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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산박 Aug 16. 2022

나는 오늘도 출근한다

출근길 에피소드


나는 오늘도 출근한다.

출근. 그것은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이제 내겐 평범하지 않다. 사실 출근은 너무도 당연한 기계적인 일이었다. 그것은 지난 수십 년간 삶 가운데서 어쩌면 아주 중요한 일이었는데도 마치 숨 쉬는 것처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일상적인 일로 여겨졌. 출근은  자체가 삶이었고 경제생활의 기본이었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활력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매일 아침  출근이라는 몽학 선생은 늘 아침잠이 부족한 나를 빨리 일어나라고 핍박했다. 그래서인지 출근하는 아침이 되면 더 일어나기가 싫었고, 5분 만을 외치다 시끄럽게 울리는 자명종 소리를 들으면서 언제나 이 판에 박힌 지긋지긋한 출근을 하지 않고 내 맘대로 출근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했다. 그것은 자영업을 하거나 매일 출근하지 않고 프리랜서를 하는 일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공기업을 다니는 내겐 그저 요원한 일이었다. 


출근길에서 여러 일도 있었다. 

화장실에서 무장 해제된 틈을 타 우산을 훔쳐간 녀석을 따라가 즉시 다시 찾은 일도 있었고,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목적지 정류장을 지나친 적도 많았다. 그 모든 것이 부족한 잠, 바로 잠이 그 원흉이었다. 다들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심지어 출근하다가 법원 유치장에까지 갔다 온 일도 있었다.



출근길의 엇박자

입사한 지 3년쯤 지난 어느 날 아침. 부산 해운대에서의 일이다. 

늘 아침은 지정된 음식점에서 먹고 출근하는데 음식점 위치가 그리 넓지 않은 오거리 귀퉁이에 있었다. 아침 출근 버스는 건너편 쪽 음식점으로부터 약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정차해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버스를 타는 곳으로 가려면 두 개의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가야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이용하지 않고 그냥 길을 가로질러 건너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거리이긴 하지만 도로가 그리 넓지 않았고 신호등을 기다리는 것보다 그냥 가로질러 뛰어가는 것이 몇 배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건너편에 경찰이 있었지만 그것을 보고도 그냥 묵인해 줘서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그래도 나는 가능하면 십중팔구 신호등을 지켰고, 무단으로 가로질러 건너편으로 뛰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속으로 질서 하나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혀를 찼다. 


그날도 잠이 부족해 아침 출근 시간이 빠듯했다. 

그렇다고 젊은 기운에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했다간 오전 시간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음식점으로 가서 급하게 아침을 먹었다. 식사를 끝내고 다른 때 같으면 천천히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가던 내가 너무 시간이 급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그냥 그곳을 가로질러 뛰었다. 한참 급히 뛰고 있는데 호루라기 소리가 났다. 뛰어가다 뒤돌아 보니 경찰이 나를 보고 손짓하며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왜 나를 부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만큼 가로질러 건너온 것에 대한 감각이 없었다. 시간은 없는데 경찰이 부르자 나는 저 멀리 정차해 있는 회사 버스를 가리키며 지금 출근해야 한다고 했다. 아랑곳 하지 않고 경찰은 빨리 자기에게 오라고 했다. 멀리 이제 막 출발하는 버스와 호루라기 경찰과 시계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하는 수 없이 경찰에게로 갔다. 그래도 말만 잘하면 될 줄 알았다. 


경찰은 내가 도로교통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당장 지금의 지구대인 파출소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즉시, 그곳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가로지를 수밖에 없는 길이라 다들 가로질러 건넌다, 다른 사람들은 그랬어도 솔직히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위반하지 않았고, 하필이면 오늘 늦잠을 자서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항변했다. 그리고 거리가 짧은 횡단보도 신호등을 그렇게 오랫동안 점멸하도록 놔두면 되느냐고 따졌다. 그 말은 할 필요가 없었다. 경찰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오늘 위반한 것에 대한 죄 값을 묻겠다고만 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파출소로 갔다. 


파출소에서는 지금 당장 2만 원만 내면 돌려보내 주겠다고 했다. 

80년대 초 2만 원이면 지금 화폐가치로 10만 원 정도 하는 금액이었다. 호주머니를 보니 1만 5천 원 정도 있었다. 아깝지만 돈이 없으니 만원 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안된다고 2만 원은 줘야 풀어주겠다고 했다. 그때 파출소에 경찰이 두 명 있었다. 사실 분명히 잘못하긴 했지만 가는 잘이 장날이었다. 그날부터 교통법규 집중 단속기간이었다.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마 알았더라도 그 상황에서는 가로질러 뛰었을 것이다. 어쨌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애쓰게 나름 신호를 지켜온 것에 대한 보상은 커녕 지금 나에 대한 그들의 처분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부터 올라왔다.   



