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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도인 박대리 Oct 08. 2023

당신과 오래도록 함께 유도 하고 싶어서

"부상"의 위험은 언제든 있지만

유도를 제법 오래 한 사람들을 보면 도복 안에 발목, 무릎, 어깨, 손목 등 각종 관절 부위에 한 군데 정도는 보호대를 차고 있다. 유도는 전신을 사용하는 대련이기에 부상이 수반되기 마련이고 한 차례 부상을 겪은 부위는 오래도록 말썽을 부린다. 어깨로 메치기로 잘못 넘어가서 어깨를 바닥에 찧어 회전근을 다치기도 하고 넘어가다가 바닥에 손을 짚어 손목이 망가지기도 한다. 때로는 기술을 걸다가 무릎이나 발목이 꼬여 제 기술에 되려 스스로가 다치기도 한다. 잡기싸움을 하다가 손가락의 관절을 삐는 일도 흔하다. 그렇기에 손발톱이 꺾이거나 정강이의 멍자국, 목의 손자국, 목졸린 자국 등이 생기는 일은 그나마 일상적이고 가벼운 부상에 속한다.


유도를 시작한 2012년 이래로 내가 가장 크게 다쳤던 건 왼쪽 무릎 내측 인대였다.(목발을 짚었어야 할 정도로 큰 부상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오른쪽 무릎에 보호대를 늘 끼고 운동을 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부상 이력이 있거나,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약한 부위가 생기면 으레 익히기나 시합 중에 늘 그 부위가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대련 중에 예전에 왼쪽 무릎을 다쳤던 순간과 비슷한 자세를 취하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몸이 트라우마를 기억하고 온 몸에 바싹 힘이 들어간다. 

매년 추석이 돌아오면 그 부상의 기억이 떠오르는데, 때는 바야흐로 2016년 9월. 당시 유도와 직장 생활을 즐거이 병행하던 와중에, 뒷목의 통증이 심해서 회사 인근 정형외과에 방문했다. 의사는 내게 거북목까진 아니지만 이미 일자목이 진행중이라고 하면서 바닥에 떨어지거나 구르는 등 몸에 부담이 큰 운동인 유도보다는 필라테스나 수영 등 정적인 운동을 하길 권했다. 당시 나는 유도에 흠뻑 빠져 있었기에 사형 선고(?)를 받은 것마냥 슬퍼하며 집에 돌아왔고 곧 주말이 낀 추석 연휴에 돌입했다. ‘유도 없이 내 인생에 무슨 낙이 있을까’ 고민하며 우울감에 젖어있던 나에게, 마침 종로YMCA에서 같이 운동하던 Y언니가 일요일에 하는 주말 유도회 이야기를 꺼냈다. 추석 연휴임에도 일요일에 운동을 한다는데 함께 가보겠느냐고. 갑자기 무슨 객기였는지 “그래, 죽더라도 유도인으로 죽는다.”라는 이상한 솔루션에 도달한 나는, 그 기세를 이어 Y언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주말 유도회는 햇살이 좋은 일요일 오전, 국민대학교 내의 유도관에서 진행됐다. 그리고 대련을 하다가 무리하게 왼쪽 빗당겨치기로 상대를 넘기려다가 내 기술에 내 무릎이 꺾였다. 일요일 오전, 국민대 유도관 안에 맑고 청아하게 울리는 “딱” 소리에 모두가 조용해졌고 나는 벽으로 부축되어 끌려 나갔다. 다치던 순간에는 통증이 없었으나 일어나 걷다보니 믿고 싶지 않은 통증이 자꾸만 무릎의 힘을 빼앗아갔다. 나는 스스로가 다쳤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무서워서 자꾸만 이를 악물고 걸으며 통증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계속 나는 절뚝였고 결국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가야 했다. 응급실에서는 응급 조치로 반깁스를 해주고 목발을 줬다. 병원이 문을 여는 평일에 정형외과에 방문해서 다시 검사를 받으라고, 응급실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고 했다. 월요일인 다음날, 나는 회사 앞 정형외과에 출근 전에 방문했다. 반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절뚝이며 들어가니 의사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모니터 너머로 내 전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환자, 원래 목 환자 아니었나?”



