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도인 박대리 Sep 04. 2023

옷이야 어쨌든, 유도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당신의 “도복”은 안녕하십니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운동을 취미로 해보게 될 것이다. 이때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운동의 시작과 동시에 장비부터 각잡고 맞추는 사람. 유도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예전에 복싱장에서 봤던 인상깊은 신입 관원이 있다. 아직 잽과 스트레이트만 배운, 입관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왜소한 체구의 남자분이었는데 샌드백을 칠 때 보니 벨크로로 묶는 대개의 보급형 백글러브가 아니라 프로 선수들이나 쓰는 줄로 묶는 글러브를 끼고 있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줄을 묶을 수가 없어서 매번 코치님이 투덜거리며 줄을 묶어주곤 했는데, 신발도 이미 브랜드 복싱화를 신고 있었다. 장비에 제법 돈을 들인 것 같았지만 복싱이 잘 맞지 않았는지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던 그는 반 년도 안 되어 체육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아무렴 어떠랴. 기왕에 도전해보는 거, 여유만 된다면 기분 좋게 장비도 좋은 거 써보는 거지.(아마 글러브와 복싱화는 당근마켓에서 더 알맞는 주인을 만났을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입문자용 장비로 근근이 이어가면서 천천히 장비를 늘려가는 사람. 나는 굳이 꼽자면 후자에 가깝다. 오히려 장비에 그닥 큰 욕심도, 관심도 없다보니 도복 브랜드도 잘 몰랐다. 심지어 십 년 전 처음 유도를 시작하던 때에 받았던 연습용 흰 도복을 최근까지 입었다. 이제는 흰색이 아니라 회색에 가까워져서 심지어 나를 도장에서 처음 본 누군가는 ‘회색 도복이 시중에 판매되는 줄 알았어요.‘라고까지 했다. 빨래를 잘못 돌려서 아마 검은 물이 들었던 것일 터다.


분홍색, 검은색, 흰색 등 다양한 색의 도복이 있는 주짓수와 달리 유도 도복은 백색과 청색 두 가지 색상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도복들이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일단 크게 나누자면 연습용 도복과 선수용 도복으로 나눌 수 있다. 연습용 도복은 대개 유도관에 간 첫날, 입관과 함께 도장에서 입게 되는 도복으로 얇고 가볍고 가격도 저렴하다. 이와 달리 선수용 도복은 두껍고 쫀쫀한 데다가 브랜드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개 가격도 20만원 이상이다. 묵직하고 깃이 두툼한 선수용 도복은 연습용 도복에 비해 목깃이나 등 뒤를 잡기가 어려워 잡기 싸움을 할 때 연습용에 비해 좀더 방어력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대련이나 시합장에서는 당연히 선수용 도복을 입는 편이 유리하다. (도장에 ‘고인물’을 넘어 증발 상태에 가까운 아저씨들의 낡은 도복들 중에는 간혹 목깃에 풀이라도 먹인 것처럼 딱딱한 경우도 있었다. 손가락이 짧은 나 같은 고사리손들은 틀어잡기는 커녕 잡고 버티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럼 무조건 선수용 사야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덥고 습한 여름에 땀에 젖어 무게가 더해진 선수용 도복을 입고 운동하면 숨이 턱 막혀온다. 몸의 움직임이 둔해지기도 하고. 그래서 유도를 2~3년 정도 하면 대개 연습용과 선수용, 청색과 백색 등 도복을 골고루 여러 벌 구비하게 된다.


회색이 되어버린 내 도복에 대해 먼저 설명하자면, 인생의 첫 유도관이었던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는 청림유도관에서 무려 2012년에 받았던 연습용 도복이었다. 관장님은 당시 은퇴를 몇 년 앞두고 계신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관장님이셨는데 내게 새 도복을 꺼내주고는 유성 매직으로 상의와 하의 귀퉁이에 이름을 써주셨다. 셰리프가 뾰족하게 꺾여서, 고집과 힘이 느껴지는 글씨체였다. 그때는 낯설고 뻣뻣한 껍데기 같은 그 도복을 십 년이나 입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십대 내내 가난했던 내가 비싼 도복에 눈독을 들일 여유는 없었다. 그저 유도를 하는 시간이 재밌었고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뿐이었다. 이곳저곳 도장을 전전하며 운동하는 동안, 관장님들이 누군가 두고 간 여벌 도복 등을 주시면 곧잘 받아서 회색 도복과 번갈아가며 입었다. 그냥 유도만 열심히 하면 됐지, 장비나 도복이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오사카 강도관에도 비행기 타고 함께 갔던 나의 회색 도복. (사진_2019년 3월 16일)
뒷편의 다른 관원의 흰 도복과 비교해보면 당시 내가 입었던 도복이 얼마나 혼탁한 회색을 띠고 있는지 느껴질 것이다. (사진_2016년 8월 26일. 종로YMCA 유도장)