닭이 되는 순간, 유치장 안으로...

나 말고도 여러 명이 붙잡혀 들어왔다. 

백지 조서에 지장을 찍으라고 했다. 출근은 고사하고 점점 가관이었다. 몇 번 더 얘기하면 될 줄 알았는데 돌아가는 상황이 예사롭지 않았다. 경찰은 오늘부터 단속기간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의 전화를 엿듣다 보니 파출소 별로 채워야 할 할당 인원이 있었다. 조금 지나니 닭장 차가 왔다. 모두 타라고 했다. 생전 처음으로 닭장 차를 탔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차 안에 수갑을 뒤로 찬 덩치 좋은 범죄자가 두 명이 보였다. 그것을 보면서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고 나도 큰 죄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렇게 닭장 차는 이곳저곳을 돌아 버스에 가득 나처럼 정신 못 차린 닭들을 중간중간에 태웠다. 버스 안은 닭들의 꼬꼬댁거림으로 시끄러웠다. 모두들 이유가 다 있었고 모든 불평은 자신이 아닌 경찰에게 있었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ㅇㅇ지원 앞이었다. 도대체 왜 이곳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차에서 내려 법원 안 건물로 들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와 있는 곳, 그곳은 유치장이었다. 대략 모여있는 닭들이 200여 마리는 된 것 같았다. 휴대폰도 없는 시절이라 한 대 있는 공중전화로 다들 상황을 알렸다. 거기서 우연히 다른 지점에 근무하는 같은 회사 동료를 만났다. 너무 계면쩍었지만 정말 반가웠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나하고 비슷했다. 그 동료 때문에 그나마 두려운 마음이 없어졌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린 즉결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즉결심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판사 앞으로 가서 위반한 죄에 대한 판결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벌금 처분을 받고 돌아가면 된다고 했다. 


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더 많은 닭들이 꼬꼬댁거리며 유치장 안으로 들어왔다. 

부산 각 지역에서 잡혀온 닭들이 이제는 양계장의 닭들처럼 많아졌다. 그것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도 나오고 회사 걱정도 되었다. 겨우 공중전화 순서를 얻어 회사에 연락을 했다. 몸이 안 좋아 하루 휴가를 내겠다고... 

한 시간 정도 흐른 후에 강당처럼 넓은 법정으로 올라갔다. 영감님이라는 소리에 진짜 영감인 줄 알았는데 새파란 판사가 들어왔다. 그는 조서 한 장 한 장을 읽어가며 죄인들을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약 열 명씩 횡으로 서서 즉결심판을 받았다. 박ㅇㅇ 5천 원!! 

그것이 전부였다. 너무 싱겁긴 했지만 법원 안에 있는 은행에 5천 원을 납부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난 오늘도 출근한다. 

그 일 이후로 횡단보도만 보면 아무리 짧아도 주위를 둘러보고 건넜다. 

꼭 어디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환청에 시달렸다. 특히 아침 출근길이면 더더욱 조심했다. 자연스럽게 교통질서를 아주 잘 지키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사실 그전부터 잘 지키고 있었는데 원래가 죄도 지어본 X이 잘 피해 가고, 어쩌다 실수 한 번 한 사람이 꼭 그 한번 때문에 망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바로 나였다. 그 출근길 잊고 싶은 스토리는 차를 운전하는 내게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게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또 예측하지 못한 사고를 만나게 했다. 교통질서를 잘 지키는 일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해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 사고 이야기는 후에 포스팅하기로 한다.


젊은 시절, 잠이 부족해 그렇게 타령했던 아침 출근.

이제는 출근길이 참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아침 출근길은 비가 오고 난 후라서 그런지 약간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가을이 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낮엔 물론 덥지만 여름의 기운이 조금씩 물러가는 느낌이다. 

아침 시간에 푸른 신호등에 맞추려고 일부러 빨리 걷다 보니 운동이 되고 있다. 긴 신호등이 있는 곳에서 한 발짝도 안 되는 좁은 길에 있는 신호등까지 거리가 꽤 되는데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그 좁은 길의 푸른 신호등을 만나 건널 수가 있다. 지금도 그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너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이제는 누가 보건 말건 여유를 가지고 기다린다. 크게 바쁘지도 않으면서 그런 여유도 없이 쫓기면서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직도 그 시절 그 닭들의 외침이 아직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지금은 출근하는 그 자체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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