥은 미지근했다. 현명의 눈빛은 현명의 손바닥보다 덜 미지근했다.

   “아직 열나네. 내가 미안해.”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던 현명이 속닥거렸다.

   “뭐가?”

   “무신경하게 말해서. 너 그런 거 싫어하잖아. 게다가 너 오늘 아픈데.”

   “아프긴. 나 안 아픈데.”

   “14시간 동안 누워 있기만 한 게, 정상은 아니잖아.”

   “비정상일 건 또 뭐야?”

   “알았어, 알았어. 자리로 가자. 앉자.”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현명이 내 손을 잡아당겼다. 나는 내 신경이 예민해지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에 대한 앎은 나보다 현명에게 먼저 발견된 듯했다. 어쩌면 나를 불러내기 전부터, 현명이 그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현명은 그런 사람이다. 나에 관한 것이든, 뭐에 관한 것이든, 항상 나보다 훨씬 앞질러 알고 있는 사람.  

  

   “나 삐딱해.”

   얼음이 녹아 색이 좀 옅어진 커피를 내려다보며, 내가 말했다.

   “더 그래도 돼. 니 앞에 있는 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난데, 뭐가 걱정이야.”

   “아니야, 싫어. 너무너무 싫어. 가까운 사람 만만하다고 분풀이 하는 거 같잖아.”

   “진짜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야?”

   “모르겠어.”

   “근데 웬 분풀이?”

   “모르겠어. 그냥 내 속에 화가 꽉 차 있는 거 같아. 이것들이 어디에서 온 건지는 모르겠어.”

   “다 알고 살면, 그게 사람이냐. 내키는 대로 해. 병나기 전에 좀 토해 놔. 허리 안 부러지게 14시간 정도만 엎어져 있었던 게 어디야.”

   “뭐, 맘에 드는 그림 없었어?”

   내가 갑자기 말을 돌리자, 현명이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았다.

   “저기 있는 것들 중에?”

   현명이 내게 되물었다. 내가 일부러 돌린 말꼬리를 순순히 내버려두겠다는 얼굴이었다.

   “응.”

   “글쎄, 난 좀 뭐랄까, 어둡고 스산한 그림 좋아해. 저기 있는 것들은 너무 밝고 명랑해서 부담스러워.”

   “어둡고 스산한 그림이 어떤 건데?”

   “그냥, 그런 그림이 있어. 보고 있으면 마음이 싸해지는 거.”

   “색깔 때문에?”

   “아니, 그냥 느낌. 되게 주관적이고 설명할 수 없는 느낌 때문에. 난 그림이고 예술이고 쥐뿔도 몰라. 그냥 나한테 좋은 게 좋은 거야.”

   “그게 예술이지 뭐. 저 좋아서 만든 거, 저 좋아서 즐기는 사람하고 나누는 거.”

   “그래…….”

   “궁금하네. 너한테 좋은 그림은 어떤 그림인지. 뭐, 그런 거 있어? 제일 좋았던 그림 같은 거.”

   “응. 나무 그림인데.”

   “나무? 의외네. 난 흉가 그림, 그런 대답 나올 줄 알았는데.”

   “뭔가 드러나 보이는 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서 느껴지는 느낌 때문에 어둡고 스산한 그림이 좋다니까 그러네. 내 말 어디로 들은 거야?”

   “그래서 그 나무가 어떻게 어둡고 스산하던데?”

   “그게 그냥 나무 그림이 아니라, 나무 단면 그림인데. 땅 위로 솟아 있는 줄기랑 가지 부분 단면만 그린 게 아니라, 땅 밑에 있는 뿌리 단면까지 전부 그린 거였거든. 아, 근데, 그게, 희한한 거야. 땅 위에 있는 부분이랑 땅 밑에 있는 부분이랑, 데칼코마니 같더라. 모래시계처럼……. 그 그림 보기 전까지, 난 몰랐어. 나무 크기가 커질수록 뿌리도 깊어진다는 거. 뿌리 크기가 암만 커진다 해도, 그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던 거지. 나무 크기하고는 상관없이 뿌리 크기는 어느 정도 일정한 건 줄 알았어. 근데 그게 아니더라……. 그 나무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데 말이야. 그게 꼭 사람 같기도 하더라. 나무들이 사람 같기도 하더라고.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거에만 주목하기 쉽지, 그 결과를 밑에서 받쳐 주는 거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잖아. 무지하거나. 그 사람의 내공이라고 할까, 그 사람이 보내 온 과정이라고 할까, 그런 거에 대해서는. 나 얼마 전에 초등학교 동창회 갔다 왔거든. 근데 거기에 민창이라는 애가 왔는데, 걔가 초등학교 때부터 알아주는 장난꾸러기였어. 말이 좋아 장난꾸러기지, 허구한 날 싸움질하고 욕해대고 막 그런 애였어. 근데 걔, 민창이, 대학 교수 준비 중이더라. 말쑥하게 차려 입고 테이블 끄트머리에 점잖게 앉아 있는데, 옛날 그 민창이 같지가 않더라. 그렇게 느낀 게 나 하나뿐인 건 아니었나 봐. 2차로 술자리 옮기고 나자마자, 누가 민창이한테 그러데. ‘민창이 너, 학교 다닐 때는 영 시원찮은 애 같았는데, 이제 보니 노른자였네. 아니면 운이 좋은 건가?’라고. 되게 빈정거리면서. 그 말 들은 민창이, 고개 살짝 수그리면서 픽 웃데. 그러다가 민창이가 그러더라고. ‘니가 니 삶에 니 방식대로 투철했던 동안, 나는 뭐 숨만 쉬고 산 줄 아냐? 나도 그동안 내 식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 내가 운이 좋아서 이렇게 살게 된 건지, 아닌지, 지켜보면 알 거 아냐.’라고. 갑자기 술자리 분위기 이상해지데. 아, 나 그림 얘기하고 있었지. 아무튼, 야, 아, 나 하고 싶던 말 까먹었어.”

   말끝을 얼버무린 현명이 브레첼 접시 쪽으로 눈길을 떨어뜨렸다. 1층에서 원두 그라인더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현명의 등 뒤,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이 검은색 노트북 덮개를 닫았다. 검은색 반팔 티를 입고, 테가 가느다란 안경을 쓰고 있는 그와 내 시선이 잠시 뒤섞였다. 나는 얼굴을 비스듬히 틀고, 아까 현명이 보고 있던 푸른색 그림을 건너다보았다. 




장편소설《거울 밖으로》: http://www.bookk.co.kr/book/view/18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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