그렇게 회사 생활과 유도를 취미로 병행하며 이십대 중후반에 이르렀다. 그 즈음 또래 친구들에 비해 조금은 늦은 나이에 독립을 했는데 거주지가 달라지다보니 다니고 있던 종로 YMCA 유도관을 그만둬야 했다. 이사를 간 동네에서는 마땅히 주머니 사정을 맞출 만한 유도관을 찾지 못했다. 겸사겸사 잠시 유도를 쉬면서 집 인근의 복싱장을 다니다가,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창궐하면서 2~3년 가량 체육관에 가지 못하게 됐다. 좁은 원룸 구석에 쌓여있는 도복 무더기를 볼 때마다 온몸이 근질근질했다. 이렇게 영영 도복을 다시 못 입게 되는 걸까, 라는 두려움과 불안에 싸인 채 숀리 바이크의 페달을 밟으며 코로나가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나는 주말반 유도 수업이 있는 도장을 찾아 다시 유도를 시작했다. 오랜 시간 쌓여 있었던 탓에 도복 무더기에서 짝이 없거나 심하게 누래진 도복들은 버려야 했다. 살아남은 도복은 회색으로 변색된 도복 두 벌과 상의와 하의의 브랜드가 다른 청도복 한 벌.(이 청도복은 아마 종로 YMCA에서 운동하던 시절에 사범님께 얻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 몸보다 품이 한 치수 커서 소매와 바지 기장이 아슬아슬하게 손등과 발등을 덮었다.)

회색 도복을 안고 주말반 수업에 찾아갔다. 코로나 전에 3단을 따놓은 상태였으니 유도를 수련해온 기간이 제법 길었음에도 여전히 낡은 연습용 도복 차림에, 게다가 가슴에는 다른 도장 소속 이름표가 붙어 있었으니 내 몰골을 보고 새로 다니게 된 도장의 관장님께서도 적잖이 당황하신 듯했다. 몇 주 정도 주말마다 내가 후줄근한 행색으로 운동하는 걸 지켜보시더니 나를 따로 불러 조용히 말씀하셨다.

“3단에 이르셨다면 겉모습에서도 어느 정도 그 격을 갖추는 편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비싼 도복을 당장 새로 구매하라고 말씀드리는 건 아니고 천천히 한번 고려해주세요. 일단 소속이라도 저희 도장 이름이 적힌 도복을 입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관장님은 이전에 나와 비슷한 체형의 관원이 입다가 두고 간 흰 도복을 내어주셨다. 바지의 골반 부분에는 다른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상의 오른쪽 가슴에 도장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아마 내게 내어주려고 등판의 이름 패치는 실밥을 뜯어 떼주신 듯했다.


제일 먼저 든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관장님이 건네주신 흰 도복을 받아들고 거울에 비친 나를 보니 마치 깃털색이 바랜 비둘기 같았다. 다달이 체육관에 입금하는 관비만으로 이미 내 형편 기준에서는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어차피 운동은 한껏 망가지고 땀흘리는 시간이라는 생각에 의복을 가다듬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운동 시간에 반드시 고급 브랜드 도복을 입거나 화장을 해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유도는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임하는 운동이다. 같이 맞잡는 상대를 위해 정갈하고 깔끔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나쁜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하고 도복은 항상 깨끗하게 세탁해서 입어야 한다.