왼쪽 무릎의 내측 인대가 다행히 끊어지진 않았으나 손상이 컸다. 당분간은 목발 없이 걷지 말라는 처방을 받았다. 그날 이후 반년 정도는 유도장에 가지 못했다. 반깁스와 목발도 두 달 정도는 유지해야 했고 지하철과 버스를 수반한 1시간 가량의 강남역 출근길은 고역 그 자체였다. 병원에 꾸준히 방문해서 물리 치료를 받고, 종종 무릎에 서늘하다 못해 소름끼치는 느낌의 주사도 맞았다. 일상 생활이 불편해진 것도 괴로웠지만 무엇보다 운동을 하지 못한다는 게 제일 고통스러웠다. 결국 참다못해 6개월이 조금 지난 즈음에 다시 종로 YMCA로 돌아갔다. 반깁스도 풀었고 목발도 짚지 않았지만 여전히 왼쪽 무릎에 이따금씩 찌릿, 하는 통증이 있곤 했다. 무릎 회복이 완전히 되지 않았기에 왼쪽 무릎에는 항상 보호대를 끼고 운동을 했다. 대련을 할 때면 상대에게 늘 시작 전에 무릎 부상에 대해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하고 시합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무작정 유도장에 복귀했던 건 위험한 결정이었다. 다친 부위는 어느 정도 회복한 뒤에도 다시 다칠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때 만약 왼쪽 무릎이 한번 더 꺾여서 다쳤다면, 아마 지금까지 유도는 커녕 오랜 시간 달리기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운좋게 왼쪽 무릎을 다시 다치지 않고 지나오긴 했지만, 그대신 아픈 왼쪽 무릎에 계속 신경을 쓰다보니 무의식적으로 오른쪽 무릎을 더 무리하게 사용하곤 했다. 오른쪽 무릎의 피로도가 지속적으로 쌓여왔고 기어코 최근에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1년 전쯤, 상대의 빗당겨치기에 넘어가다가 부드럽게 넘어가지 못하고 오른쪽 무릎이 힘으로 버텼던 것이다. 오른쪽 무릎 관절이 반대로 꺾이는 느낌이 들었다. 통증에 무릎을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왼쪽 무릎처럼 반깁스를 할 정도는 아니었어서 한동안 조심하며 운동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되려 오른쪽 무릎에 무릎 보호대를 착용한다. 이제는 왼쪽 무릎이 오른쪽 무릎을 지켜준다. 몇 년 전까지는 왼쪽 무릎이 늘 힘없이 위태로운 느낌이었는데 말이다. 마치 고통의 신이 있어서 내 몸 안을 혼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만 같다. 어딘가 새로운 부위를 다치면 기존에 안 좋던 부위의 통증이 덜해진다. 온 신경이 새로 다친 부위에 쏠리기 때문일까?

아무튼 어디든 다치면 완벽히 쉬고 그 부위를 쓰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손목을 다쳤는데, 그럼 달리기는 해도 되지 않을까요?’ 손목을 다쳤을 때 의사에게 그렇게 물어보니 되도록 운동 자체를 쉬는 게 좋다는 조언을 받았다. 다친 부위를 직접적으로 쓰지 않더라도 회복에 쓸 에너지를 운동으로 소모해버리면 회복이 더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약은 무조건 푹 쉬면서 부상 부위를 쓰지 않고, 잘 먹고, 그저 인내심을 갖고 회복을 기다리는 일이다.



많이 아프냐? 나도 아프다.

유도 대련 중에 내가 다치는 상황도 슬프고 괴롭지만 나로 인해 타인이 다치게 되는 일은 또 차원이 다른 고통이다. 의도적으로 다치게 한 건 아닐지라도 내가 건 기술에 누군가 아파하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치료비를 보태줄 수는 있겠지만, 육체적 고통을 대신해줄 수도 없으며 망가진 관절과 회복 기간 동안의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줄 수도 없다. 일상이 일그러지는 불편함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 누구도 상대를 다치게 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시합에 임하지는 않으며, 유도를 취미로 선택한 이들은 언제든 위험한 부상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부상에 수반되는 신체의 급격한 변화와 일상의 붕괴를 그 누구보다 다쳐봤던 스스로가 겪어봤고 잘 알기에, 이제는 타인에게 옮아간 그 고통에 대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상황에 무력감과 뼈아픈 죄책감을 느낀다. 


여태껏 다행히 누군가를 병원에 신세를 지게 할 만큼 크게 다치게 한 적은 없다. 그러나 나로 인해 누군가 통증을 호소하고 쓰러지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나는 그 순간들을 되돌아볼 때마다, 그들이 짓지 않았던 원망으로 가득 찬 얼굴을 상상한다. 다시, 절대로 반복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

그렇기에 평소에 상대와 맞잡고 있을 때 상대에게서 파스 냄새가 얼핏 풍기거나, 도복 밖으로 보호대가 삐져나온 걸 발견할 때면 꼭 물어보곤 한다. “혹시 어디 다치셨어요? 불편한 곳 있으세요?” 상대는 손사래를 치면서 괜찮다고, 신경쓰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아픈 부위에 되도록 힘이 실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만약 익히기 중에 상대가 오른쪽 어깨에 부상이 있다고 하면 왼쪽으로 한팔 업어치기를 연습한다. 상대의 왼쪽 소매깃을 잡아 위로 채고, 왼쪽 팔 아래 겨드랑이로 살며시 파고들었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아프면 유도를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마다 어느 정도의 통증을 견디면서도 유도를 계속 하는 이유가 있다. 입시나 시합 준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정말 그저 유도가 인생의 즐거움이기 때문인 경우도 있다. 자칫 미련해보일 수 있는 그 후자의 마음 역시도 잘 알기에, 보호대를 관절에 차고 삐걱거리는 사람들과도 아프지 않는 선에서 함께 땀을 흘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대련을 할 때면 늘 멋지게 기술을 들어가서 시원한 한판을 만들어내고 싶다. 운좋게 깔끔한 한판을 성공한 날이면 잠들기 전까지 몇 차례 그 순간을 곱씹게 된다. 경쾌한 한판이 주는 카타르시스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자꾸만 욕심이 생긴다. 그리고 그 욕심이 선을 넘을 때면 누군가 망가지곤 했다. 유도는 부상의 위험을 수반하는 운동이다. 무조건 안전하고 건강한 운동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잘 배워두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게 즐기며 교감할 수 있는 운동이다. 상대와 내가 서로 각자의 카드를 숨긴 채 눈치 싸움을 하는 것이다. 상대가 어디로 움직이고, 어떻게 들어올까?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움직여야 할까? 어디로 기울여야 할까?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제압하기보다, 나와 우리를 지키는 유도를 이어가고 싶다. 한판에 욕심이 생길 때면 스스로 늘 그렇게 마음을 다시 고쳐먹는다. 힘을 빼, 조금만 더. 지금처럼 유도를 오래도록 즐기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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