나아가 소속 같은 것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운동해왔던 지난 시간들이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갔다. 종로 YMCA에서 운동했던 2-3년 가량 역시 내내 가슴에 ‘청림’이 새겨진 회색 도복을 입고 다녔다. 물론 대부분의 관원들은 내 왼쪽 가슴에 무슨 글씨가 써있든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생활체육인들에게 운동은 그저 취미이고, 같이 운동하는 관원들이라고 해봤자 퇴근 이후 한, 두 시간씩 얼굴을 보는 사이일 뿐이다. 체육관 간판 아래를 지날 때마다 긍지나 소속감까지 느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분명 나에게는, 시합장과 같이 여러 도장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상황에서 느꼈던 ‘우리’라는 소속감이 있었다. 나아가 우리는 함께 같은 공간에서 땀을 흘리며 서로의 기술 수련을 위해 선선히 바닥에 떨어지는 위험과 고통을 감수한다. 우리는 서로가 강해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 팀이고, 같은 관장님께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이었다. 우연히 만난 누군가가 유도를 한다고 하면 “어디서 운동하십니까?”라는 질문이 먼저 나오는 데에는, 그만큼 유도장의 이름이 갖는 의미가 컸다. 이전 도장에서 함께 운동해왔던 이들과, 지금 함께 운동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관장님께 죄송한 마음이 일었다. 내가 입고 있는 도복은 같은 공간에서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었다. 나는 무심코 그것을 소홀히 여기고 지나왔던 것이다.


이후 관장님께 받은 연습용 도복의 등판에 내 이름이 박힌 패치를 붙였다. 그 도복을 입고 매주 운동하고, 몇 차례 시합을 나가 메달도 따고, 4단 승단 시험도 치렀다. 1년 여를 감사히 입었고 최근에서야 처음으로 내 이름이 새겨진 선수용 도복이 생겼다. 코치로 일하게 되면서 아무래도 연습용 도복은 관원들 앞에서 가오(?)가 살지 않는다고 이 또한 관장님께서 장만해주셨던 것이다.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와 자금난을 핑계로 내내 새 도복 구매를 미뤄왔던 탓에 기어코 또 관장님의 손을 빌리고 말았다. “도복은 관장님과 관원들에 대한 존중의 표현”이라더니, 아직 반성을 덜했던 모양이다.)

비닐 안에서 처음 새 도복을 꺼내 안았을 때 감탄이 흘러나왔다. 미색이 감도는 두툼한 흰 도복이었다. 마치 아기를 싸는 포대기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질기고 단단했다. 브랜드 ‘야와라’의 더블유 모양 로고가 왼팔에 새겨져 있고 등과 골반에 내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바지에 자수로 새겨진 이름을 한참 만지작거렸다. 실로 새겨진 명조체의 획들이 애벌레처럼 두툼해서 선명하고 단단했다. 내 이름이 새겨진 새 도복을 입는 건 처음이었다. 선수용 도복을 입게 된 것도,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복을 선물받은 것도 처음이었다. 같이 일하게 됐으니 모쪼록 힘내주길 바라며, 그저 담백한 마음으로 도복을 준비해주신 관장님이 당황할 정도로 나는 기뻐했다. 품이 조금 큰 도복이었던 지라 몇 차례 세탁기를 돌리고나서야 몸에 조금씩 맞아갔다.


빨래에 소질이 없어서 흰색 도복이 금세 회색이 되어버릴 것 같아서, 나는 야와라 청색 선수용 도복을 한 벌 더 구매했다. 번갈아 입으려고 구매했지만 아무래도 선물받은 흰 도복이 소중하고 아까워서 잘 입지 못한다. 잘 걸어두고 늘 청색 도복을 입는다. 회색이 되어버린 낡은 도복은 어찌 되었느냐고?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다. 2012년에 청림의 관장님께서 유성매직으로 손수 적어주셨던 내 이름은, 시간이 흐르면서 천에 스며든 잉크가 점점 흐려지고 흩어졌다. 그러나 그 획과 셰리프의 뼈대에는 여전히 힘이 감돈다. 늘 그렇듯 누군가 내 이름을 적어 건네준 물건은 버리기가 너무 어렵다. 자꾸만 그때의 나와 그때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니까 말이다.


나는 지금도 도복에 새겨진 내 이름에 지금의 사람들을 담고 있다. 언젠가 자수로 새긴 글자를 만지며 지금을 기억하려고.




이전 01화 광배근이 뭔데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